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현대 수필문학의 전개(2)
현대수필의 형성기(수필 장르의식의 형성기)
-1930년대의 수필 ③
[1930년대의 수필가들-1]
1930년대의 특기할 점은 수필의 성격이 개인 체험의 서정적이고 사색
적인 쪽으로 주도되어, 사회지향의 계몽적 성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이병기, 이은상, 이희승, 김진섭, 이양하, 김용준, 피천득,
이효석, 이상, 김유정 등이 이 시기에 활발히 활동한 작가로 손꼽을 수
있으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필전문지 ≪박문博文≫이 발행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수필문학은 1930년대에 이르러 그 이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수필문학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때에 특기
할 것은 수필전문지의 출간이며 ≪문장≫과 ≪인문평론≫에 수필 고정
란이 설정되어 발표 지면이 마련되게 된 점이었다. 비로소 한국의 수필
문학이 이 시기에 이르러 이론적 추구와 함께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
필이라는 본격수필의 유형이 형성되어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하겠다.
이때에 발표된 손꼽을 만한 수필로는 이광수의 <산거일기>, 이희승의
<청추수제>, 김진섭의 <인생예찬>, 이양하의 <신록예찬>, 김용준의 <매
화>, <노시산방기老柿散房記>, 이효석의 <청포도의 사상>, 이상의 <권
태>, 김유정의 <그믐달> 등이었다.
다음은 이양하의 <신록예찬>과 이상의 <권태>의 한 대목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프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
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
한가? -이양하, <신록예찬>에서
나는 개울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나 빈약한 물이 소리 없이 흐른
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나는 더웁다. 나뭇잎들이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 하도록 더웁다. 이렇
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 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
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자 결국 치열한 곡예曲藝의 역域을
벗어나지 않은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본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
야말로 나무나 단조 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漂着하였을 때 이 신성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일망부재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沒趣味
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함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
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 <권태>에서
1920년대 우리 수필문단의 작가와 작품을 보면 문인의 작품이 1,063
편, 언론인 274편, 학자 84편, 교육자 79편, 학생 44편, 정치인 23편, 종교
인 55편, 가정주부 21편, 화가 21편, 연예인 14편, 체육인 11편, 음악가
9편, 사회사업가 7편, 실업가 4편, 무용가 4편, 기타 53편으로 그 필진이
각계각층을 망라하였다. 오창익의 연구에 의하면(<1920년대 한국수필문학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1985, 85쪽), 작품 수는 무려 1,766편이 이른다고
했다.
이때 발표된 수필작품으로는(이현복, ≪수필문학논고隨筆文學論攷≫, 수필춘
추사, 2004, 130-131쪽) 1920년에 오산인五山人의 <K선생을 생각함>, 오상
순의 <시대고와 그 희생>, 전영택의 <범인의 사상>, 남궁벽의 <자연>,
1921년에 민태원의 <창전窓前의 녹일지綠一支>, 1922년에 회월懷月의 <감
상의 폐호>, 홍사용의 <백조는 흐르는데 별하나 나하나>, 양건식의 <나
는 오직 고언>, 변영로의 <토막생각>, 1923년에는 김기진의 <마음의 폐
허>, 1924년에 박영희의 <조선을 지내가는 메너스>, 변영로의 <개자芥子
몇알>, 빙허憑墟의 <이러킁 저러쿵>, 백신애의 <납량이제>, 방정환의
<어린이 예찬>, 이광수의 <의기론>, 1925년에는 이상화의 <방백傍白>,
박영희의 <화염 속에 있는 서간철>, 교향橋香의 <그믐달>, 조춘광의 <파
열과 기도>, 1926년 회월의 <번뇌자의 감상어>, 최남선의 <심춘순례>,
<백두산관참기>, 정주랑의 <술!>, 염상섭의 <지는 꽃닙을 밟으며>, 1927
년에 심훈의 <남가일몽>, 염상섭의 <문예와 생활>, 한용운의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1928년에 김일엽의 <회고>, 1929년에는 민태원의 <청춘
예찬> 등이 발표되었다. 특기할 점은 최남선의 ‘조선주의’가 문학작품에
서 국토예찬으로 나타나 수필체의 기행문이 유행되어 수필발전에 계기
를 마련하였다.
