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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지상에서 길 찾기] 추억 여행: 초임지를 찾아서 - 박세경

신아미디어 2013. 7. 2. 08:19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이 이렇게 그리움으로 다가오던 어느 날, 정군의 권유로 초임지를 찾았다. 후문과 이어졌던 논두렁 밭두렁은 4차선 도로로 변해 시원스럽기만 한데, 논과 밭, 산기슭까지를 주택과 음식점, 우람하게 느껴지는 4층짜리 어린이집이 차지했다. 나는 챙 없는 모자 모양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한 세월을 실감할 따름이다."

 

 

 

 

 


  추억 여행  : 초임지를 찾아서    -  박세경


   “선생님, 저 광릉초등학교 때 제자, 정현인데요. 기억 못하시지요? 신문에 실린 선생님 글을 읽고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했어요.”
   봄이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라 웅숭그리며 재래시장을 도는 참에 걸려온 전화다. 광릉초등학교는 내 초임지다. 언뜻 생각해도 50여 년 전이고 그간 제자들과의 교류가 없었던 터라 반갑기보다 당황했다. 게다가 주변도 소란하여 얼떨결에 내가 다시 걸기로 하고 끊었다.
   나는 중등 교사 자격증 덕분에 5·16 직후, 교사임용고사와 1주간 강습을 받은 후 광릉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3학년 1반을 담임해 정 군을 처음 만났다.
   정 군은 등교 시에는 감색에 흰색 칼라가 달린 양복을 즐겨 입었고, 방과 후면 담임이 좋아 주변을 맴돌다가 틈만 나면 풍금을 만지곤 했더란다. 그때마다 제지하는 대신 발판을 굴러주면서 도미솔 도미솔 손가락을 짚어주었고, 추울 때는 석탄을 타러 가거나 연탄재를 버리러 가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장갑이라도 끼워 보냈단다.
   그러나 내게는 지워진 기억이다. 내가 남편으로부터 퇴직 권유를 받아들인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 앞서 교사로서의 초심을 잃고 있다는 자각에서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학교 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수업에는 충실했지만, 아이들을 관용과 사랑으로 대하기보다는 엄정하고 경쟁에서 이기기를 종용하는 교사로 변해갔다.
   정 군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그때의 나는 미숙해서 시행착오의 연속이긴 했지만 아이들과는 하나였던 것 같다. 그저 나를 따르는 아이들이 좋았고 잘 가르치고 싶어서 퇴근 후까지 남아 풍금연습도 하고, 학습준비물도 열심히 만들었다. 당시, 나는 학교 사택에 방 하나를 숙소로 쓰고 있어서 출퇴근의 부담도 없었다.
   그 이듬해에는 2학년을 맡았는데 2년이나 더 어린 아이들이라, 갓 깬 병아리처럼 귀엽고 더 애착이 갔다. 수업 외에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만들고, 그리고, 찾아내고, 그 모든 일들이 무진장 재미가 있어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어느 따뜻한 봄, 자연 시간이었다. 자연 관찰을 목적으로 논틀 밭틀을 지나 학교 뒤, 동산엘 오른다. 맥고모자같이 생긴 동산의 챙 부분까지가 허용범위다. 교과서에 나오는 냉이, 꽃다지, 쑥부쟁이 등은 이미 관찰 대상이 아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열 배도 넘는 풀과 꽃 이름들을 알고 식용과 약초에 독초까지 훤하다. 나비나 벌, 여러 종류의 애벌레, 무논에 개구리 알, 올챙이, 거머리, 우렁이 등등도. 오히려 아이들이 선생님이고 교사가 따라가기 바쁜 학생이다.
   “와-. 우-.”
   밝은 햇빛과 작은 꽃들에 취해 있는 나와 여학생들 앞으로 한 떼의 사내 녀석들이 내닫는다. 놀랄 사이도 없이 몇몇이 엎어지며 환호성이 쏟아진다. 엎어진 아이들이 잡아 든 건 토끼 두 마리다. 재색 큰 놈은 어미요, 새하얗고 작은 놈은 새끼란다. 어쩌다 날랜 토끼가 고사리손에 잡혔단 말인가? 재색 어미에 하얀 새끼라니 신기하고도, 놀라 바들거리는 토끼는 참으로 가엽다.
