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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세상마주보기] 살바도르 곤잘레스 - 윤석희

신아미디어 2013. 6. 21. 08:26

"거리낌 없음과 자유분방함, 따뜻함. 그에게서 나오는 이 모든 것들이 부럽다. 예술과 삶이 유리되지 않고 타인의 삶에도 기여하는, 낮은 곳에서 기쁘게 사는 방식도 깨치고 싶다. 언제나 자유롭고 싶고 그걸 원해 여행을 하지만 기실 일상은 틀 속 액자다. 틀이 어긋나면 액자가 부서져 버릴 것 같아 작은 못 하나 빼낼 수 없다."

 

 

 

 

 

 

 살바도르 곤잘레스   -  윤석희


   웃음보가 터진다. 손을 내밀어 악수하면서도 킥킥댄다. 면전이니 결례가 분명한데 속수무책이다. 삐딱이 눌러쓴 붉은 모자. 코에 걸린 유난한 테 안경. 뽀얗게 칠한 얼굴에 과장되게 올라간 입. 빨간 남방에 흰 조끼. 백바지에 백구두. 껄렁해 뵌다. 아니 영락없는 광대다. 화면도 무대도 아니다. 실제 눈앞에서 부딪치니 당황스럽다. 하나 본인이 호탕하게 웃어대어 차라리 편안하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 기쁘지 않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갑자기 숙연해진다. 이런 심성으로 노안老顔에도 빛이 나는 것일까.
   짓궂게 팔을 흔들어댄다. 악수하며 들여다본 살바도르의 눈은 장난기로 그득하다. 예술가 특유의 아집은 없어 보여도 눈빛만은 강렬하고 예사롭지 않다. 외모와 내면의 상반이 묘한 매력으로 돋보인다. 그는 분명 유명 화가다. 영어를 전혀 쓰지 않는 고집에선 쿠바인의 긍지가 묻어난다.
   스튜디오는 그의 작품 전시장이고 작업실이며 만남의 장소다. 그를 찾아온 흑인들과 방문객이 뒤섞여 북적인다. 사람들 구경만도 심심치 않다. 빽빽이 걸려있는 그림 속에 묻혀 한나절을 보낸다. 작품 대부분은 추상 기법의 유화다. 흑인을 형상화하여 선명하게 표현한다. 대형 그림이 많아 거구인 체구와도 잘 어울린다. 방대한 스케일의 영혼을 만난 듯 신비스럽고 미스테리한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신시가지 베다도 지역은 벽화지대다. 그가 온통 칠을 해 놓았다. 집들과 벽과 도로까지 요술 나라 같다. 그림 때문일까. 거리가 활기차고 생동한다. 민초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린 그의 미술이 살아있다. 거기 스튜디오 앞, 마당은 흑인들의 거리 공연장이다. 룸바 공연이 한창이다. 북인지 엉덩인지 분간이 안 가게 흔들어대고 두들긴다. 타악기의 격렬하고 빠른 리듬이 심장 박동을 촉진한다. 구경꾼들도 어우러져 한판 춤마당이 질펀하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 후예들의 한을 표현한 음악과 춤이다. 자유를 갈구하는 절절함과 고통과 절망을 딛고 일어선 삶의 열락이 슬프게 전달된다.
   그 춤과 음악과 미술의 중심에 그가 있다. 모든 공연의 지원도 기획도 그의 몫이다. 평생 흑인들을 위무하며 그들에게 꿈과 희망이 된다. 산재했던 흑인들의 춤과 노래와 그림을 한 영역의 문화로 승화하고 보존하며 미래를 확보하고 있다. 피에르 같은 차림 뒤에 가려진 우수 또한 그의 예술과 고뇌의 근원을 이룬다. 백인과 흑인의 혼혈로서 쿠바 아프리칸의 친구로, 대부로 추앙받기까지 그의 삶도 지난한 강을 건넜다.
   한국의 다큐 프로에서 자신을 크게 조명해줬다며 내가 친근하단다. 천진한 장난꾼에게 흠뻑 빠졌다. 소련군이 버리고 간 사십 년대 자동차를 태워준다. 차에도 그림을 그려 울긋불긋하다. 그 화려함은 원시의 건강함과 발랄함 같다. 조수석 문도 그가 아니면 열 수 없고 차창의 유리도 없다. 전천후 쇼윈도로 고개가 자연스레 넘나들며 아이스크림도 주고받고 거리의 인파와 화합한다. 우렁찬 엔진은 탱크와 다름없다. 소리에 섞일세라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불러댄다. 나는 손뼉 치며 박자를 맞춘다. 지나는 사람들이 살바도르를 부르며 환호하면 휘파람을 불어 화답한다. 행복하라고 모자를 벗어 흔들며 소리친다. 덩달아 나도 신바람 나고 아바나 거리의 대스타가 된다.
   거리낌 없음과 자유분방함, 따뜻함. 그에게서 나오는 이 모든 것들이 부럽다. 예술과 삶이 유리되지 않고 타인의 삶에도 기여하는, 낮은 곳에서 기쁘게 사는 방식도 깨치고 싶다. 언제나 자유롭고 싶고 그걸 원해 여행을 하지만 기실 일상은 틀 속 액자다. 틀이 어긋나면 액자가 부서져 버릴 것 같아 작은 못 하나 빼낼 수 없다. 세상에 널린 게 새로움인데 생활은 구태의연하다. 가식과 형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정한 자유인은 요원하기만 한 거다. 그러면서 꿈꾸는 일탈이라니 아이러니다. 주변을 의식하여 스스로를 속박하는 꼴이다. 살바도르는 자신을 벗어던지고 이웃의 사랑을 받는다. 그 사랑으로 일상을 다시 긍정하고 화해한다. 비결이 무얼까. 주변을 싸안으며 사랑받는 삶의 근간을 나도 실천할 일이다.

 

 

윤석희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바람이어라≫, ≪찌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