개화기의 기행문은 주로 외국풍물에 대한 소개였다.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이른 시기에 조국강토에 대한 예찬은 조국애, 민족주의 고취
의 일환이었다. 최남선의 <심춘순례>, <백두산관참기>, <금강예찬>,
<풍악기유>, <반순성기>, <평양행>, <교남홍과>, <북정기>, <송한연기>
가 그러했고, 이광수의 <금강산유람>, <오도답파여행>, <동경에서 경성
까지>, <상해인상기>, <충무공유적순례> 등이 같은 맥락에서 창작된 작
품들이었다. 또한 수필이 중수필에서 경수필로 넘어오는 계기로 나도향
의 <그믐달>, 민태원의 <청춘예찬>, 방정환의 <어린이예찬>, 오상순의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 와 같은 우수한 작품들이 발표되었던 것도
이 시기에 큰 수확이었다.
이때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면면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구체적인 것은 한상렬의 ≪한국현대수필자가론≫ 참조)
청천聽川 김진섭金晋燮은 1903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하였다. 1926
년 일본의 호오세이(법정)대학의 독문학과 재학 중에 손우성, 이하윤,
정인섭 등과 함께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 이에 가담하기도 한 그는
≪해외문학≫ 창간에도 참여하였고, 이 책 제1호에 평론 <표현주의문
학론表現主義文學論>을 발표하는가 하면, 번역소설인 ≪문전門前의 일보
一步≫, 번역시 <모든 것은 유희였다> 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특기할
일은 그가 1934년 ≪문학≫에 <수필문학 소고>라는 글과 1939년 ≪동아
일보≫에 발표한 <수필의 문학적 영역>이라는 수필문학과 관련한 이론
을 발표함으로써, 당시만 해도 변변한 수필문학의 이론이 없었던 때에,
이 이론은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일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후 그는 1946년 서울대학의 도서관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에는 첫 수필
집에 해당하는 ≪인생 예찬≫을 출간하고, 이어 1948년에 제2수필집이
라 할 본격적인 수필집 ≪생활인의 철학≫을 출간하였다. 또 1950년에
는 평론집 ≪교양의 문학≫을 간행하기도 하였으나, 6·25사변을 맞아
청운동 자택에서 납북되어 그 후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우리 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1930년대까지 수필문학의 범주에 속하
는 글을 쓴 사람들은 주로 언론인들이나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었
다. (유종호柳宗鎬의 <자유로운 주제와 조그만 야심野心>. 삼중당, 한국현대문학전집,
삼성출판사. 437쪽) 당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종사할 수 있는 직장이 주
로 언론계에 한정되어 있었던 터라 언론에 종사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
들이 대부분이었다 하겠다. 따라서 수필문학의 생산자는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그의 수필은 경구적, 사색적, 분석적인 명수필을 창작하여 당시 이양
하와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수필 세계는 한마디로 철학에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켜 그 안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다시 말하면 동양적 사고와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철학을 발견
하고자 하였고, 그것이 수필 작품으로 창작되었다고 하겠다. 다만 초기
그의 수필문학의 이론이 자칫 곡해되어 수필문학을 비하하는 데에 이용
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김진섭의 사색의 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생에
대하여>, <교양에 대하여>, <여성미에 대하여> 등이다. 그런가 하면 <송
頌>을 화소로 한 작품들도 다수 보인다. <주부송主婦頌>, <체루송涕淚頌>,
<우송雨頌>, <모송론母頌論> 등이 있는가 하면, 이와 같은 계열에 <송춘頌
春>, <매화찬梅花讚>, <백설부白雪賦> 또한 같은 자리에 놓아도 좋을 것이
다. 이렇게 그의 수필적 관심은 인생과 자연을 넘나들면서 삼라만상 모
든 것을 사유하고 사색하는 명상이 나타난다. 이런 김진섭의 수필세계
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작가의 시선이 주로 동양적인 것에 관
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매화가 조춘만화早春萬花의 괴魁로서 엄한嚴寒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
화發花하는 것은 그 수성樹性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 고유의 수종樹種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繁茂
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거니와, 그러므로 또한 매실이 그 독특한
산미酸味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의 자가 되어 효험
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밖에 없다. -<매화찬>에서
이는 김진섭의 삶의 자세를 가장 진솔하게 나타낸 작품이다. 동양에
서는 매화를 지절의 대표로 삼거니와 엄동설한에도 꽃을 피우는 매화야
말로 가장 지조 높고 품위 있는 꽃으로 보아왔다. 그 의연한 군자의 자세
는 바로 작가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일 것이요, 암시적인 작가의 모습이
라 하겠다. 이 수필은 매화의 생태적 특성이나 속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여기에는 바로 동양적 정신세계를 꿈꾸는 화자의 삶의 자세가
있다. 매화의 강인함과 번성이라는 두 속성을 닮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
엄동에도 추운 땅을 헤집고 나오는 매화의 강인함은 화자의 소망이자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다.