   반 아이들은 의기충천, 개선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처음 발견한 녀석으로부터 몰이꾼들의 활약과 최종 포획자의 무용담까지 최대한 과장되게 전해지고 안타깝게 관전자로 남은 녀석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새내기 교사는 토끼가 위에서 아래로 몰면 그대로 굴러 떨어진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이어 반에서 키우자, 놓아주자, 약으로 팔자는 의견까지 분분하다. 오늘 학습목표는 자연 관찰. 덕분에 토끼들은 구사일생, 짧은 꽁지가 빠지게 산 위로 튀었다. “잘 가. 또 잡히지 마.” 어느새 아이들의 합창이 그 뒤를 따른다.
   1주일에 세 번 있는 체육 시간은 두 번이 4교시다. 5월부터 운동회가 있는 10월 초까지, 수업이 끝나면 땀과 흙과 먼지로 아이들 얼굴이 암괭이다. 우리는 곧바로 교문 밖 구멍가게에서 세숫비누 두 장, 빨랫비누 한 장을 사들고 100여m 떨어진 냇가로 간다. 철마산에서 발원해 팔야리 쪽과 진벌리 쪽으로 돌아 흐르는 두 물이 모여 큰물을 이루는 곳이다.
   아이들은 나보다 앞서 물의 양이 적은 두 물 쪽으로 올라가 남, 여로 나뉘어 맑은 물로 뛰어든다. 나는 당연히 두 물 사이 조금 높직한 삼각의 모래톱에 자리한다. 팬티 바람인 8-9세 꼬마들은 양쪽에서 물장구치며 돌 밑에 숨은 가재도 들춰내고 물고기도 잡고 소금쟁이, 물방개도 놓치지 않는다. 체육시간보다 더 즐겁고 신이 난다. 얇은 나일론 섬유가 주를 이루었던 당시, 벗은 옷들은 교사가 비누칠을 듬뿍해 던져주면 각자 빨아 따끈따끈한 돌짝밭에 말려 집에 갈 때면 깨끗해진 옷차림으로 뽀얗게 웃으며 손을 흔들곤 했다.
   그러나 미술시간은 늘 준비물이 부족했다. 12색이 선망이던 때, 6색 크레파스도 없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자료가 넉넉해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찰흙놀이다. 일주일 전에 아이들과 찰흙이 있다는 야산에 가 양동이 두어 개들이 만큼의 흙을 파다가 물에 푼다. 뻘건 흙물을 체로 걸러낸 후 가라앉혔다가 부대자루 위에 쏟아 말려가면서 놀이에 알맞게 반죽을 한다. 그 작업에 참가한 아이들은 미술 시간에 분단별로 찰흙을 나누어 주면서 “아껴 써. 바닥에 흘리지 마.” 등등 우쭐해서 훈수가 많다.
   지난해보다 더 빠르게 가을이 깊었다. 교사 발령 후 첫 연구 수업이다. 단원은 학예발표회. 아이들이 더 욕심을 내 전시회까지 겸하잔다. 노래, 동시, 연극에 무용도 분단끼리 나누어 맡고, 그림과 글, 그림일기를 복도까지 내다 붙인다. 발표회날, 평소에 말수가 적던 반장 녀석이 어찌나 능숙하게 사회를 보는지 모두가 놀라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이 이렇게 그리움으로 다가오던 어느 날, 정군의 권유로 초임지를 찾았다.
   후문과 이어졌던 논두렁 밭두렁은 4차선 도로로 변해 시원스럽기만 한데, 논과 밭, 산기슭까지를 주택과 음식점, 우람하게 느껴지는 4층짜리 어린이집이 차지했다. 나는 챙 없는 모자 모양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한 세월을 실감할 따름이다.
   학교 담을 끼고돌아도 주택과 음식점들이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생소하기만 하다. 상대적으로 조붓해 보이는 학교 앞길. 산뜻했던 교장 사택, 비누 사던 쪼그라진 구멍가게 대신 여러 개의 문방구, 빵집, 떡볶이집, 만화방 등등이 촘촘히 들어서서 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 맑던 냇물은 깊고 견고한 축대에 묻혀 보이지 않고 축대 양쪽엔 저층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양계장과 육우肉牛 사육장까지 넓게 자리를 잡아 앞을 막는다. 방향을 돌려 학교 정문을 들어서니 짐작한 대로 최신식 건물에 내부 시설들도 일류다. 문득 지금 이곳 아이들과 50년 전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궁금해진다.
   이제 내 기억에 열 살짜리로 남아 있는, 금년이 환갑이라는 정 군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가슴이 설렌다.

 

 

박세경  -----------------------------------------------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대각성 1.5m의 사각둥지≫. 공저: ≪기억의 퍼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