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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2월호, 나의 대표작] 현관에서 - 김대원

신아미디어 2012. 3. 1. 14:58

 

현관에서

   오늘 아침에도 전철역은 여느 날처럼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계
단을 오르는 아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발길을 돌렸
다. 아들이 운영하는 죽粥집 일을 봐 주러 가는 길이었다. 한 사람 더
쓰면 좋으련만 인건비도 만만치 않은데다 제 식구만 하겠느냐는 생각에
서 그러는 것이었다. 언젠가 바쁜 점심시간만이라도 내가 나가서 도와
주겠다고 했더니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나이 많은 사람이 홀 서비스하
면 손님 다 떨어진다며 웃었다.
   ‘아니, 나이 먹은 사람이라고 뭐 어디 불결해 보이기라도 하나?’
   하마터면 ‘젠장!’ 소리가 나올 뻔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운동 삼아 걷는 둑길로 가
다가 동네 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렸다.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눈을
감고 앉아 있자니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얼마 안 있어
머리와 얼굴 여기저기에 땀방울이 맺혀 콧등이며 볼을 타고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양손바닥으로 얼굴을 쓰윽 문질러대지만 조금 후면 다시
땀방울이 모여 조르르 얼굴을 간질이며 흐른다. 그 촉감이 싫지 않다.
   술 마신 사람처럼 벌개진 얼굴로 목욕탕을 나오니 빗발은 제법 굵어
졌다. 집을 나선 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어디론가 바쁜 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나는 거꾸로 집을 향해 가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지금
쯤 일터에 나가 하루 업무를 시작할 시간인데, 하는 생각에 삶의 현장에
서 비껴 있는 사람의 묘한 쓸쓸함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일손을 놓은 후 얼마쯤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던 것이 긴 휴식으로
이어져 버렸다.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현실이 되고 말았
다. 그렇다고 마냥 한가한 날만 보내는 건 아니다. ‘백수白手가 과로사
한다.’는 우스갯말처럼 이런저런 일들로 쉴 틈 없이 바쁘다. 그런데 그
것이 내 가정이나 식구들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공연히
일을 사서 하다 보면 심신만 고달플 때도 있다. 그래서 한여름과 겨울엔
인연 있는 사찰이나 집에서 안거安居에 들어 한철을 나기도 한다.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앞집 강아지가 짖어댔다. 그 집도 식
구들이 다 나가고 강아지 혼자 집을 지키는 날이 많다. 혼자 지루하게
있다가 인기척 소리가 나니 반가운 모양이었다.
   “네 주인 아니야!”
   나직이 말하면 알아듣기라도 하듯 뚝 그친다. ‘어찌 네 심정을 모르
랴…….’ 하고 한마디 더 해 주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벨을 누르려다 멈칫, 바지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
다. 어쩌면 내 손으로 현관문을 열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면 내가 벨을 누르면 언제나 아내나 딸이 달려와 열어주는 것에 길들여
져 있어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열쇠는 두 개다. 하나는 본래 있던
것이고 그것이 미덥지 않아 다시 특별(?) 잠금장치를 한 것을 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문을 여닫는 키를 돌리는 방향이 위아래가 반대
여서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바쁜 일로 서둘러 나갈 땐 나도 모르게
허둥대기도 한다. 귀한 보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가족만의 보금자리를
침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몸집이 커서 신발장에도 못 들어가고 있는
등산화가 화난 듯이 혼자 뭉뚝한 코를 내밀고 있었다. 어쩐지 요새 내
모습 같았다.
   몇 해 전만 해도 현관을 꽉 채운 신발들이었는데, 어느새 보트같이
커 버린 아들의 검정구두는 분가를 해 버렸고 출근하는 딸의 굽 높은
예쁜 구두도, 그 곁을 지키던 아내의 신발도 출타중이다. 오늘따라 그
빈자리가 휑하니 넓어 보였다. 텅 빈 현관, 꼭 내 마음과 같았다.
   시원한 물 한 컵을 꿀꺽꿀꺽 다 마시고 창가에 앉았다.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게 문을 닫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들어와 다시 새벽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 놓고
