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살이라는 게 그리 만만하기만 한 것이 아니거늘 어쩌면 적당히 타협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터이다. 아직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겠지만, 저 작은 감정에서부터 삶의 지혜를 얻어 가는 것이리라.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자라는 연약한 성품보다는 적당히 부딪치는 일들도 경험하면서 탄탄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저런 감정들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아이로 자라도록 마음 써 주어야 할 일이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개구쟁이라도 좋고 알랑방귀 좀 뀌어도 좋으니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빈다."
알랑방귀 - 김재희
통통한 사내아이였다. 팔목과 무릎의 관절이 오목 들어가고 양쪽으로 두툼히 올라온 살집이 부풀 대로 부푼 빵처럼 포동포동했다. 그야말로 장군감이었다.
그런 아이를 안고 있다가 큰며느리에게 넘겨주었다. 꿈치고는 너무 선명하고 의미 있는 꿈 같아서 며느리에게 임신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몸 상태로 봐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태몽 같은데 싶으면서도 그냥 넘겨 버렸다.
얼마 후, 다시 그 아이 꿈을 꾸었다. 내가 넘겨준 아이가 큰며느리 품에 안겨 있었다. 혹시나 하는 의혹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없는 아이 재촉하는 것 같아 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임신이라는 것이다. 분명 태몽이 맞구나 싶었다. 그런데 대부분 임신 직후에 태몽을 꾸는 것이거늘 나는 훨씬 전에 꾸었으니 웬일일까.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은 제 어미보다도 내게 먼저 온 아이다. 그래서인지 나와는 어떤 인연일까 하는 궁금증이 떨쳐지지 않는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를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고 나를 따르지도 않으니 더욱 이상하다. 내 곁에 잘 오지 않으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 살살 건드려 환심을 얻어 보려 하지만 내게는 어림도 없다는 표정이다.
나들이를 갔다가 제 엄마는 구경 가고 잠시 내가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처음엔 엄마 떨어지지 않으려고 칭얼대더니 엄마 모습이 보이지 않자 울음을 멈추었다. 계속 울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그쳤다. 그런데 슬쩍슬쩍 내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보란 듯이 꾹꾹 눌러 보기도 하고 내 손에 있는 것을 가져가기도 했다. 이제 좀 친해지려나 보다 하고 반가웠다. 아이보다 내가 더 신이 나서 이런저런 말을 하고 어르며 놀았다.
저도 내게 무슨 말인가 하려는지 “어!” 하는 소리를 자주 했다. 어느 땐 길게 했다가 짧게도 하고 크게 했다가 작게도 했다. 나름대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 같은데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좀 곤란했다. 그러다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빙긋이 웃는다. 아! 짝사랑만 하다가 처음으로 교감을 나누게 되는 순간이랄까. 저는 그저 하는 짓이건만 나는 들떠서 날아갈 것 같다.
이대로라면 곧 친해져서 내게도 잘 안기겠지 싶다. 살짝 안아 보니 저항하지 않고 안겨서 내 입도 만져보고 코도 만져본다. 간질거리면서도 그 감촉이 얼마나 좋던지. 그저 나 혼자 좋아서 얼굴 비벼 대는 것에 비하랴. 손끝으로 전해오는 짜릿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 나가면서 나도 같이 아이가 되어간다. 서로 장난치다 “앙!” 하고 손가락을 깨물 뻔했다.
이럴 땐 제 엄마가 좀 늦장을 부려도 좋을 성싶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아기 떼어놓고 가는 엄마는 언제나 불안하지 않던가. 그런 엄마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온전히 내 손자의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아이도 그런 것 같아 흐뭇하기만 했다. 이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잠시였다. 제 엄마가 돌아와 차 문을 열고 아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 이 녀석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듯 큰 소리로 울었다. 순간의 동작이었다. 제 엄마는 어리둥절했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거나 꼬집지 않고서야 저렇듯 성난 소리로 울어 댈까. 며느리도 나도 황당한 눈빛이 오고갔다. 물어볼 수도, 변명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내게서 제 엄마의 품으로 건너갔다.
제 엄마 품으로 가더니 살며시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행여나 엄마 품에서 떨어질세라 엄마 목을 꽉 움켜 안으며 얼굴을 돌려 버린다. 내게는 절대 오지 않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그럼 이 녀석이 그동안 나에게 한 행동은 제 엄마 없으니까 잠깐 알랑방귀(?) 뀐 것이란 말인가. 이제 돌쟁이 어린것이 벌써 이런 눈치를 보다니. 이거 너무한 것 아닌가 싶어 얄밉기도 하고 앙증맞기도 하다. 또한, 그만큼 인지능력이 발달하고 있구나 싶어 좋기도 하고 역시 그랬구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랴. 이래도 내 손자, 저래도 내 손자인 것을. 그것도 요 녀석은 내게 먼저 온 아이 아니던가. 훗날 태몽 이야기를 해주며 으름장을 놓으면 아마도 꼼짝 못하고 이 할미 사랑을 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는 내가 쏟은 몇 배의 사랑을 받아 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리 만만하기만 한 것이 아니거늘 어쩌면 적당히 타협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터이다. 아직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겠지만, 저 작은 감정에서부터 삶의 지혜를 얻어 가는 것이리라.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자라는 연약한 성품보다는 적당히 부딪치는 일들도 경험하면서 탄탄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저런 감정들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아이로 자라도록 마음 써 주어야 할 일이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개구쟁이라도 좋고 알랑방귀 좀 뀌어도 좋으니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빈다.
김재희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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