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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추모특집 - 라대곤 선생을 추모하며/추모글] 허공보다 큰 울림으로 오소서 - 진동규

신아미디어 2013. 6. 13. 08:25

"형님, 형님께서 가시던 꽃길의 아름다움을 아롱아롱 우러릅니다. 저는 형님을 이별하지 않았습니다. 형님께서 넘으신 허공보다 더 큰 울림으로 와 주십시오. 더 큰 울림으로……"

 

 

 

 

 

 

  허공보다 큰 울림으로 오소서   -  진동규


   꽃길이었습니다. 진포가 온통 꽃대궐이었습니다. 꽃봉오리 피어나는 것부터 꽃이파리 흩날리는 것까지의 순항이 아름다움 그것이겠지요. 피고 지는 생명운동은 그렇게 귀하고 귀한 우주의 순항이겠지요.
   “성군 법왕이 갑자기 돌아가신 걸 말하지 마오. 천상의 도솔천엔 이제 봄이 한창이리니.” 문득 ≪삼국유사≫의 기록이 떠올랐습니다. 천사백 년 전 백제의 무왕이 조성한 미륵사 이야기입니다. 형님, 대곤이 형님. 제 말씀 듣고 계시지요? 오늘은 못 나눈 이야기나 나누시지요. 그때 미륵사에는 선화공주의 요청으로 미륵삼존을 모시게 되는데 그 중앙에 모시는 미륵법왕을 아주 이별한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오히려 돌아가심으로 해서 “신통한 변화는 불가사의리라.”라고 적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전개되어질 일마다 신통력으로 함께하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법왕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근기에 따라 부감하시고 응하여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어리는 것과 같았네.”
   형님, 대곤이 형님 가시던 길에 만개한 꽃 도솔천에 봄이 한창이라는데 그 꽃이 그 꽃이겠지요?
   어제는 형님이 그토록 정성을 기울이셨던 ≪수필과비평≫사에 들렀습니다. 월간으로 바뀌어 한국문단에 신선한 꽃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보시기 좋은가요. 이층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손바닥만 한 텃밭에 상추, 고추모들이 심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틀에 수라도 놓듯이 앙증맞고 싱그러웠습니다. 서정환 발행인님께서 맞추어 물을 주고 계셔서 싱그러움은 더했겠지요.
   “일찌감치 일어나시고는 무단헌 땅을 그냥 턱턱 파고 그러신대요.” 하고 말을 건네자 유인실 주간의 “뭔가 좀 어떠구라 하실 양이면 동네 한 바퀴 돌기도 하시고 예의 그 텃밭을 턱턱 파고 그러신다고는 하지만 허전하신가 봐요.” 가만가만 뇌이는 말이었습니다.
   상추모가 자라면 여름 내내 상추쌈이 이어지겠지요. ≪수필과비평≫ 요모조모로 맛을 내듯 고추모에서 따오는 청양고추 고놈도 한몫하겠지요.
   라대곤 회장님, 서정환 사장님과 용케도 수필에 궁합을 대고 찰떡궁합으로 눈물보다 더한 뜨거움으로 가꾸어 오신 문예지가 아닙니까. 커나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때가 이르면 그늘도 늘이고 노래도 엮어내고 그러는 것이 세상살이 아니던가요.
   형님, 대곤이 형님, 저는 형님을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꽃 피어날 자리는 보이지 않지만 봉오리를 터뜨려냅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은 현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생명현상이었습니다. 형님, 대곤이 형님,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이 무엇이랍니까. 형님께서는 참 넘실거리게 출렁출렁 시원하게 꽃 피고 지는 자리를 선연히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허공을 넘으셨습니다. 풀이랑 나무랑 온갖 짐승들 함께 나누었던 허공을 훌쩍 넘으셨습니다. 형님, 형님께서 가시던 꽃길의 아름다움을 아롱아롱 우러릅니다. 저는 형님을 이별하지 않았습니다. 형님께서 넘으신 허공보다 더 큰 울림으로 와 주십시오. 더 큰 울림으로…….

 

 

진동규  ---------------------------------------
   ≪시와 의식≫ 등단, 시집: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곰아 곰아≫. 수필집: ≪바람에다 물감을 풀어서≫ 등 다수. 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