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도둑놈소굴 같은 세상인데 그까짓 밤손님이 무슨 대수라고 나 혼자만 아닌 밤중에 웬 호들갑(?)이람. 그래도 군사정권 땐 우리 민족혼이 오롯이 담긴 국어와 역사, 윤리교육 등 인간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교단에서 내려놓진 않았다. 세계 어느 강대국들이 그러한가? 이는 우리 정부가 미국수주의자들의 고차원적인 식민정책에 휘둘려서 우리 민족자존의 국민교육이 실종된 서글픈 결과다. 다시금 1년지계는 농사에 달려있고, 10년지계는 식목이며 100년지계는 교육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아닌 밤중에 웬 호들갑 - 전일환
삐익! 찌이익! 한 옥타브 높은 경비음이 직선을 그리며 봄밤을 찢어놓는다. 소스라치게 놀란 난 단걸음에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10분이다. 집 밖의 전후좌우 사방의 외등을 켰다. 비상벨이 계속 울리지만 선뜻 나갈 수가 없다. 옆집 개도 놀랐는지 퀑퀑 짖어댄다.
곧바로 경비업체에서 확인전화가 왔다. 너무 낡고 헐어 못쓰게 된 집이라 바깥 창호교체 철거공사 중이어서 밤손님이 방문한 것 같다고 했다. 최소 5분 안에 출동할 게 분명하고 경비원이 오면 함께 나가 볼 요량으로 잠옷을 벗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은 채 손전등을 들고 기다렸지만, 아무런 출동 기미가 없다. 5분, 10분, 15분, 20분이 지나도록 대문 벨이 울리질 않는다. 슬그머니 부아가 나고 이런 세상을 어떻게 믿고 살아갈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옛날 같으면 벌써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갔을 게 분명했지만, 요즘 세상에는 그럴 수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도 없는 무서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를 때려죽이고, 남편이나 아내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서로를 청부살해하고, 자식을 훈계했다고 분개한 나머지 교실에 난입해 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뺨까지 후려치는 세상이고 보면 어디 여기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으랴. 부모형제도 믿을 수가 없고, 교사나 공무원, 고위 공직자도 신뢰를 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국가부패지수가 수위를 달린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몇 해 전, 우리 지방의 전직 교육 수장이 온갖 수뢰와 비리로 떠들썩하더니 결국 검찰에 덜미를 잡혀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곧바로 검찰의 구속수사를 피해 자진출두를 하겠다던 허망한 말을 믿고(?) 기다리던 검찰을 보란 듯 따돌리고 그가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다. 세간에는 어느 세도가나 재벌가의 별장에서 산다고도 하고 외국으로 도피했다고도 하니, 정말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검찰이 짜고 잠행潛行을 도왔다고도 하고, 일부러 잡지 않는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대명천지 이 세상에 이런 일들이 어찌 가능할까?
요즘도 세상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사건들이 연일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속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산속에 그림 같은 별장에서 온갖 해괴한 성접대와 물질로 세상을 제멋대로 요리했던 일들이 사건에 관계된 한 여성의 고발로 세상에 드러났다. 가진 자들만이 만사형통되는 세상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고 즐기며 사는 그들의 부조리한 현실이 여실이 세상이 드러난 셈이다. 빙산의 일각일 터이지만.
더구나 청렴결백이 요구되는 공직자 후보자들의 국회청문회 광경은 더욱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위장전입에,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탈세 등은 필수요, 속임과 거짓말은 일상적인 일이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런 부적합한 인사들이 버젓이 임용이 되어 장차관의 권세를 누리고 잘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도덕불감증이 이 정도면 이 세상은 이제 막장이나 다를 게 없다. 모두들 생각과 판단이 흐리고 무디다. 경찰이 정관계로비대상자들의 출국금지를 검찰에 요구를 했는데도 검찰은 일부 검찰 관계자에게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고도 하니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이러하니 우리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까? 온통 도둑놈들의 세상이다. 언필칭 공직자들을 공복公僕이라고들 하지만, 그들은 국민의 종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君臨하여 막강한 권세를 누리는 공주公主들이다. 정말 공평과 정의 대신에 온갖 불의와 부정이 활개 치는 요지경 세상이다. 이런 세상인데 우리나라 유수한 경비업체인들 오늘밤의 늑장출동이 무슨 대수라고.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조바심을 하며 경비원을 기다리고 있는데 24분이 지나고서야 대문벨 소리가 울렸다. 정말 하루가 여삼추如三秋였다. 비로소 현관문을 열고 그와 함께 집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창호철거 공사 중인지라 어디를 손을 댔는지 알 수가 없다. 화가 치밀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죄송하다고만 연발하는 어린 신입사원이 오히려 안쓰러워서 크게 나무라지도 못하고 돌려보냈다.
내일은 그 업체에 전화를 해서 자초자종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지만, 좀체 잠이 들지 않는다. 이 세상 모두가 이러하니 누굴 믿고 살아갈까. 온통 도둑놈소굴 같은 세상인데 그까짓 밤손님이 무슨 대수라고 나 혼자만 아닌 밤중에 웬 호들갑(?)이람.
그래도 군사정권 땐 우리 민족혼이 오롯이 담긴 국어와 역사, 윤리교육 등 인간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교단에서 내려놓진 않았다. 세계 어느 강대국들이 그러한가? 이는 우리 정부가 미국수주의자들의 고차원적인 식민정책에 휘둘려서 우리 민족자존의 국민교육이 실종된 서글픈 결과다. 다시금 1년지계는 농사에 달려있고, 10년지계는 식목이며 100년지계는 교육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제부터라도 인간교육부터 바로 해야지. 그래야 민족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정치도 이런 망령의 춘몽에서 깨어나고, 국민들도 헛된 봄꿈에서 깨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일환 ------------------------------------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그말 한마디≫, ≪예전엔 정말 왜 몰랐을까≫, ≪옛 수필산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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