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회장이셨던 라대곤 선생이 타계하셨다. 1993년 ≪수필문학≫에 <고향집 감나무>로 문단에 나온 이후 수필가로, 소설가로, 20년 동안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면서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가셨다. ≪수필과비평≫이 수필문단의 거대한 뿌리가 되기까지 물심양면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라대곤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여기 2회에 걸쳐 추모의 특집을 마련했다. 소설 <퍼즐>은 투병 중에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그 외에 수필 다음으로 애정을 가졌던 선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편소설 ≪망둥어≫를 통해 선생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퍼즐 - 라대곤
명산동 사거리가 분주해졌다. 도로가 넓어지고 신호대가 정비되더니 사람들의 왕래도 활발해졌다. 명산동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큰길 안쪽으로 있는 유곽시장만 해도 그렇다. 얼마 전까지 폐허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명산시장으로 이름도 바꾸고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지역상가의 재래시장으로 탈바꿈해서 노점상들까지 자리를 잡고 나섰다.
명산동이 분주해진 것은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임해공단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굴다리가 월명산 밑으로 뚫려서 차량통행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도 말하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인접한 월명동에 문화의 거리가 만들어지면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부르기 좋게 명산동 사거리지 사실은 월명동 삼학동 명산동 중앙로가 모두 인접되어 있는 곳으로 구도심권을 활성화하려면 이곳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몇 년 전부터 시청에서 정비를 한다고 하더니 드디어 인접 월명동부터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월명동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독차지해서 거주하던 곳이다. 아직도 일본인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곳에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며 거리를 복원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다가 올림픽 메달을 주네 못 주네 하는 판에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일본인 관광유치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비웃는 사람도 많지만 선거 때 구도심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시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사실 이곳 군산 항구는 일제 35년 동안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서 실어가려고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제 나라처럼 흥청거렸던 곳이기 때문에 도시계획 자체가 저희들 마음먹은 대로였다.
지금은 명산시장으로 불리지만 그때는 홍등가 유곽이 불야성을 이루었고 주변도 화려했다. 그 유곽 때문에 지금도 명산 시장을 유곽골 시장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유곽이 무엇인가?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공창 구역이다. 밤이면 수많은 창녀들이 유객을 하던, 빨간 등이 화려하게 켜진 홍등가일 뿐만 아니라 밤낮을 모르고 술과 도박으로 흥청대던 곳이다.
일본인들은 제 놈들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는 유흥가를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법도 무시하고 유곽은 물론 인근에 중국인 화교 학교도 있었고 유곽에서 100m 떨어지지 않은 골목길에 일본식 건축법으로 부처님을 모신 동국사라는 절까지 지어놓았다.
지금의 군산에는 사창가며 홍등가의 유곽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본인들의 잔재는 아직도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동국사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쓰루스 가옥이며 소위 말해서 ‘나가야’라고 하는 일본식 건축물인 개인 주택들이 원형대로 남아있어 심심치 않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요즈음은 동국사 가는 길이라고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의 거리를 조성하고 있어서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기웃거려보기에 좋은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항구 군산은 아름다운 도시다. 나폴리나 시드니처럼 맑은 물에 아름다운 해변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대신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금강하구둑이 있고 그림 같은 월명산이 있다. 산과 바다 그리고 강까지 어우러져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곳이다.
민선시장이야 이곳을 당연히 관광도시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일본식 건축물 ‘나가야’를 살리고 복원해서 일본인들의 향수를 불러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코웃음을 친다. 차이나타운을 만들어서 중국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씨 뽑아 먹고 말 일이지 약아빠진 일본인들의 주머니에서 무슨 수로 엔화를 꺼내겠다고 혈세를 낭비하느냐는 비웃음이었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8·15 해방 후에 침략자 일본인 잔재를 없애겠다고 공원마다 설치되었던 신사를 때려 부수고 난리를 칠 때가 바로 어제였다. 그런데 아무리 경제가 우선이라지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다시 망령을 부리는 일본인 관광객을 불러들여 잔돈푼을 얻어먹고 살겠다고 하는 것이냐며,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야 한다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구도심 활성화도 좋지만 아무래도 일본인 거리를 복원하겠다는 것은 나이를 먹은 시민들에게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일본인 거리를 복원하자면 어찌 ‘나가야’집뿐일까?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조화朝化라는 일본양조장도 명산동 사거리 근처에 있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이름이 백화로 바뀌어 3·15부정선거판까지 술을 취하게 만들어서 부정선거의 축을 이루게 했던 우리나라 최대의 정종공장이었다.
