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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세상마주보기] 오바마의 춤 - 김동야

신아미디어 2013. 6. 17. 10:07

"작은 기억이 문화에 있어서는 하나의 파장이 되어 점점 커갈 수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평양 건너에서는 폭풍이 될 수 있다고 했듯이 훗날 한국의 문화에 어떤 파장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의 지나친 상상일까"

 

 

 

 

 

 오바마의 춤   -  김동야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야구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양반네들이 이렇게 말했단다. “저렇게 힘든 일을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왜 자청해서 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고.” 당시엔 양반네들의 하는 말에 맞장구를 쳤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시대와 문화가 다르면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하기야 야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한국의 양반네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서양 선교사들의 모습을 보고 가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취임식장에서 그 부인과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거 참, 재미있는 광경이네.”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쯤은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반쯤은 껄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미국 문화와는 아직도 거리가 있긴 있군.” 하고 혼자 소리로 중얼거렸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인과 춤을 춘다는 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파격임에 틀림없다. 선진국의 표본인 미국에서 그러고 있는데, 껄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아직 세계화가 덜 된 모양이다. 그 광경을 개화기의 선비들이 보았다면 아마 기겁을 했을 것이다. 이방의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을 당연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시대만 조금 늦추면 다 그런 사람이 된다.
   조선 왕조가 아직도 한반도를 통치하고 있을 때를 상상해 보자. 왕의 즉위식에 무희가 아니라, 임금이 신하들 앞에서 왕후와 친히 춤을 추었다고 하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 얘기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나라가 망했다고 대성통곡을 할 백성들이 수없이 나왔을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으로 삼던 미풍양속은 지금은 다 어찌 되었나. 불과 백 년도 지나지 않아서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 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개화기도 한참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단발령이 나라에서 공표되었을 때 “내 목을 쳤으면 쳤지, 부모에게 받은 이 머리털을 누가 감히 훼손할 수 있겠는가.” 하고 종로에서 통곡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다른 분이 아니라 김구 선생도 그중의 한 분이라고 한다. 그렇게 완고하게 지키던 전통을 버리고 이 민족이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력을 이만치 키운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꼴찌에서 맴돌던 국가의 경제 수준이 오늘날 세계 몇 위 안에 드는 국가로 부상했다는 것은 바로 그런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오마바의 춤으로 화제를 돌려 보자. 미국인 모두가 즐거워했다니 취임식에서의 춤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문화에 다소 낯설지마는 한국에서도 불원 자연스럽게 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좋든 나쁘든 문화도 세계화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문화가 퇴출되고, 어느 문화가 득세하는지 사회학자들이나 예단하겠지만, 그보다 대중이 선호하면 그것으로 판단은 끝난다. 문화라고 하면 다 좋은 것으로 알지만 고약한 문화도 더러 있다. 좋다 나쁘다 한참 의논이 분분하다가도 마침내 어느 쪽으로 대세가 기울어진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쪽으로 문화는 쏠린다.
   어떤 것까지 말해야 문화가 함축하고 있는 의민지 모르지만, 그중에서 종교가 가장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대체로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은 종교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념에 따라 받아들일 수 없는 종교도 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도 있다. 법에 저촉되는 암흑세계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통용되는 문화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사회를 어지럽게 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는 용인되는 사회가 민주사회다. 타 종교를 억압하거나 다른 문화를 핍박했던 사례도 지난 역사에는 참 많이 있었다. 그래서 종교적 박해가 있었고, 박해를 피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예도 얼마든지 있었다.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미합중국조차도 그 자유를 향유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계룡산 어느 마을에서 아직도 조선시대의 풍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는 마을이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총각들은 머리를 땋고, 서당에 다니면서 신학문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고 옛 풍습 그대로 지키겠다는 사람들이었다. 