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전인격으로 시를 써야 한다. 손가락으로 기교나 앞세우며 거짓된 화장이나 일삼는다면 가소로운 악덕이 아닌가. 그런 무리들이 얼마나 식자들의 지탄을 받았던가. 이들이 남긴 시라는 것은 키로 날려 보내야 할 껍데기가 아닐까. 여러모로 김남곤의 시와 인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갈채와 목례를 보내고 싶다. 어느 하루를 빌려 한적한 다원에서 맑은 차라도 대접하며 담소할 시간이 기다려지는 소이다."
시인과 지절志節 - 이종승
천변을 따라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 우편함을 살피자 외우 김남곤 시인의 시선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반갑게 웃으며 나를 맞는 것처럼. 바로 시집을 기다리던 지인의 손을 이끌고 내 방으로 모시 듯, 손에 들고 서재로 들어와 천천히 읽으며 음미를 한다.
우선 글머리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시선이 머물자, 그의 인간과 문학에 심취하게 되고 외경심을 가지게 된다.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이다.
“어두운 길에서도 부시로 차돌을 치면 사람 같은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반갑게 어깨를 두드리며 물으면 그대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걸 믿고 살았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사람이라고 모두 선의와 사랑으로만 살아가던가. 청산리 싸움의 영웅이라던 철기 선생이 부통령에 출마했을 때 안호상 박사가 찬조연사로 하던 말이 생각이 났다.
“늑대가 무섭다, 호랑이가 무섭다 하지만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도깨비가 무섭다, 귀신이 무섭다 하지만 인간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대포가 무섭다, 미사일이 무섭다 하지만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이는 독재자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삼단논법의 서두이지만 인간의 악성을 경고한 말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너울을 쓰고도 얼마나 고약한 무리들이 많은 속세인가. 그런데 세 번이나 인간 존중의 선언을 내세우다니! 인간에 대한 선의가 얼마나 도타운 사상인가. 스스로 참다운 사람으로 익지 않으면 흉내도 낼 수 없는 삶의 경지려니. 무학대사라야 이성계가 부처님으로 보이는 법이지 않나.
김남곤 시인과의 인연을 헤아리면 반세기가 조금 넘는다. 우연히 지인들과의 연락으로 문학 지망생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지방대학의 법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그는 지방 신문의 기자였다. 비록 박봉의 기자였지만 이미 시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 수준이라는 중평이 있었다. 몇 차례 진지한 모임이 있었지만 각자 생업에 쫓기다 보니 유야무야 흩어지고 말았다. 말을 아끼고 조용하며 사람에 대한 예우가 보이는 그와는 인연의 끊을 놓지 않은 채.
그 뒤로 그와는 어쩌다 옷깃만 스칠 정도로 만나며 교분이 이어졌다. 사사로운 애경사나 문인들의 모임에서 만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유수와 같다는 세월은 무심히 흘러만 갔고, 그의 꾸준한 연찬과 노력은 차차로 유명 인사로 밀어올리는 밑거름이 되었다.
1979년에는 ≪시와 의식≫으로 등단하더니 전북일보의 여러 부장을 거쳐, 사장을 역임하고 우석대학교의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문인들이 추천하여 전북문협 지회장과 예총회장에 당선되어 문인들의 위상 제고를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한국문단의 중견 시인으로 자타가 공인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서투른 천안통과 타심통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인간됨과 문학의 경지를 흠모할 진면목이 많다. 그의 <조선낫>이란 시를 읽어보면 시퍼런 선비 정신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마지막 연을 인용해 보자.
내 가슴속 때 없이 길어나는
굴절의 양심도 겁줘보면서
행여 녹슬까 한밤중
깊은 잠의 허리통도
끝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반세기가 넘도록 전북일보를 천분의 직장으로 지키고 받들었다. 사이비 기자가 넘치는 시절이지만, 부조리의 먼지를 묻히지 않는다는 정평이 있었다. 청렴과 성실과 선의의 인간관계로 살아온 보람일 것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빚>이란 시가 있다. ‘빚 얻고/ 돌아오던 날/ 눈물도/ 기쁘다.’ 이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심심상인心心相引으로 눈시울을 적실만큼 마음이 아려온다. 그처럼 곤고한 생활을 견디면서도, 영혼이 맑은 시를 한평생 차돌처럼 지켜오다니.
시인이란 이 만큼의 지절이 갖추어야 독자들이 모자를 벗고 경의의 인사를 표할 것이 아닌가. 자기의 영혼 속에 등대를 밝혀 두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무리들에게 길을 건너가도록 해야지. 대나무의 기상으로 살면서 정의의 피리를 불어야 할 것이지. 아니면 자연의 화원을 열어서 문학의 향기를 그윽하게 마시게 하든지.
몇 년 전에 고창문화원 원장이신 이기화 시인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분은 1950년대 말에 등단하고도 시집을 발간하지 않은 청고한 성품이었다. 바른 의기가 서릿발처럼 비치는 병약한 시인의 절규를 들었다. 당신의 은사이기도 한 한국의 저명 시인을 찾아가 매서운 고언을 드렸다고 했다.
“선생님이 친일의 시를 남기고 역사의 죄인이 된 것도 모자라서, 독재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시혜나 받아내는 걸인이 될 수 있나요? 제자인 제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러신다면 제자의 인연을 끊을 것입니다. 시인이라면 지절志節을 흉장胸章처럼 달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그렇게 간곡한 고언을 듣고도 태연하게 웃으며 “자네들이 돕지 않으면 어쩌나?” 하더란다. 그 뒤로는 그분의 그림자도 보기가 싫다고 하였다.
시인은 전인격으로 시를 써야 한다. 손가락으로 기교나 앞세우며 거짓된 화장이나 일삼는다면 가소로운 악덕이 아닌가. 그런 무리들이 얼마나 식자들의 지탄을 받았던가. 이들이 남긴 시라는 것은 키로 날려 보내야 할 껍데기가 아닐까.
여러모로 김남곤의 시와 인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갈채와 목례를 보내고 싶다. 어느 하루를 빌려 한적한 다원에서 맑은 차라도 대접하며 담소할 시간이 기다려지는 소이다.
이종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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