술 공장에 홍등가 유곽까지 확실하게 복원해서 옛날의 흥청대던 군산을 다시 만들자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일본관광객 환영.’
“뭐야?”
“또 쪽발이 세상이 오는 거냐?”
사거리 빨간불 신호에 걸려 대기하고 있던 나이 먹은 사람들이 맞은편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허탈해하고 있다.
“병구놈 짓이구먼.”
“퉤!”
시의원 자제가 서울변두리 대학에 붙었다고 현수막을 달아놓고 축하를 해대는 판이니 까짓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현수막 하나쯤 걸어놓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이제 환영 현수막까지 걸어놓은 것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일본인 관광객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한일 수교가 성립된 지 언제인데 일본관광객을 거절하겠냐고 하겠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명산 시장에서 일명 ‘가내야마’로 통하는 김병구 때문에라도 이러한 사실에 고개를 돌리고 침을 뱉고 있었다. 김병구가 누구인가? 유곽시장 번영회 회장님 아닌가.
명산 시장의 동편에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이 있다. 이층 건물인데 아래층은 김치찌개 식당이고 좁은 계단으로 올라서면 다섯 평쯤의 사무실 입구에 번영회 사무실 간판이 보인다. 들어서면 작은 책상이 두 개 보이고 뒤쪽으로 회전의자에 회장 책상이 있다.
직원은 두 사람이다. 회장이 이름 대신 오가로 불러대는 80이 다된 늙다리와 그의 심부름꾼에 굳이 비서라고 주장하는 사환 박 양이다. 이상한 것은 말뿐이지 정식으로 번영회를 발족한 적도 없고 시장사람 누구도 회원이라고 가입한 사실도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회비를 내는 사람도 없고 회비를 받아야겠다고 나서는 직원도 없다. 그렇다보니 관리비도 인권비도 정식으로 지출되는 게 없다.
“번영회 좋아하시네.”
나이 먹은 시장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김병구가 감투를 쓰려고 저 혼자서 번영회를 만들어서 시키지도 않은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시비를 하는 사람이 없다. 번영회 배후에는 김병구의 돈 장사가 있기 때문이다. 병구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금융업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장 노점상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수 돈놀이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회장님의 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번영회 운운해서 사칭을 해도 시비를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가내야마로도 불리는 병구는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출근을 한다. 오 영감과 박 비서는 한 시간 전에 나와서 청소를 하고 회장이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커피에 스포츠 신문 그리고 눈에 좋다는 결명자를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맞추어놓고 대기를 해야 한다.
오늘은 개천절이다. 하루쯤 집에서 쉴 만도 한데 소용없는 일이다. 정각 9시에 병구가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다. 박 비서가 득달같이 커피 잔을 받들어 들고 달려왔다.
“무궁화.”
오 영감이 아침 인사를 올렸다.
“독도는 우리 땅.”
“독도로 바꿉니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영감에게 반말지꺼리다.
“꿈에 독도를 보았다.”
“회장님 소원 성취하시려나 봅니다.”
영감이 손을 비비며 아부를 한다.
“니가 내 소원을 알아?”
“무궁화 아닙니까?”
“뭘 알아?”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꿈에 독도가 보였다면 오래 잃어버렸던 것을 찾는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니가 꿈 해몽할 줄 아냐?”
“들은 풍월이지요.”
병구의 얼굴이 환해지고 있었다.
“점심이라도?”
“돈 있어?”