이양하李敭河는 1904년 평안남도 서강에서 태어나,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 제삼고등학교, 1930년에는 동경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931년에 같은 대학 대학원을 수료한 뒤 귀국한 1934년
부터 연희전문학교 강사를 거쳐 문과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영문학 관
계의 논문과 수필을 발표하였다. 그 후 45년부터는 경성대학京城大學 문과
교수, 1950년에는 서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1951년 도미
하여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1953년에는 다
시 미국의 예일대학에서 언어학부의 마틴 교수와 함께 ≪한미사전韓美辭
典≫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1958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서리를
지내기도 하였다.(이양하의 해적이, 국어국문학자료사전, 2347. 참조)
이양하는 피천득皮千得과 함께 찰스램. 프란시스 베이컨 등 정통적인
서구의 수필을 도입하여 본격적인 수필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작가
였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수필문학계의 두 봉우리가 있었다면, 그 하
나는 김진섭이요, 다른 한 봉우리는 바로 이양하였다. 이양하의 수필은
종래의 신변잡기적이며, 주관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생활인의 사색과 철
학이 담긴 본격적인 수필을 쓴 작가라 하겠다. 그리하여 그의 수필 <나
무>(1964년) 등의 작품은 수필문학사로 보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수필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양하수필집≫(1947년)과 ≪나무≫
(1964년)는 한국 현대 수필문학사의 주요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양하수필집≫에 수록된 수필로 <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록예
찬>, <내가 만일 대학생이 된다면>, <프루스트의 산문散文>, <페이터의
산문散文> 등은 그의 대표적 수필로 널리 읽혔다. 한편 영문학자로 리처
즈Richards. I. A.의 ≪시와 과학≫(1947)을 번역하여 이 땅에 리처즈의
문학이론을 최초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한편, 권중희權重輝와 함께 ≪포
켓영한사전≫을 편찬하여 영미어문학 보급에도 힘썼다.
이양하의 수필을 구성적 관점에서 논한 정진권 교수의 연구는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정진권은 ≪국어교육≫ 제 69-
70호에서 <이양하 선생의 <나무>고考>라는 글을 통해 이 작품의 짜임과
주요 내용에 대한 분석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수필 <나무>를 3단
구성으로 보고 1이 서두, 2가 본론, 3이 결말로 보았다. 또 본문을 소주제
에 따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 가운데 2-1은 결말 부분의 ‘안분지족
의 현인’, 2-2, 2-3, 2-4는 ‘고독의 철인’, 2-5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와
연결시겼다. 이런 논의의 과정은 바로 이양하의 수필 <나무>의 논리적
구성을 말하는 것으로 다만, 그는 2-2, 2-3, 2-4와 ‘고독의 철인’과의
연결은 명쾌하지는 못하다고 보고 있다. 이같이 다소의 문제를 안고는
있지만, 논리적 구성이 특별히 나타나고 있음은 명확하다고 보겠다.
