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그것을 하지 않아 많은 후회를 남긴다. 그 해야 할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보통사람이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 못한 이유도 간단하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 구근
세월이 지나고 보면 아까운 역사의 장면들이 많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그것을 하지 않아 많은 후회를 남긴다. 그 해야 할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보통사람이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 못한 이유도 간단하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신라 화랑을 미워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 어느 나라가 자력에 의해서 삼국통일을 하거나 연합에 의해서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그 드넓은 만주 벌판이 우리 국토로 편입되는 광경이 현실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는 세계 4대 강국의 하나쯤 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신라는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이고 내응함으로써 고구려 옛 땅에는 당의 안동도독부를 설치하게 되고, 백제 옛 땅에는 당의 웅진도독부가, 신라 옛 땅에는 당의 계림도독부가 설치되어, 당이 삼국을 멸망시키고 만 것이다. 나중에 신라의 국토회복운동이 벌어지긴 하지만, 겨우 한강 이남을 차지하는 어처구니없는 판도를 만들었다. 백만장자가 하루아침에 초가삼간의 촌부로 전락한 격이다.
그 다음의 애석한 장면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다. 우왕의 요동 정벌의 지시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한 조처였다. 명나라는 아직 원의 위세에 눌려 우리가 요동을 점령해도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명은 만주 벌판에 손이 닿지 않은 상황이어서 만주의 지도자 심양왕에게 형식적인 지배를 허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국권찬탈의 야욕은 나라도 대국大局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가소로운 것은, 그 회군의 이유 중 “첫째가,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以小逆大一不可).”라는 것이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며 심어놓은 사대주의 사상이 소인배의 자기변명의 무기까지 되어준 것이다.
나는 사적지 답사에 나서서 요동벌판을 횡단한 적이 있다. 그 끝없는 벌판에 펼쳐지는 지평선의 기름진 벼농사는 보고만 있어도 살이 쪘다. 저 넓은 땅이 지금 우리 국토라면 얼마나 풍요로운 생활이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장면이었다. 중국인은 잡곡이 주식이기 때문에 쌀 생산지는 별로 큰 애착이 가는 곳도 아니었다.
또 한 장면은 6월 항쟁으로 학생들이 쟁취해 놓은 대통령 직선제하에서, 차려놓은 밥상을 걷어찬 일이다. 김영삼, 김대중의 소위 민주세력은 그때 후보단일화만 했으면 노태우 군사정권을 탄생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의 갤럽여론조사는 아주 정확하기 때문에, 단일화만 하면 100% 이긴다는 통계가 나와 있었다. 또 대다수 국민이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동시에 단일화를 못 하고 3자대결을 하면 100% 진다는 결론도 나와 있었다. 그러나 두 김씨는 그 간단한 논리를 이행하지 못하고 정권을 다시 군사독재정부로 넘겨줌으로써 역사를 10년은 후퇴하게 만들었다.
또 애석한 일 중의 하나는 얼마 전에 벌어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파문이다. 논문조작 운운하며 세계적인 한 학자를 완전히 매장해버리고 만 일이다. 우리가 그를 지원하여 연구를 계속하게 해 주었다면, 아마 우리 60만 대군도 할 수 없는 큰일을 혼자 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빌게이츠 같은 인물을 하나 배출했을 수도 있다. 세계의 성인병환자들이 한국으로 몰려든다고 생각해보라. 당뇨병이나 전립선 같은 병 하나만 완치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든다 해도 우리는 거부가 될 수도 있다. 다른 나라는 잘살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무고한 나라를 점령하기도 하고, 수백만 명을 학살하기도 하는 부도덕한 일을 일삼는데, 우리는 그런 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연구과정에 하자가 있다고 해서 밑둥치를 잘라버리는 어리석은 실책을 저질렀던 것이다. 미 ≪사이언스≫지가,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이 벌써 2004년이었다. 설사 그것이 오류였다고 해도 복제 소 ‘영롱이’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를 성공하여 우리에게 안겨주었지 않은가? 바이오산업 같은 첨단과학은 분초를 다투는 연구 분야이다. 우리가 바보짓을 하고 있는 사이에 바로 뒤따라오던 일본, 미국, 영국이 벌써 박차고 앞으로 나가버린 지 오래다. 작년에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줄기세포로 노벨상을 수상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아직 오지 않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장면이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남북통일 문제이다. 한국은 미국이란 외세를 등에 업고 남북통일을 하려 하고, 이북은 중국이란 외세를 등에 업고 남북통일을 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미국이나 중국의 한층 강화된 속국이 될 것이 빤하지만, 실은 그렇게 해서는 통일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것은 한국과 이북이 모두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4대강국 보장 운운한다. 어느 누가 우리를 보장해 준단 말인가?
방법은 단 하나 ‘이남과 이북이 연합’해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마지못해 따라오게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당장은 나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는 생뢰牲牢 정신이 있어야 대국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이다.
구근 -----------------------------------------------
수필집: ≪새벽을 깨는 새≫, ≪우리는 왜 노하지 않는가≫, ≪일본은 결코 문명대국이 될 수 없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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