“어제 일 좀 했습니다.”
월급도 없는 직원에게 점심을 얻어먹겠단다. 어김없이 비싼 집으로 가자고 할 것이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비칠거리면서 뒷걸음으로 물러나가는 영감의 등에 대고 병구가 코털 하나를 뽑아서 후하고 불었다. 기분이 좋을 때 하는 버릇이다.
“더러분 새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조금 전에 병구 면전에서 아부하던 영감이 아니었다. 문을 뒤로 닫고 나온 영감은 주름진 얼굴에 허옇게 뒤집은 눈알을 부릅뜨면서 두 손을 꼬아 감자떡을 먹였다.
“독도 좋아하고 있네. 아나? 무궁화.”
무궁화니 독도니 도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살아온 영감이 병구에 대해서는 분명 알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함께 어울려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잘 처먹고 잘살아라.”
영감이 방문 뒤에서 자신에게 욕하는지도 모르고 병구는 느긋하게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생각하면서 결명자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오늘따라 알맞게 데워진 차가 입 안에 향기를 준다.
가내야마, 그러니까 김병구는 재벌로 통한다. 낡았지만 자칭 빌딩이라고 주장하는 이층 건물도 있고 노점상들에게 깔아놓은 돈도 얼추 몇 억쯤은 된다는 소문이다. 자칭 회장이라고 거드름을 피우고 돌아다닐 만하다. 그렇다고 시장사람이 회장으로 대우해주는 것도 아니다. 눈길만 비켜서도 비웃는다. 그의 전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회장이라고 거드름을 피우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안에 있는 만복상회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던 배달원이었다. 그마저 미운털이 박혀 떨려나가지 않으려고 죽을 둥 살 둥 일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복이라고 주인이 분수를 모르고 시의원이 되겠다고 정치판을 쫓아다니더니 결국 만복상회조차 부도가 나고 말았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엉뚱하게 배달원 병구가 만복상회를 일으켜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인을 대신해서 빚쟁이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내가 대신 벌어서 빚을 갚겠다. 나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병구가 만복상회 빚을 모두 떠안고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채권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몽땅 포기해야 할 판에 몇 푼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병구에게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복상회가 하루아침에 병구밀가루로 간판이 바뀌었다. 배달원이 사장으로 올라앉은 것이다.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는다고 병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인심은 언제나 변하게 되어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돈을 먼저 받겠다는 희망으로 오히려 병구에게 붙어 아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장사가 잘되어야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너나 없이 밀가루라면 한주먹이라도 더 팔아주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덕분에 가게는 번창했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 모퉁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병구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만복상회의 부도 자체가 병구가 계획한 음모였다는 것이다.
“미친 놈들.”
소문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왔는지는 몰라도 제법 근거 있게 떠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병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진실은 오직 병구만이 알고 있을 뿐, 만복상회 사장이었던 박 사장과 그리고 그의 마누라 오경자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도 없었다. 설령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제 와서 병구밀가루의 주인이 바뀔 이유도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족보를 만들어 어엿한 김병구라는 이름으로 번영회 회장 직함까지 갖고 있지만 아무도 병구의 출생 내역을 모른다. 부모가 누군지 아니 한국 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조차 모른다. 병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번영회 사무실에 있는 영감뿐인데 어쩐 일인지 영감조차 쪽발이 새끼라고 비웃을 뿐 까발리지를 않는다.
출생지도 모른다. 족보도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들어 왔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기억이 나는 것은 해방이 되기 전 해에 열 살일 때 일본인 유곽의 여주인 에이꼬의 몸종으로 와 있었다. 사람들은 일본인이 창녀와 어우러져 까질러놓은 종자라고 비웃었다.
어려서 이름은 그냥 가내야마였고 커서는 별명이 쪽발이였다. 철이 들어서도 아는 것이라고는 어쭙지 않은 일본말 몇 마디에 술만 마시면 흥얼거리는 일본노래 몇 줄이었다. 하는 짓도 영락없는 쪽발이였다. 그후 해방이 되고 어떻게 한 것인지 호적을 들추어보면 1945년 군산 명산동 178번지로 출생신고가 되어 있다. 덕분에 십 년이나 젊게 호적에 등재가 된 것이다.