이양하의 수필집 첫장을 여는 <신의新衣>는 그의 수필의 본질을 캐는
일에 있어 많은 시사를 한다.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여름옷을 한 벌 장만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옷감의 선택이 좋지 못하였다. 전등불 아래 보는 빛이 수수
한 부라운이요 세로 박힌 무늬는 무슨 빛인지 분명하지는 아니하나 어
떻거면… 그러나 옷이 다 되어 막상 입고 나서니 전등불 아래서 보던
빛과는 아주 딴판이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이 수필을 예로 들어, 네 가지 관점에서 그의
수필의 본질을 밝힌 바 있다. 첫째로 이 수필은 어디까지나 관찰일 뿐이
라는 점이다. 둘째로 관념의 선입견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셋째로
감수성의 측면이 아닌 논리적 설명이라는 점, 넷째로 생활이 자신의 개
인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는 이양하의 수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평가라 하
겠다. 결국 이양하의 수필은 여타의 수필가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감
수성보다는 논리적인 구성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
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 <신의新衣>는 이 같은 이양하의 수필이 갖고 있
는 본질적인 특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윤재천의 말을 빌리면(윤재천의 ≪수필작가론≫ 중에(<이양하李敭河의 작품론
作品論>, 239쪽) “그는 많은 일을 하고, 착하게 살려고 애를 쓰다 간 사람이
다. 수필가로서 뿐만 아니라, 영문학자로서 대학 강단을 지킨 교육자로
서 부끄럽지 않은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겸허하게
바라보고, 매사를 신중하고 의연하게 주어진 세월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수필을 읽으면 그가 살던 모습이, 살고 싶어 했던 삶이 보이는 것
같다.”라고 했으며, 이정림은 ≪수필공원(1997년 가을호)≫을 통해 이양하
수필의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성격>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의 수필을
개인수필과 사회수필로 나누어 논한 바 있다. 이런 시대구분은 앞서의
이양하의 작품의 시대구분과 같은 것으로 “문학은 결국 시대나 사회의
소산이라는 전제하에서 문학 작품의 생성에 작용한 시대나 사회 상황과
의 연관”이란 말을 인용하여 “그의 개인수필과 사회수필에는 다같이 결
함이 있다. 개인수필에서는 지나친 미문과 외국 문장식 표현이 결점으
로 지적되고, 사회수필에서는 사회의식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했
다는 결점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이양하의 수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시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양하의 수필에 대하여 임중빈은 그의 수필을 ‘환희의
송가’로 보고 있다.(이양하론, <신록예찬>, 범우에세이선 21, 1976, 18-19쪽)
그의 수필이 궁극에는 환희의 송가頌歌로서 사물의 성화聖化에 이루
고 있어서 한낱 보잘것 없고 범상한 진실들도 크나큰 승리에 값한다.
대체로 모국어로 구상해서 다듬어진 수필의 참맛을 이양하는 특이하게
대변한다. 미상불 수필의 그러한 묘미는 진지한 생의 자세와 탁월한 표
현에 근거한다.
김용준金瑢俊은 1930년대 소설문학의 거장으로 당대 순문예지 ≪문장≫
의 주간을 지내던 상허 이태준李泰俊의 절친이었으며, 정지용鄭芝溶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이들은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과 언어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문
학을 지켜온 작가들이었다. 시인 민영閔映의 말을 인용하면(범우문고, ≪근
원수필≫ 12쪽), “예리한 선비정신과 굳건한 민족정신으로 유린된 정신문
화의 마지막 파수꾼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묘하게도 이태준과 정지용 그리고 김용준은 해방
후 이데올로기의 그물에 걸려 희생되고 말았다. 이들은 한동안 우리 정
치사에서 월북작가로 낙인찍혔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데
올로기의 포로가 되게 하였을까. 이 점과 관련하여 문학평론가 김윤식
은 그의 ≪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일지사, 169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이는 이들 ‘문장’과 관련했던 작가들의 전향과 관련한 시사를
주는 말이라 하겠다.
