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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지상에서 길 찾기] 축제 - 김문주

신아미디어 2013. 7. 1. 08:45

"부부를 두고 이야기할 때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땅이 없는 하늘, 하늘이 없는 땅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늘이 위에 있다고 해서 땅보다 더 높다고 한다면 그것은 위치의 다름일 뿐이지 우열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 순 없다. 의미나 가치를 포함하는 존재 이유는 각자 독립적으로 절대 고유하다."

 

 

 

 

 

 

 축제   김문주


   “올해는 뭘 먹을 거야?”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딸아이의 음성에 잔뜩 기대감이 묻어난다. 평소 가고 싶었지만 비싼 음식 값에 망설였던 곳을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의견도 섞어서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메뉴를 정하는 이 일이 언제나처럼 살랑 즐겁다.
   결혼기념일.
   어느덧 서른세 번째 기념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와 있다.
   한껏 멋내고 잠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남을 기다리는 연애와 전혀 다른 결혼생활. 결혼한 후 몇 년간 서로 다른 성격과 버릇, 성향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이 훨씬 많은 남편과 나는 무던히도 싸웠다. 싸우고 눈물 흘리고 때론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면서 마찰음에 파열음까지 나던 시절 이렇게 참고 저렇게 버텨가다 보면 희한하게 결혼기념일이 다가와 있곤 했다.
   부부를 두고 이야기할 때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땅이 없는 하늘, 하늘이 없는 땅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늘이 위에 있다고 해서 땅보다 더 높다고 한다면 그것은 위치의 다름일 뿐이지 우열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 순 없다. 의미나 가치를 포함하는 존재 이유는 각자 독립적으로 절대 고유하다.
   남자와 여자. 성별이 다른 만큼 남자와 여자는 속성이 다르고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이 근원적으로 다르다.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물리적으로 여자를 제압할 수 있어서 우위라고 주장한다면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존여비의 유교적 관념이 진즉에 빛을 잃어버린 지금의 남자와 여자이다. 그런 동등한 위치에 선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살아가면서 해마다 결혼기념일을 맞는다.
   결혼하기 전에 결혼기념일을 챙겨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서운해 하거나 심지어 그 일로 다투기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때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했는데 왜 여자는 받고 남자는 주어야 하는지, 선물을 한다면 서로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사람의 공통된 기념일에 한 사람은 주고 다른 한 사람은 받는 것을 당연한 듯 여기는 모습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연애시절에도 결혼을 할 때에도 나는 남편보다 하열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친구관계에서 부부관계로 바뀌면서 달라진 것은 역할과 호칭이었다. 어른들 앞에서 차마 이름을 부를 순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결코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것은 남편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서 그런 남편과 나는 한 사람만을 위한 생일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결혼기념일을 중요하게 보내자고 했다. 그래서 결혼기념일에 쓸 비용을 미리 모으기로 했다.
   저금통에 매일 백 원씩 모았다. 일 년 동안 모은 돈으로 부담 없이 외식하고 얼마간 남는 돈으로 기념될 만한 물건을 샀다.
   해가 거듭 바뀌어 아이들이 태어나고 화폐가치가 달라지면서 사만 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는 맛있는 것을 사먹기가 어려워 모으는 금액을 늘렸다. 한 해 동안 매일 따로 마련한 지갑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씩 그리고 저금통에는 수시로 동전을 모은다. 그렇게 모이는 금액이 매년 50만원이 조금 넘는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 되면서부터 남편과 나보다도 아이들이 더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쪽으로 메뉴를 정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도 간다. 오락실에 가서 마음껏 게임을 즐기게 하고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도 부른다. 지금은 가자고 하는 아이들이 없지만 그때는 아이들 핑계 삼아 나도 오락실에 따라가보는 즐거움이 덤으로 얹어지기도 했다.
   기념일 전날 밤, 저금통을 열고 우르르 쏟아지는 동전을 보면 언제 이렇게 모였나 매번 신기하다. 동전을 크기별로 나누어 세다 보면 한 해 동안 서로 짜증내고 화내고 다투던 날들을 견뎌내느라 애썼다는, 그래서 기특하다는 보상을 받는 기분까지 맛본다.
   결혼 10주년을 지나면서 결혼기념일의 행사로 해외여행을 꿈꾸었다. 두 사람의 묘안으로 여행을 위한 3년 만기 적금을 들었다. 결혼 15주년에 난생 처음 호주와 뉴질랜드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로 3년마다 적금을 타서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제주도 일주 여행과 동남아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온 일은 우리 부부의 삶의 여정에서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삼 년을 기다려서 탄 적금으로 아파트 중도금 내느라 해외여행이 무산된 적이 있었다. 놓쳐버린 삼 년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기다리던 삼 년. 그 후로 어떤 일이 있어도 여행만큼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부모님과 아이들, 가까운 친지들에게 여행지에서 산 간단한 선물을 드린다. 무엇을 받게 될까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한바탕 떠들썩해진다.
   외식하고 남은 돈으로 예쁜 유리잔을 샀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유일하게 둘이 보낸 결혼기념일이다. 첫 아이와 함께한 두 번째 기념일로부터 차츰 동참객이 늘어나 올해는 며느리와 사위 손자까지 여덟 명이 모인다.
   모여서 한바탕 즐기는 일이 축제라면 분명 우리 부부가 보내는 결혼기념일은 축제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조촐한 연례축제가 올해처럼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조금은 사치스러운 축제가 된다.
   벌써 삼 년 후의 축제가 기다려진다.

 

 

 

김문주  ---------------------------------------------
   ≪수필과비평≫ 등단. 2004년 ≪에세이문학≫ 완료 추천. 수필집: ≪0번 블루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