병구에게는 유곽시장이 출생지다. 그리고 고향인 셈이다. 병구가 시장을 떠나서 산 것은 딱 3년 군대 갔을 때뿐이다. 제대하고 곧바로 돌아와 취직이라고 한 것이 시장 안에 있는 밀가루 대리점 만복상회였던 것이다. 혼자 몸뚱이로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튼튼한 두 다리에 힘꼴이나 쓰는 것뿐이어서 죽어라 일을 했다.
출퇴근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벽이고 밤중이고 부르면 달려 나갔다. 주인 박 사장은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바로 옆집에 배달할 국수 한 다발까지 병구를 불러댔다. 다음날 배달해도 될 밀가루 한 포대도 곤하게 잠자는 사람을 한밤중에 깨워서 다녀오라고 하는 인정머리없는 인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가내야마라고는 대우해줄 때 부르는 이름이고 보통은 쪽발이새끼로 불러대면서 도시 인간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밥을 먹지도 않으려고 했다. 해방된 지가 바로 엊그제고 보면 일본인이 밉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이해가 되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박 사장이라는 사람은 학벌이고 경력이고 내세울 것도 없는 주제에 정치를 한다고 정치판을 쫓아다니는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무렵은 정치자금이라고 몇 푼 주면 배급같이 나누어주던 지역정당 부위원장 자리였다. 그러다보니 부위원장도 수십 명이나 되었다. 그런 부위원장이 무슨 벼슬이라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면 사람들은 장사를 해먹으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박 사장이 어느 날부터인가 말투까지 바뀌었다. 조찬이 어떻고 중식이 어떻고 하면서 쫓아다니더니 자기가 무슨 거물이나 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고 아예 시의원을 하겠다고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실력 있는 중앙당 간부와 선이 닿았다는 것이다.
지역정당의 노랑옷만 입고 나오면 허수아비도 당선이 되는 것이 이 지역 정서이고 보면 공천만 받을 수 있다면 지방의원 한 자리쯤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일진대 그 공천권을 갖고 있는 중앙위원의 줄을 잡았으니 허풍으로만 들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가게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병구의 일만 늘어났다. 말 타면 경마 잡고 싶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헌 포니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주어야 했다. 커다란 덩치로 좁은 포니 뒷자리에 허리를 걸치고 앉아 무슨 거물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라니. 파출소 소장자리라도 한자리 꿰찼으면 여러 사람 죽일 인간이었다.
병구는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절 보기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만두자고 결심을 했지만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시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병구는 무궁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는 유곽시장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가슴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풀자면 해방이 되기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날 밤 수양어머니였던 일본 포주 에이꼬의 애인 가내야마 이치로 상이 커다란 상자를 낑낑대면서 끌고 나타났다. 병구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인사를 하겠다고 방으로 들어가자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던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빨리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엉겹결에 쫓겨나왔지만 어린 마음에도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빛이 흘러나오는 판자벽 공이 사이로 안을 훔쳐보았다. 가내야마 이치로가 상자를 열고 있었다. 순간 병구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눈이 부셨다. 황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무궁화.”
가내야마 이치로가 에이꼬 귀에 대고 소근대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그날 밤 병구는 눈부신 금빛이 어른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에 또 기웃거려 보았지만 가내야마 이치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이꼬가 병구를 불러서 말을 했다.
“너는 내 수양아들이다. 내가 잠시 이곳을 떠나지만 곧 돌아온다. 그래서 물건도 그대로 놓고 가는 것이니 네가 잘 지키고 있어라.”
가벼운 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 떠나는 에이꼬를 보면서 병구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곳에 놓고 간다는 물건이 그날 밤 보았던 금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덩이를 찾아야 한다. 에이꼬가 떠나기가 무섭게 집안을 뒤져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거운 금덩이를 멀리는 끌고 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분명히 가까운 곳 어디쯤에 숨겨 두었을 것이다.