즉 그는 1930년대의 그들의 취미를 일종의 전근대적 귀족 취미에로의
함몰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태준의 경우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아典雅와 유려流麗의 베일 밑에 있던 ‘불끈불끈하는 정열’이 솟아올
랐을 때 그는 문장도를 어느 정도 수립할 수 있었다. 그 불행의 자리에
유토피아를 앉혀놓았을 때 그의 문장도는 ‘소련기행’ 같은 저속한 아희
적兒戱的 치졸성으로 전락한다. 그 맹아가 실상 ‘문장강화’ 속에, 더 자세
히는 자각적 태도 속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왜냐하면 생래적이 아
니라 자각적인 것이라면 해방공간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응방식이
논리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열린 세계, 동적인 세계, 유동하는 세계, 민
족 재편성의 혼돈상태의 승인은 적어도 정치가 아닌 문인의 자리에서는
민중어의 차원임을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다. 개성적·폐쇄적 닫힌 세계
의 문장법, 그 체질을 한편으로 견지하면서 이데올로기의 선택으로 나
간다면, 즉 민중어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문학으로서의 파탄은 필정必定
이리라. 이는 해방 후 거의 시를 못 쓰고 빈정거림투의 산문에만 시종한
문장파의 거목 정지용에서도 선명히 볼 수 있다.
다소 길게 인용되었지만, 이태준과 관련한 이 같은 말은 김용준의 문
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김용준은 이
데올로기의 희생자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해방공간에서 뚜렷한 방향감
을 잡지 못하고 화단畵壇과 문단文壇 양쪽에서 문명을 날렸던 작가가 김
용준이었다. 특히 그는 1930년대 수필문학의 불모지에 순수문학인이 아
니면서도 훌륭한 수필 작품들을 남겨놓은 작가였다.
자연 현상이나 아름다운 대상을 보는 경우에 그 미적 감각이란 대동소
이하기 마련이다. ≪암서유사岩栖幽事≫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화병에 꽃을 꽂아 책상머리에 두는 것도 또한 각각 어울리는 것이
있다. 눈 속에 핀 매화꽃은 특히 시정을 머물게 한다. 꽃다운 봄날 살구
꽃은 화장 거울 앞에서가 가장 사랑스럽다. 비 오는 날 배꽃은 소녀의
애를 끊어놓는다. 바람 맞은 연꽃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해당화와 복사꽃 오얏꽃은 화려한 잔치 자리에서 요염함을 다툰
다. 모란과 작약은 노래하고 춤추는 자리에 꼭 어울린다. 향기로운 계수
나무 가지는 웃으며 담소하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한 다발의 난초는 이
별의 자리라야 제격이다. 이렇듯 종류에 따라 정취가 달라지매 꽃은 장
소와 분위기에 따라 알맞게 꽂아야 한다.
이렇게 사계절이 있고, 그 계절에 피는 꽃이 있어, 우리네의 삶은 그만
큼 덜 쓸쓸하고 푸진지도 모른다. 그래 겨울 눈 속에서도 설중매 한 분盆
이 있어 이를 책상머리에 놓으면 훈기가 감돌고 혀끝에 시정이 맴돌기
마련이다. 김용준은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작가였다.
김용준의 ≪서청산기西靑散記≫에는 “一年可惜事: 春不藝蘭, 夏不賞荷,
秋不采菊, 冬不尋梅.”라 하여 한 해에 안타까운 일이 있으니, 봄에 난초
를 심지 않고, 여름에 연꽃을 감상치 않으며, 가을에 국화를 캐지 않고,
겨울에 매화를 찾지 않음이 그것이다, 라는 말이다. 그런데 바쁜 세상에
이 무슨 호사냐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인생에 슬픈 일이 어디
한두 가지랴만 꽃 피고 지는 속에 섭리가 녹아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눈 속에 매화 구경이 탐욕과 각박함 속에서의 아귀다툼보다 낫다는 말
일 게다. 이런 정신이 바로 김용준의 수필 정신의 한 대목이라 하겠다.
