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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지상에서 길 찾기] 간병을 하며 - 박상혜

신아미디어 2013. 7. 2. 08:08

"다양한 인간의 삶, 사랑 청춘 예술 문화, 학문과 과학, 심오한 철학과 통찰 등……. 그 궁극적 환희가 인생의 오묘한 섭리로 통하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하지만 죽음은 두렵고 슬프다. 그러나 죽음은 또 하나의 삶, 곧 삶의 연장이고, 그 인생의 최고의 이력이라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우리는 죽음과 화해하는 인생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승화해야 할 것 같다."

 

 

 

 

 

 

 간병을 하며   박상혜


   영화 <아무르>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눈물은 ‘카타르시스’ 작용인데, 이 정화淨化는 눈물이 안으로 스미며 마음을 핥는다. 아름다운 사랑의 마무리가 왜 이렇게 아픈가. 실은 인생의 마무리인 황혼이 얼마나 허무하고 시린 시기인가. 하지만 가을 산과 노을이 그렇게 곱고 붉기에, 황혼의 한유와 농익은 사유의 지혜가 충만하기에 또 연륜의 직관과 통찰이 확실하기에 우리는 황혼을 즐기며 좀 거들먹거리며 살아도 되는 황혼 폼을 꿈꾸어 왔다.
   내가 아름다운 승화의 경지를 몰라서 이렇듯 저미는 것일까. <아무르>는 인생을 재검하는 슬픈 진단 같아 아뜩했다. 하긴 생로병사가 자연철칙인데, 본연의 자연 모습일 터, 새삼스럽게 웬 사치한 슬픔인가.

 

   요사이 난 남편의 간병인이다. 간병인의 시각이 <아무르>를 더 투시했는지도 모른다.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간병의 한계, 그 벽 앞에서는 처절하게 무너지는 리얼한 실제 영상이라서인지, 인생의 진정한 고苦를 체감한 듯 두렵다. 내 일생의 지킴이였던 지팡이, 내 남편의 무구한 사랑에 대한 보은으로라도 난 그의 오물도 기꺼울 줄 알았다. 하지만 환자인 그는 애틋한 내 한 수저의 밥도, 한 번의 마스크 사용도 전부 간섭이라 투정하며 전혀 딴 사람으로 변했다. 아주 낯선 미운 사람으로 돌변해서 동문서답은 기본이고 반대의 옹고집에 칼날 같은 신경질이 걸핏하면 손 발길질을 동반하려 한다. 교묘히 피하는 내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억울한 인생의 시뮬레이션도 있을 수가 있었나? 내가 그를 이렇게 애지중지하듯, 그도 나를 이토록 애틋해 했었건만…….
   오랜 중병에 고귀한 사랑의 빛도 속절없이 다 날았단 말인가. 이제는 내 황혼에 새카만 벨트만 깔렸나 싶어 여생이 암담했다. 간병이 힘겨워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환자에게 인격을 기대하지 마라.”
   위로가 되는 명언이었다. 인격을 거둔 환자는 떼쓰는 어린이, 욕구만 있는 동물, 자연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금 후의 내 모습인데, 뭘…….’ 하고 마음을 확, 돌려 바꾸니 그것도 구원이었다. 이제는 이 ‘웬수’가 갑자기 ‘여보’로 둔갑을 한다. 측은지심으로 연민이 넘친다. 참, 인간의 삶은 갈수록 묘경妙境이다. 이게 바로 철학이지 싶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인간이 아둔해서 엉켜진 삶이 굴헝을 만들었을 뿐, 신은 우리에게 자연 철칙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기에 족함을 주셨다. 우주 천체 운영 현상의 조화와 묘용妙用으로 지상낙원에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보름달이 엄마처럼 우리를 어르며 지켜주고 사계절을 채색하는 온갖 꽃의 신의 색깔은 인간을 위무한다. 자연의 향기와 훈풍은 달콤한 삶의 꿈을 꾸게 하고, 자연 탄주. 그 오묘한 음향의 열락들은 우리의 영혼을 손짓한다.
   다양한 인간의 삶, 사랑 청춘 예술 문화, 학문과 과학, 심오한 철학과 통찰 등…….
   그 궁극적 환희가 인생의 오묘한 섭리로 통하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하지만 죽음은 두렵고 슬프다. 그러나 죽음은 또 하나의 삶, 곧 삶의 연장이고, 그 인생의 최고의 이력이라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우리는 죽음과 화해하는 인생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승화해야 할 것 같다.
   인생의 끝이 허무하고 아리기에 더 아름답게 승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종始終과 생사生死가 있듯 기쁘게 왔으니 기쁘게 가는 것은 당연한 귀추가 되겠지만, 기쁘게 왔다가 한 세상 잘 살았으니 좀 더 의젓하게 가면 어떨까.
   송시열이나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재촉하는 의거는 못하더라도 담담히 자연스레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환자나 간병인이 두려움에 떨 것이 아니라 아픔을 소화하며 너그럽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아픔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불편도 없이 어찌 원리原理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담담한 자연의 회귀가 인생의 아름다운 승화가 아닐까.
   누구든, 한 여생이 흘렀다면 좀 숙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익은 열매가 꼭지를 따듯, 설상雪霜 묻은 가을 단풍, 삭풍을 이긴 매화 향, 저무는 노을…, 그들 자연처럼 자연스레 사라지면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인생의 승화가 되지 않을까, 요사이 화두가 되는 ‘well dying’의 참된 의미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
   “여보, 약 먹을 시간이야.”
   “응, 빨리 와!”
   오늘부터 환자를 꼭 보듬고 함께 웃으며 담담해지려고 노력하련다. 아직은 환자가 아닌 간병인임에 감사하며…….

 

박상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