“무궁화.”
분명 금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어떻든 무궁화는 금괴와 관련이 있는 암호일 것이다. 암호만 풀 수 있다면 금덩이를 찾아 시장을 다 사고도 남을 것이다. 이래저래 쉽게 시장을 떠날 수 없는 병구의 비밀을 알 리가 없는 박 사장은 구박해도 갈 곳이 없는 병구로 인정하고 완전히 무시하고 나섰다.
억지로 눌러앉아 있는 병구지만 박 사장이 공천을 받겠다고 서울을 촐랑대며 쫓아다니느라고 가게에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보면 더러워도 조금 더 견디어 보기로 한 것이다. 며칠 후에 나타난 박 사장이 또 시비를 걸었다. 용돈을 챙기려고 하는 수작이었다.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잠시 시비를 하고 나면 금고에서 돈을 뽑아들고 그 길로 달려 나가서 며칠씩 코빼기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번에는 사모님 오경자 여사가 가게를 맡았다. 다행이었다. 가게일을 아는 게 없으니 자연스럽게 병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만둘 마음을 접고 장부정리부터 거래처 수금까지 앞장서서 열심히 뛰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오경자 여사가 어느 날부터인가 병구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전화위복이 이런 것인가? 대부분의 가게일을 맡겨주었다. 간사한 것이 사람이다. 마음에 응어리도 조금씩 풀려가면서 일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는데 호사다마라고 이번에는 갑자기 오경자 여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버렸다. 다시 박 사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개 버릇 남 주지 못한다고 이번에는 밀가루 선수금까지 걷어다가 들고 나가고 있었다. 누워있는 오경자 여사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박 사장 대신 병구에게 가게를 맡긴 것이다. 하지만 직책만 사장이 되었을 뿐 월급이나 대우는 달라진 게 없었다. 일판이 좀 묘하게 되었지만 박 사장도 이제 가게 돈을 축내려면 어쩔 수 없이 병구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다. 병구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박 사장에게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고 용돈도 빼주었다. 잔돈 뺏어가는 재미로 박 사장도 조금씩 달라지는가 싶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렵게 돌아가던 자금이 확 풀려버린 것이다.
병구가 가게를 잘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중장부 덕분이었다. 공장에서 들여오는 밀가루값을 외상으로 미루고 납품하는 양조장에는 단가를 낮추어 현금으로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소위 말해서 비자금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쥐새끼가 제 꼬리 잘라먹는 줄도 모르고 한 푼씩 쥐어주는 용돈에 눈이 뒤집힌 박 사장은 불만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밀가루 가게가 얼마나 갈 것인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마구잡이로 끊어놓은 수표가 부도나버리고 말았다. 부도가 난 만복상회야 망해버렸지만 병구는 양손에 떡을 쥐게 된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박 사장과 형이야 아우야 하고 살던 사람들이 언제였느냐는 듯이 병구 옆으로 모여들었다. 오경자 여사까지 이 세상에 없고 보면 누구라 만복상회를 기억해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병구 같은 놈을 잡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귀신도 낮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라고 삐죽대고 있었다.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밀가루 파동이 오고 말았다. 수입 밀가루가 쏟아지면서 병구의 창고에 가득 쌓아둔 국산 밀가루가 똥값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남의 것을 훔친 놈이 잘사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되지 했는데 이게 무슨 조화 속인가 이번에는 양조법이 바뀐 것이다. 수입밀가루는 모두 양조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국산 밀가루의 품귀가 일어났다. 버리지 못해 창고에 쌓아놓았던 밀가루가 뒤집혀 황금가루로 변해 버린 것이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거래처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선금 받으면서 배급 주듯 나누어주었다. 창고에서 썩어버릴 국산 밀가루 덕분에 업계에서 일약 큰손으로 부상을 하게 되었다.