김용준의 수필은 선비정신이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 아래, 그림
그리는 일에만 몰두할 수 없는 지식인의 아픔은 자연스레 자연과 벗하
는 삼매의 경지를 통해 선비정신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그의 면면이 수필 <매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요즈음은 턱없이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기실 나너 없이 몸보다는 마
음이 더 분주한 세상이올시다.
바로 얼마 전이었던가요. 어느 친구와 대좌하였을 때 내가 “X 선생
댁에 매화가 피었다니 구경이나 갈까?” 하였더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자네도 꽤 한가로운 사람일세.” 하고 조소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먼산만 바라보았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우리는 이다지도 바빠졌는가. 물에 빠져 금시에 죽
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 친구 인사나 한 자 하였더면 건져주었을 걸.”
하는 영국풍의 침착성은 못 가졌다 치더라도, 이 커피는 맛이 좋으니
언짢으니, 이 그림은 잘 되었느니 못 되었는니 하는 터수에 빙설을 누경
屢徑하여 지리하게 피어난 애련한 매화를 완상할 여유조차 없는, 이다지
도 냉회冷灰같이 식어버린 우리네의 마음이리까?” -<매화>에서
바쁜 세상의 일에서도 잠시 자연을 벗하고자 하는 여유로움이 있다.
어찌 매화에 대한 완상이 그저 한 송이의 꽃을 바라보는 지극히 보편적
인 것이랴. 그에게 있어 매화의 완상은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매화는 그 둥치를 꾸미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자라고 싶은 대로 우뚝
뻗어서 제 피고 싶은 대로 피어 오르는 꽃들이 가다가 훌쩍 향기를 보내
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제가 방 한 구석에 있는 체도 않고 은사隱士처럼
겸허하게 앉아 그럴듯합니다.” 그가 매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
다. 애써서 꾸미지 않아도 좋으며, 옆에 있어도 없는 듯 앉아 있는 매화
의 향기가 그는 좋다. 높지도 그렇다고 낮은 것도 아닌 중용의 태도랄까.
이는 바로 동양사상의 하나인 선비정신이었다.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은 우리 소설문학에서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최
초의 기수로(김우종의 ≪한국현대소설사≫, 243쪽) 김동인이나 현진건의 뒤를
이은 근대적 단편소설의 완성자로(이재선, ≪한국현대소설≫, 364쪽) 평가되
고 있다. 이태준의 작품 활동은 질 ․ 양적인 면에서 당대의 어느 누구에
게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 그는 카프의 해체 이후인, 1930년대
우리 문단에 ‘구인회’를 결성하여 순수문학을 제창하였으며, 순문예지
≪문장≫의 출현과 더불어 그 주간 및 편집인으로 활동한 작가였다. 그
러나 8·15 직후 월북하여 그곳에 정착하였고, 이에 따라 우리 문단에서
는 그를 월북작가로 분류함으로써, 그에 대한 연구가 금기시 되어 왔었
다. 1988년 7월 19일 월·납북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해금되었다.
이태준은 1930년대에 우리 문단에 “상허의 산문과 지용의 운문이 풍미
하던 시대였다.”는 말과 같이 주옥 같은 언어와 문장을 개발함으로써 우
리 한국문학의 문체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작가였다. 1930년대 우리 문
단에 ‘구인회’를 결성하여 순수문학을 제창하였으며, 순문예지 ≪문장≫
의 출현과 더불어 그 주간 및 편집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의 산문을 대표하는 그는 ≪문장강화≫를 집필하였으며 ‘작품 이전에
글의 연마’는 그의 지론이기도 하였다. 그가 발표한 ≪무서록≫에는 57
편의 수필을 수록하고 있다. 해방 후 그가 경도되었던 이데올로기로 인
해 월북 작가로 낙인 찍혔던 그는 ≪문장강화≫에서 보듯 어문일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며, 개성적 접근을 통한 언어가 지닌 감각적이고도 사
실적 표현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한 작가였다. 그의 문학관은 주로 소설
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그의 수필집 ≪무서록≫에서는 자신의 문학관이
피력된 수필들이 다수 보인다. 그의 수필에는 전아, 유려한 연금술사다
운 흔적이 나타나고 있고, 동양적 관조의 세계도 나타나 있다.