나가자니 피로가 가실 날 없다. 졸다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쳐 버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며 계면쩍게 웃기도 했다. 오늘은 잘 갔는지 모르겠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는 아들도 걱정되기는 매한가지다. 겨울이면
빙판길이 걱정스럽고, 또 여름이면 뙤약볕에 숯검댕이가 된다. 결혼 적
령기를 훨씬 넘기도록 일에 묻혀 사는 딸내미에겐 더없이 미안하다. 모
두가 내 탓인 것 같다. 새삼 가장의 위치를 실감케 했다.
   집에서는 무엇 하나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문득 어느 날
아침에 생방송된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그날 출연한 남자들 거의가 나와 다름없었다.
전에는 아내가 출타하기라도 하면 돌아와 밥상을 차려 줄 때까지 기다
렸다. 속옷에서 양복까지 아내가 챙겨주는 대로 입었다. 내가 좋아서
가는 등산도 배낭을 챙기는 건 지금도 아내 몫이다.
   “어이구, 이런 건 좀 자기가 미리미리 챙겨야지, 차라리 내가 가고 말
지.” 하면서도 도시락이며 수건, 물병, 과일 등을 배낭 안에 차곡차곡
넣는다.
   언젠가 아내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내가 당신보다 오래 살아야지, 당신 혼자 놔두고 가면 누가 그 뒷일을
봐 주겠어?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니 당신도 하나하나 혼자 할 수 있게
좀 해 봐요.”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다림질과 청소기 돌리기는 늘 해 오던 것이다.
어쩌다 휴일이면 아내는 내가 타 주는 커피가 맛있다며 즐겨 마시기도
한다. 역할이 바뀐 셈이다. 그런데 빨랫감을 분류하여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는 아직 못하고 있다. 하지만 꼭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보다 내
할일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싶다. 다시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저 현관문을 나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작 가 메 모  ===================================================
   ‘대표작’을 보내라는 청탁을 받고 한동안 주저하다가 주변의 도움을 빌려
이 작품으로 선정했다. 사실 이 작품은 미리 내가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지도해 주시는 관여觀如 선생님께서 이런 것을 주제로
글 한 편 써보라는 말씀에 따라 쓴 것이 <현관에서>였다.
   또 다른 작품 <12월의 오후 다섯 시>도 마찬가지다. 마침 문학수업을 하
고 있을 때가 그 시각이었는데 산사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석양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선생님께서 ‘오후 5시’에 대해서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 주셨다. 그 작품으로 어느 문학사에서 주는 ‘수필문학상’을 받았으니 선생
님의 예지叡智에 힘입었음이었다.
   처음에는 ‘현관’이라는 주제를 놓고 막막하였으나 무시로 드나드는 우리
집 현관에 눈길이 머물렀다. 잠시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자 일손을 놓았던
것이 예상과는 달리 공백이 길어졌고, 그 공허함이 어느 날 아내를 배웅하고
돌아와 현관에 들어섰을 때의 풍경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늘 함께 살 줄
알았지만 아들은 분가해 나갔고, 하나뿐인 딸도 머지않아 그럴 터이다. 옛날
이 그리워지는 마음이었다.
   졸저 <백학산의 가을>의 서평을 써주신 김우종 선생님의 말씀으로 작가
메모난을 대신하려고 한다.
   “<현관에서>는 죽粥집을 차리고 있는 아들을 도우러 나가는 아내의 뒷모
습, 그 다음의 하루 일과를 그린 것이 모두 작자인생의 해가 저무는 일몰
시간의 풍경화로 잘 나타나 있다. 독자는 이런 회화적 풍경을 통해서 백수가
된 작자가 전하는 노년기의 고독과 슬픔이라는 관념을 읽게 되고 그 그림을
통해서 독자가 관념의 실체를 파악하도록 되어 있다. 노년기의 이런 소재들
은 흔한 것이지만 관념의 전달력은 표현 기법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작자는 철학적 명상의 깊이가 있지만 그래도 관념적 서술형태보다는 시각적
인 형상화의 기법이 더 진가를 발휘한다. 그것을 매우 성공적으로 나타낸
그림 중의 하나가 신발장이 놓여 있는 현관 풍경이다.”
   김우종 선생님께서 액자화 시켜준 ‘신발장이 놓여 있는 현관 풍경’을 이따
금씩 꺼내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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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
2004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백학산의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