국수 공장이나 제과점에서는 또 언제 올지 모를 파동을 위해서 너도 나도 병구와 거래를 맺고 싶어 했다. 선수표까지 끊어서 맡기는 사람까지 있었다. 거짓말처럼 돈이 불어났다. 유곽 시장에서 현금이 제일 많다고 소문이 났다. 시장사람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재미삼아 달러이자를 달라고 했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인가? 달러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자 날짜가 되기 무섭게 이자에 갈비짝까지 사들고 왔다. 기일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면서 끝이 없었다. 이자 맛을 보고 나니 밀가루 장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지고 말았다. 현금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일수돈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돈 쓸 사람은 천지이고 이잣돈의 수입은 밀가루 장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많았다.
아예 밀가루 장사를 치워버렸다. 본업을 바꾼 것이다. 이자에 이자를 붙이고 밥도 이자로 먹었다. 심부름꾼 오 영감만 해도 그렇다. 벌써 십 년째 숙식비를 해결해 준다는 명목으로 월급도 없이 부려먹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어려서부터 함께 살았다는 인연보다는 십년 전 일수 돈 백만 원을 쓴 것이 유죄였다.
오 영감 또한 시장에서 병구와 같이 배달원으로 잡일로 평생을 살았다. 무엇 때문에 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썼는지 모르지만 배달해서 번 돈으로는 이자를 제 날짜에 갚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이자에 이자가 붙다 보니 원금만 더 늘어나 버렸다.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몸을 담보로 사무실 청소와 함께 잔심부름을 몸으로 때우고 있는 것이다.
영감의 얼굴이나 하는 짓을 보아서는 분명 병구에 대한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시치미를 떼는 것을 보면 그에게도 분명 무슨 비밀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누구도 두 사람을 의심해본 적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전 열 시 번영회 사무실로 손님이 찾아왔다. 번영회로 손님이 찾아온 것도 오랜만이다. 오 영감이 검정 양복으로 정장을 한 젊은이 둘과 나이 먹은 중년 사내를 안내해서 들어왔다.
“누구?”
김병구가 뜨악한 얼굴로 물었다.
“곤니찌와(안녕하세요?).”
얼마 만에 들어보는 억양인가? 김병구가 화들짝 놀라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다구시 하시모도데스(내 이름은 하시모도요.)”
관광객을 앞세우고 들어온 가이드가 통역을 해주었다.
“일본 관광객이 어찌 우리 사무실을?”
“회장님이 붙인 현수막 때문인 모양입니다.”
“그래?”
“번영회와 상의할 일이 있답니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온 검정 양복을 입은 일본의 젊은 관광객들이 거칠게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본 야쿠자인 것 같습니다.”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는 회장님 귀에 대고 오 영감이 다가가 소근거렸다.
“엉!”
“유곽골 시장 번영회가 맞스무니까?”
이번에는 서투른 한국말이었다.
“옛날에는 그렇게 불렀었지요.”
“하지메 마쓰떼(처음 뵙겠습니다.)”
관광객이 익힌 한국말이고 보면 서툴 건 분명하겠지만 어색해도 너무 어색했다.
“무궁화.”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젊은 관광객이 불쑥 내뱉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건 보통 관광객이 아니다. 무궁화는 오직 병구 혼자서 알고 있는 비밀의 암호다. 처음 보는 젊은이가 무궁화를 뇌까리고 있다니 갑자기 두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젊은 관광객이 주머니에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혹시노 이 집을 아시무니까?”
일본식 목조 건물이었다. 사각으로 판자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기와로 올라간 지붕이 낯설지 않다. 희미하게 문패도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문패는 분명 ‘金山一郞’ 분명 가내야마 이치로였다.
“당신들 누구야?”
“일본이노 가내야마 상이 보냈스무니다.”
가슴이 벌렁대다 못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평생을 기다린 것이 이렇게 쉽게 눈앞에 나타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어? 여기가 낙원 한정식 아닙니까?”
고개 너머로 기웃거리던 오 영감이 중얼거렸다.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 자리를 옮깁시다.”