특히 해금 이후 민충환의 일련의 ‘이태준 연구’(<농군을 중심으로>(1986),
<코스모스 이야기를 중심으로>(1987), <상허 이태준의 중․단편소설의 이해>(1988), <고
단했던 생애와 작품 세계>(1988) 등)에 이어, 다양한 각도에서 이태준의 연구
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 연구들은 모두 그의 소설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공덕룡은 <이태준의 수필과 소설>(≪수필공원≫, 1993-여름호, 117쪽)에
서 이태준을 “언제나 절박한 삶이었지만, 그는 수필가가 될 바탕은 타고
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바탕이란 여유, 유머, 관조와 같은 소질을 말한
다.”고 말한 일이 있으며, 한상규는 ‘≪문장강화≫를 통해 본 이태준의
문학관’(이태준 문학 연구, 깊은샘, 88-89쪽)에서 이태준은 현대문장이란 ‘개
성적 접근을 통해 말의 감각적이고 사실적인 표현 능력을 최대화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태준은 어느 작가보다도 문체나 표현의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고 있
었으며, 의식적으로 그의 소설에서 언어미를 추구하였다. 특히 이해원
의 연구에 의하면(<이태준 소설의 이미지 연구>, ≪이태준 문학 연구≫, 242쪽)
그의 소설에서의 이미지는 ‘빛’과 ‘불’의 요소를 주축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태준의 소설에서는 ‘달’, ‘밤’, ‘달밤’, ‘불빛’, ‘바다’, ‘강물’, ‘비’
등이 높은 빈도수를 차지하며, 반복 중첩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어휘들
은 ‘물’과 ‘빛’의 이미지로 포괄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의미망 속에서 물체
를 일람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 이혜원의 견해다.
여기서 ‘달빛’은 무의식과 관능의 세계를 열어주는 밤의 빛으로 ‘물’은
바다로 대표되고 있다. 바다는 그의 소설에서 부정적인 이미지 중에서
도 가장 공격적이고 난폭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비극적인 숙명을 부
르는 파괴적인 거친 움직임에 비하면, 빛줄기는 소품 정도에 불과한 것
이라 하겠다.
① 오늘 아침, 집에 나오는 길에 보니, 개울 건너 그 울음소리 나던 집
앞에 영구차가 와 섰다. 개울 이쪽에는 남녀 여러 사람이 길을 막고 서서
죽은 사람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도 한참 그 축에 끼어 서 있었다.
그러나 나의 눈은 건너편보다 이쪽 구경꾼들에게 더 끌리었다. 주검
을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하는 그 얼굴들, 모두 검은 구름장 아래 선 것처
럼 한 겹의 그늘이 비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 사나이, 그는 일견에
‘저 지경이 되고 살아날 수 있을까?’ 하리만치 중해 보이는 병객이었다.
-<죽음>에서
② 어제 K 군의 입원으로 S병원에 가보았다. 새로 지은 병실, 이등실,
새 침대가 서로 좁지 않게 주르르 놓여 있고, 앞에는 널따란 벽면이 멀찌
거니 떠 있었다. 간접광선인데다 크림빛을 칠해 한없이 부드럽고 은은
한 벽이었다.
우리는 모두 좋은 벽이라 하였다. 그리고 아까운 벽이라 하겠다. 그렇
게 훌륭한 벽면에는 파리 하나 머물러 있지 않았다.
다른 벽면도 그랬다. 한 군데는 문이 하나, 한 군데는 유리창이 하나
있을 뿐, 넓은 벽면들은 모두 여백인 채 사막처럼 비어 있었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은 그 사막 위에 피곤한 시선을 달리고 달리고 하다가는
머무를 곳이 없이 그만 눈을 감아 버리곤 하였다.
