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침이 어린 시절에는 의사소통의 한 수단이었으나 나이 들어서는 불통의 성을 쌓는 일이다. 스스로 고립되지 않고 나와 너,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의 요소를 찾아야겠다. 혹자는 “상대 때문에 상처가 있다면 먼저 자신을 용서해라. 그런 상대를 고른 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누구든 나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삐치는 50대 욱하는 60대 - 임동옥
지하철에서 60대가 50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막말을 하다가 멱살을 잡고 싸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분을 참지 못한 70대가 이혼한 아내와 장모를 천국(?)으로 보냈다는 끔찍한 기사도 있었다. 또 이웃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그 방에 불을 지른 씁쓸한 일도 있었다. 이 모두 욱하는 성질이 불러일으킨 범죄다. 경찰청 범죄관련 통계에 의하면 61세 이상 노인 범죄가 2000년에 비해 최근 2배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조직에서 우위를 점하기보다 밀려나기 쉽다. 나이뿐만 아니라 일이나 건강도 자꾸 뒤처져 간다. 한 살이라도 더 올려보려던 어린 시절에는 세월이 야속하였으나 나이 들면 아쉬운 게 세월이다. 바로 욱하기 쉬운 세대가 60대다. 60대는 아직 힘은 넘치는데 소외감이나 상실감이 크다. 스스로 건강하고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사회는 ‘잉여’ 인간 취급을 하니 분노를 느낀다. 이러니 자기도 모르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거나 욱하는 행동을 한다.
욱하는 60대 못지않게 삐치는 50대도 있다. 젊은 나이에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던 일도 곡해하곤 한다. 나도 아내의 무표정한 모습을 오해하거나 일상적인 말에 서운해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제 아내는 30여 년 전의 배우자가 아니다. 자주 ‘있을 때 잘하자.’라고 흥얼대면서도 나의 인색한 칭찬이 문제다. 야박한 칭찬은 냉기를 부르기도 한다. 가장 믿고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장풍을 맞으면 더욱 아픈 법이다.
최근 기업체에 다니는 친구들은 거의 명퇴나 권고 퇴직을 당했다. 이 친구들 3,40대 때에는 장소나 거리를 따지지 않았고, 의견충돌은 있을지라도 어떤 놀이를 하든 즐거움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남자들도 갱년기인지 퉁명한 말투나 눈빛만 달라도 삐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약속 장소가 원하는 장소가 아니면 토라지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내 방식대로의 아집만 커지니 어려워지는 게 소통인 것 같다.
삐침이 어린 시절에는 의사소통의 한 수단이었으나 나이 들어서는 불통의 성을 쌓는 일이다. 스스로 고립되지 않고 나와 너,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의 요소를 찾아야겠다. 혹자는 “상대 때문에 상처가 있다면 먼저 자신을 용서해라. 그런 상대를 고른 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누구든 나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진정한 자기 용서란 무엇인가?
자신의 잘못을 깊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이는 자신을 파멸시키는 두려움이 아니라 관계를 돈독히 하는 희망의 열쇠다. 어두움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잘 사는 게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놓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베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 주변에 고랑을 파고 거름을 주고 잘 가꾸는 일이다. 이것은 ‘욱’이나 ‘삐침’이 아니라 돌봄이고 배려요 삶의 진정성이다.
성찰과 반성은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묶는 일이다. 나아가 나와 너의 공감대 형성이요, 서로 단절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이끄는 결기다. 그러므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욱’이 아니라 ‘헐’ 하면서 참아야 된다. 궁리를 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바로 마음의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 마음을 바꾸려면 공지영이 말한 나를 위한, 너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위한 배려가 요구된다. 먼저 자신에게 솔직해야 되고, 둘이 있을 때 너를 먼저 위하고, 셋 이상이 있을 때 통찰력을 가지면 된다.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데는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에는 그릇됨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행이정行而正, 행동이 올바르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도 삐치는 50대에서 욱하는 60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삐치고 욱해서 삐죽삐죽하는 늙은 오빠로 살고 싶지는 않다. 서로 소통하면서 잘 살아보고 싶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가슴으로 칭찬하고 몸으로 안아주는 일 많이 하며 살고 싶다.
임동옥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계룡산의 아침이슬은 약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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