병구는 시간을 얻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이며 무궁화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좀 더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모실갑쇼?”
또 영감이 나섰다.
“홍차와 국화로 가자.”
복원된 월명동 일본인 거리에는 일본식 숙소에 음식점 그리고 우체국까지 모두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다. 그 일본인 거리에 한국 전통찻집 ‘홍차와 국화’가 있다. 일본 문화 속에 한국 전통찻집이고 보면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흥미로울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병구는 지금 찾아온 일본인들에게 환심을 사고 싶은 것이다.
“찻집은 점심을 먼저 먹고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오 영감이 나섰다.
“아예 낙원으로 가시지요.”
허둥대는 병구가 오늘따라 오 영감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 아마도 갈피를 잡지 못해서일 것이다. 낙원은 일본인 거리에 있는 한국 한정식 식당이다. 일본에서 온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한국음식을 즐기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좀 전에 그림에서 본 집과 거의 흡사한 건물이다. 영문을 모르는 일본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어정쩡하게 따라 나섰다.
“한데 웬 야쿠자냐?”
야쿠자라면 일본의 깡패들이 아닌가? 하필 그 무시무시한 깡패들이 찾아오다니? 혹시 가내야마상이 깡패들을 동원해서 금괴를 찾아가려고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수록 불안하기만 하다.
“가내야마 상이 살아 있습니까?”
한상 가득히 차려온 밥상을 가운데 두고 앉은 병구가 허둥대듯 서둘러 물었다.
“물론이무니다. 에이꼬노 안부 전했스무니다.”
‘에이꼬.’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리던 이름인가? 병구는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물컵을 들어 벌컥거리면서 마셔댔다.
“이상하무니다.”
좀 전에 집 그림을 꺼내들었던 젊은이가 두리번거리더니 놀란 눈으로 유리창 밖을 가리켰다.
“난데스까(뭡니까?).”
“저 나무 이상하무니다.”
낙원은 정원이 크지는 않지만 나무들이 숲처럼 우거져 있다. 향나무, 사철나무 이외도 여러 종류의 나무가 어깨를 비비듯 서 있다. 그중 가운데 서 있는 허리통이 굽은 소나무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오이, 소노 도 리데스(아, 맞습니다.).”
다른 젊은이조차 놀란 몸짓으로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이집이노 맞스무니다.”
가이드와 일본 젊은이들이 밥상을 거들어 떠보지도 않은 채 뜰로 달려 나가더니 갑자기 허리가 굽은 정원수 소나무를 얼싸 안았다. 나무를 붙잡고 빙 한 바퀴 돌더니 에이꼬 안부를 전해 주던 젊은이가 품속에서 다시 집 그림을 꺼내들었다. 병구가 어깨너머로 기웃거리자 젊은이들이 서둘러 지도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병구가 안달이 났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욧시.”
“감사하무니다.”
젊은이들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식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싶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뒤에 서 있던 오 영감이 오른쪽 눈을 찡긋했다. 그러고 보면 일본 관광객들과 오 영감은 뭔가를 미리 알고 있었던 처지였던 것 같았다. 그들의 행동은 누가 봐도 말씨부터 행동까지 어색했는데 오직 병구만 흥분을 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왜 지금껏 낙원이 어머니 에이꼬 애인 가내야마 집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땅을 치고 싶었다. 명산 시장에서부터 금괴를 운반해 올 만한 거리면 분명 이 집 정도일 것이다. 지금껏 명산동 시장 안에서만 헤매고 있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마음이 한없이 급해졌다. 이제 가내야마 이치로가 옛날 자기 집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금괴를 찾으러 올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야쿠자까지 동원했다면 시간문제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금괴가 묻힌 곳을 찾아야 한다.
“무궁화만 풀면 된다.”
“혹시?”
순간 병구의 머릿속으로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급히 몸을 돌려 낙원 뒷담 벽 쪽으로 달려갔다. 몇 년 전 ‘사라호’ 태풍 때 바람에 쓰러졌던 나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맞았다.”