나는 감방의 벽면이 저러려니 생각하였다. 그리고 더구나 화가인 K군
을 위해서 그 사막의 벽면에다 만년필의 잉크라도 뿌려놓고 싶었다.
벽이 그립다. -<벽>에서
죽음에 대한 단상과 병원의 벽면을 바라보며 화자가 천착해 보이는
생존의 의미가 잔잔하게 나타나 있다. 이들 작품들은 기법상에서 소설
적 기법을 수필문학에서 실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수필과 소설의 만
남이요, 수필문학의 영역확대를 위한 실험 정신일 것이다.
이태준의 문장은 그의 ≪문장강화≫에서 보듯 어문일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며, 개성적 접근을 통한 언어가 지닌 감각적이고도 사실적 표현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한 작가였다. 그의 문학관은 주로 소설에서 나타
나고 있으나, 그의 수필집 ≪무서록≫에 나타나 있는 수필은 첫째로, 자
신의 문학관이 피력된 수필들이 다수 보이고 있다는 특이성이다. 둘째
로, 그의 수필에는 전아, 유려한 연금술사다운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로, 동양적 관조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넷째로 소설적 기법을
실험했다.
수필에 대한 이태준의 견해는 “수필은 논문보다 오히려 찌름이 빠르
고 날카롭고, 형식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경詩境이나 가벼운
경구, 유머가 적나赤裸하게 나타나 버린다.”이다. 이태준의 수필론은 “필
자의 면목이 첫마디부터 드러나는 글이 수필이다.”라는 단정 아래 다음
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작가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
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세사 만반에 통효通曉해서 어떤 사물에 부딪치는 정당한 견해에 빨라야
할 것이요, 정당한 견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찰에서나, 표현에서나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태준, ≪문장강화≫, 창작과비평사, 1991, 166쪽.
이같은 이태준의 수필론에 대하여 윤병로는 그 요점을 다음의 몇 항목
으로 정리하고 있다.(윤병로, <상허 수필론의 재음미>, 수필학, 제6집, 1999. 71쪽)
첫째, 한 제題의 글로 너무 길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작 길어야 20자
행으로 100향 내외라야 한다.
둘째, 상想이나 문장이나 자기 스타일은 살리면서도 이론화하거나 난
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음영적 관찰이 필요하다. 어떤 보잘것없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나 음영으로 부동浮動하는 것을 천명해 주는 데 현묘미玄妙美가 있다.
넷째, 품위가 있을 것. 그러나 겸허한 경지라야지, 초연해서 아는 체,
선한 체 ‘체’가 나와서는 능청스러워지고, 능청스러워선 오히려 품위는
커녕 천해지고 만다.
다섯째, 예술적이어야 한다. 수필은 보통 기록문장이 아니다. 무슨 사
물을 정확하게만 기록해서 사물 그 자체를 보도, 전달하는 데나 그치면
그것은 문예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감정적 인상, 주관적인 소회
所懷에서 서술해야 한다.
1930년대에는 이들 작가 이외에 출간된 수필집으로는 김억의 ≪사상
만필沙上漫筆≫(한성도서주식회사 발행, 1931년), 안재홍의 ≪백두산등
척기≫(유성사서점 발행, 1931년), 김동환의 ≪평화와 자유≫(삼천리사,
1932년), 이광수의 ≪인생의 향기≫(홍지출판사, 1936년), 이은상의 ≪노
방초露芳草≫(박문서관, 1937년) 등이 있다.
한상렬 --------------------------------------------------------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인천지역명예회장.
에세이포레문학회 회장. ≪월간문학≫, ≪수필과비평≫ 편집위원.
계간문예지 ≪에세이포레≫ 발행·편집인.
강남문화원 문예창작 지도교수.
저서에 수필선집 ≪비움과 없음≫, ≪신화를 꿈꾸다≫,
수필창작론 ≪수필문학 강독≫(전3권), 문학평론집 ≪수필문학의 성쌓기≫ 외 70여 권.
신곡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문학상, 구름카페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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