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이나 난민촌 또는 재난지역에서 보람을 찾던 시절에 강열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은퇴한 정파의들은 여전히 꿈을 접지 않고 살려고 한다. 한 나라의 의료 환경을 개선시키고 한 지역의 롤 모델로서의 역할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있다. 질병은 물론 열악한 환경을 정화하는 일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정파의들은 그런 보람을 갈구하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열대의 정글을 그리워한다."
정파의 - 이종규
열아홉 해 전의 기억이 다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것은 차분하고 조용한 말소리와 싱긋이 웃던 모습이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간이 그의 모습이 생각나던 때가 있었다. 특히 열대의 정글에서 진료할 때면 더욱 그랬다. 홍수나 재난지역에서도 얼핏 스쳐가던 그의 모습이 삼삼해지곤 했다.
힘들고 지칠 때면 나 혼자만의 고생은 아니라면서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다만 혹독한 추위 속에서 진료할 때에는 이상할 정도로 그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로지 열대의 정글이나 밀림 속의 진료환경에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환자들을 대할 때면 열대의 정글과 무더위만 그리워질 뿐이다.
김영삼 정부는 외무부 산하 정부투자기관인 국제협력단을 운영하면서 각종 대외지원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에 의사를 파견하고 의료 활동을 지원하며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렇게 지구상의 오지에 파견되어 고군부투하는 의사를 정파의라고 불렀다. 북파 공작원이란 어휘처럼 이미 잊힌 어휘나 다름없다.
파견국 생활의 가장 두려운 것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그들은 외로운 의료 특공대나 다름없었다. 열아홉 해 전에 우리는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동남아의 정글과 사이클론의 홍수지역으로 그렇게 뿔뿔이 헤어졌다. 카메룬과 페루 그리고 미얀마와 방글라데시가 그런 나라들이었다. 1998년을 끝으로 정부에서는 더 이상 정파의를 운용하지 않는다.
선발된 정파의들은 열대의학을 비롯해서 현지의 특수한 질병을 따로 공부해야만 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책이기도 했다. 연수교육이 끝나고 각자 파견될 국가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파견일자가 가까워질 때쯤 가족을 동반하고 한자리에서 조촐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나름대로의 국가관이나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한 지론을 거침없이 펼쳐보기도 했다. 현지의 적응과정이나 어려움을 생각하며 서로 고심을 하기도 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모두들 비장한 각오를 감추지를 못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 연락할 것을 굳게 다짐을 하면서 헤어졌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막연한 다짐이었다. 열아홉 해 전의 일이다.
정파의들이 정부와의 계약을 끝내고 귀국하면 국공립병원에 일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행정이나 운영은 진료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미 오지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돌아왔을 때에는 오로지 사랑을 실천하고 베푸는 일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만한 게 없다. 병원 행정이나 운영하는 일은 거리가 멀기만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이미 터를 잡고 있는 의사들의 눈치나 보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개업을 하면 갈등으로 고달프기만 하다. 오히려 정글이나 난민촌 또는 재난지역에서 보람을 찾던 시절에 강열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은퇴한 정파의들은 여전히 꿈을 접지 않고 살려고 한다. 한 나라의 의료 환경을 개선시키고 한 지역의 롤 모델로서의 역할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있다.
질병은 물론 열악한 환경을 정화하는 일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정파의들은 그런 보람을 갈구하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열대의 정글을 그리워한다.
<쇼생크의 탈출>이란 영화를 보았다. 오랜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낸 후 만기출소를 한 전과자들은 현실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교도소생활에 향수를 느끼거나 현실생활을 저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 충분히 납득이가고 이해가 되는 일이다.
내 나라 땅을 밟고 나서도 해가 거듭할수록 그리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환자들에게 하염없이 베풀기만 했고 무작정 사랑을 주기만 했던 생활방식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십여 년 이상 몸에 배어든 그런 생활 태도가 순식간에 제거되지 않았다. 은연중에 물들고 있는 식구들의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저런 생활방식이 과연 귀국해서도 통할까? 냉정하고 보다 더 현실적이어야 하는데 이미 그들의 천성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서 서글프고 때로는 새로운 용단을 내려야만 했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모습이나 양로원에서 하루 일과로 지치는 경우가 많았다.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어두운 미래를 떨쳐버리지 못해 안타깝기만 했다.
지난해 몽골 의료 봉사는 짜증스럽기만 해서 동행했던 팀원들에게 몹시 민망하기만 했다. 현지관리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참으로 난처한 일들이 생기고 말았다. 몇 년간 잘 지속해오던 몽골 봉사활동을 접기로 했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택한 곳이 네팔이다. 네팔은 참으로 호기심이 발동하는 곳이다.
이리저리 정보를 취합하면서 TV의 <러브 인 아시아>의 프로에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낯익은 얼굴이 네팔의 현지 주민들을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방글라데시의 이○○ 원장님! 참 보고 싶었는데……. 여전하시구나. 그는 착하기만해서 국내에서 개업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천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만약 그가 다시 국내에서 개업을 하면 한동안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을 모습으로 혼란스러울 게 틀림없다. 마냥 베풀고 사랑하는 일에 만족하는 천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필코 이 원장님을 만나야겠다. 방글라데시에서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아 네팔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 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드러나지 않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고행이다. 새로운 연계를 만들고 그의 삶의 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다. 아울러 귀국한 정파의 세계를 그에게만은 활짝 열어주고 싶다. 틀림없이 새로운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현격하게 다른 두 나라의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정파의들의 공통된 보람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종규 ---------------------------------------------------
계간 ≪에세이 문예≫로 등단. 저서: ≪일차 진료와 여행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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