멈춰선 병구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부러진 나무 등걸이 방치된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무궁화 뿌리가 분명했다.
“오가야!”
“네.”
“빨리 홍차와 국화로 와야 쓰것다.”
전화통에 대고 악을 쓰듯 헉헉거리는 병구의 목소리에 맞추느라고 오 영감조차 헐레벌떡 달려왔다.
“복덕방을 불러.”
“무슨 말씀이신지.”
“낙원 식당을 사겠다.”
“갑자기 식당을 뭐하시게요?”
“따지지 말고 무조건 사란 말이다.”
“에이, 회장님이도 장사 잘하는 집을 누가 판다고 합니까?”
“값을 달라는 대로 줘.”
“꼭 사시겠다면 시가의 몇 배를 주어야 할 겁니다요.”
“열 배고 스무 배고 주라고.”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병구는 낙원 매입 자금을 만드느라고 깔아놓은 일수돈을 모두 걷어들이고 명산동 건물까지 담보로 잡혔다. 그리고도 모자라 카드 빚까지 얻어서 드디어 낙원을 샀다. 명산동 재벌 병구는 이제 빚까지 걸머진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무얼 걱정하겠는가? 이제 명산시장과 함께 월명동에 있는 일본인 거리를 몽땅 사고도 남을 만큼 많은 금괴가 자신의 것이다. 생각할수록 볼이 미어지게 웃음이 나올 뿐이다.
등기를 끝낸 날 밤은 유난히 달이 밝았다. 병구는 고사를 지냈다. 삶은 돼지머리와 막걸리를 무궁화나무 등걸이에 놓고 엎드렸다. 잠시 후면 드디어 평생 꿈이 펼쳐지는 순간이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삽을 들었다. 이제 이 삽 한 자루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재벌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 삽 두 삽. 이마에 방울방울 땀이 맺히고 있었지만 지치는 줄도 몰랐다.
“텅!”
드디어 소식이 왔다. 삽 끝에 찍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아!”
손에 들고 있던 손에서 삽을 던져버리고 맨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무 상자의 귀퉁이가 나왔다. 병구가 와락 달려들어 가슴으로 상자를 껴안았다.
“드디어 황금을 찾았다.”
상자 뚜껑을 잡아 힘껏 당겼다. 이제 달빛이 출렁거릴 만큼 환한 황금빛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하얀 천이 덮여있다. 힘껏 황금을 덮은 천을 걷어올렸다. 이게 뭔가? 빈 상속자에 너덜너덜한 헌 장부가 한 권 나왔다. 전등불로 비추어 보니 술도가 외상장부였다. 병구가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하지만 무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 다시 일어난 병구는 삽을 집어들 새도 없이 손가락으로 다시 흙을 파기 시작했다. 퍼 올리는 흙더미 속에 피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가운데 손톱이 빠져나가 버렸어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 낙원에서 멀지 않은 순댓국집에 오 영감이 젊은이들과 함께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쪽발이 놀음 하지 안스무니까?”
억지로 일본 발음을 흉내 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며칠 전 번영회 사무실에 나타났던 엉터리 일본인 야쿠자 관광객들이 분명했다. 양복도 벗어버리고 잠바 차림인 젊은이들은 어디를 보나 대한민국 청년들이 분명했다.
“히히히.”
“야쿠자라고 하니까 얼굴이 노래지는 꼴이라니.”
오 영감은 철철 넘치게 따라주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
지금쯤 지붕 위에 떠있는 달빛 밑에서 아귀같이 땅을 파고 있을 병구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내 퍼즐의 끝은 이것이었다.”
드디어 명산시장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오 영감은 오른쪽 안주머니에 잡히는 은행통장을 지그시 눌러보았다. 낙원을 사들인다고 뽑아낸 병구의 전 재산이다. 동그라미를 뒤에서부터 몇 번이나 세어보았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분홍빛이다. 벌렁벌렁 입이 찢어지게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라대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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