어른들이야 그런 방식대로 산다고 해도 큰 탈이야 없겠지만 자라는 애들에게 그대로 지키라고 고집한다면 훗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심히 걱정된다. 그 후 그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정부에서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변하지 않으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종교에 있어서만은 이 변화의 속도가 아주 느리다. 아예 변화를 거부하고 옛모습 그대로를 지키겠다는 종교들이 있다. 이슬람에서는 몇 백 년 전에 썼던 언어 그대로를 암송하면서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 언어를 지금 사람이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한다고 해도 그 시대의 정서를 어찌 담고 있겠는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 때문에 오히려 종교적 신비를 더해 주는지도 모른지만 현대인의 종교로서는 자격미달이다. 애매모호한 다의적인 말이 종교에서는 더 신비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종교일수록 신도들을 속이는 수가 많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초대 교회보다 많이 발전한 셈이다. 독실한 교인들은 옛것을 그대로 지키기를 좋아한다. 아무리 원래대로 지킨다고 해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경배의 패턴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로마 가톨릭의 경배 패턴을 거부하고 새로운 신앙의 방식이 나타난 것도 그 변화의 일종이다. 개신교의 출현이 바로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다. 라틴어로 쓰인 성경만을 읽어야 한다고 고집하던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들고 마르틴 루터가 성경 번역에 착수한 것이야말로 개혁의 시작이다. 번역한 성경을 읽었다고 해서 분형에 처해지는 <바비도>가 비록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절에는 응당 받아야 할 대가 중의 하나였다.
   지구상에서 문명국의 예로 흔히 우리는 서유럽을 든다. 하지만 몇 백 년 전만 해도 종교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종교로 인해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 각자의 교파에서는 성자로 추앙하는 성인들이 많다. 사실은 죽고 죽이는 잔치에 휘말린 사람들이다. 사람을 죽이고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다. 물론 종교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독실한 신자는 그런 희생을 치르고도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로 인해서 희생되는 사람이 지금은 극히 적으니 성자가 되는 사람도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도 종교는 다른 모든 문화를 거느리고 있다. 세력 있는 종교에서 내리는 교유敎諭가 그 문화 전체에 햇살처럼 퍼지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다른 어떤 영향력이 이를 따를 수가 없다. 이즈음 들어서는 종교 간의 화해가 썩 잘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 간의 다툼은 백해무익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일까. 종교 지도자들이 가끔 만나서 좋은 말을 주고받으며 화합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뜻 깊은 일이다. 다른 종교의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자기 종교의 권위가 그만큼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한 소국을 통치하던 임금만큼 근엄하지 못하다는 것은 옛날 같으면 웃을 일이다. 하기야 통치자는 근엄해야 한다는 그 문화와는 달라졌기 때문에 견줄 것이 못 된다. 현대의 집권자는 근엄하다고 해서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을 수행하는가에 따라 그의 값이 달려 있는 것이다. 그가 맡은 직책이 중요하고 그것을 얼마만큼 훌륭하게 수행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인간적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오마바의 춤이야 내일이면 잊어버리겠지만 취임식에서 추었다는 그 사실만은 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작은 사실도 한국의 문화에서는 그냥 보아 넘기기 어려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그럴까. 어떤 사람에게는 쉽게 지워지는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도록 남는 기억이 될 수 있다. 이 작은 기억이 문화에 있어서는 하나의 파장이 되어 점점 커갈 수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평양 건너에서는 폭풍이 될 수 있다고 했듯이 훗날 한국의 문화에 어떤 파장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의 지나친 상상일까. 그러나 문화의 발단은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나의 터무니없는 공상이 타박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적중해서 어- 그 말 맞네,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산타클로스도 사실은 4세기경에 소아시아에 살고 있었던 러시아의 대승정 센트 니콜라스였다고 하지 않던가. 세월이 지나면서 그에게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전설이 주렁주렁 열려서 크리스마스 저녁마다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는가. 오마바의 춤도 그렇게 해서 우리 마음속에 남을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김동야  -------------------------------------

   수필집 ≪참말과 거짓말 사이≫, ≪여자대학의 촌티 나는 교수≫, ≪먼 꿈 가까운 꿈≫, ≪선생님 우리 선생님≫, 콩트 ≪유리구슬≫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