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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추모특집 - 라대곤 선생을 추모하며/추모글] 심장에 남는 사람 - 채문수

신아미디어 2013. 6. 13. 08:56

"나의 문학에서 ‘문학은 나의 숙명이었다’를 읽어 보았습니다. 문학에 대한 대단한 열정에 공감이 갔습니다. ‘열두 명의 가장이 되어 먹고 살기 위해 힘겹게 살면서도 진실로 마음속에서 문학을 떠나보낸 적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은 문학이 그리워서 술을 마셨고, 눈이 오는 밤은 떠나가 버린 젊은 날의 추억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 원고지를 펼쳤다.’"

 

 

 

 

 

 

 심장에 남는 사람   채문수


   선생님, 어디쯤 가셨어요?
   가시는 길은 편안하시지요.
   아직 고개를 넘지는 않으셨나요?
   허위허위 정신없이 달려온 칠십여 년인데 이제 쉬엄쉬엄 쉬면서 가시지요. 자주 뒤도 돌아보시면서.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고갯마루에서 한참을 쉬어 간다네요.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린다네요.
   아직 선생님의 영혼은 출발하지도 않았겠지요?
   내 가까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작년 가을 선생님의 환우가 깊다고 해서 새벽 버스로 군산에 갔을 때, 사무실 앞 길거리에까지 나와 마중해 주시는 선생님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앙바틈한 체격과 카리스마 넘치는 무인 같은 얼굴이 서부 활극의 건맨으로 나옴 직한 선생님이었는데 그날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야위시어서 처음 잘 몰라볼 뻔했습니다.
   “뭐하러 내려왔어. 바쁘실 텐데.”
   목소리만은 여느 때와 같이 다정다감했습니다.
   가까이 선생님을 뵈면서 눈물이 왈칵 앞을 가려서 잠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평소 호랑이도 때려 누이실 것 같은 모습이 아닌 선생님의 모습에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인간이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암세포에 저렇게 무너져 내릴 수가 있는가,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점심을 드시면서 하신 말씀이 귓가에 아직도 이명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제 어쩌겠어. 이 췌장암이란 놈과 같이 살아야지!”
   “아, 거 미국의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이래. 이건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걸리지 않는 병이야.”
   우스갯소리도 하시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이었습니다.
   환우 중에도 작품 발표를 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시기도 했지만, 그때 쓰고 계시는 작품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저런 작품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에서 항암치료를 잘하시면 그 난관을 극복할지도 모르리라는 일루의 믿음을 가져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췌장암이 워낙 완치가 어렵다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 삼 년은 더 버티실 줄 알았습니다.
   그날, 되짚어 올라오는 버스에서 선생님은 워낙 강철 같은 체력이니 강인한 정신력으로 암을 극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저는 항상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도서출판 ≪계간문예≫ 주간을 맡고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의 장편소설 ≪망둥어≫를 만들 때 이야기입니다. 표지의 날개에 들어가는 경력란 중에서 제가 일부를 삭제하라고 하자 편집장이 펄쩍 뛰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데 삭제하면 큰일이 난다고 만류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우격다짐으로 삭제해 버렸습니다.
   발간 직전에 전주에서 초고를 읽어 보신 선생님은 누가 삭제했느냐고 물어서 실무자가 채 주간이 그랬다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시고는 “그래.” 그 말씀만 하셨다는 후일담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선생님이 남자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풍문에 듣던 이야기들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심전심에 염화미소라 했던가요.
   젊은 시절 유랑극단으로 시작해서 사업에 성공하시고 작가가 되시기까지 우여곡절과 파란이 많았다는 선배들의 말씀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내공이 쌓이는 동안 사람들은 선생님을 문단에서 보기 드문 ‘남자 중의 남자’라고 했습니다. 문단에서 조우하기 어려운 의리의 사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나의 인생, 나의 문학에서 ‘문학은 나의 숙명이었다’를 읽어 보았습니다. 문학에 대한 대단한 열정에 공감이 갔습니다.
   ‘열두 명의 가장이 되어 먹고 살기 위해 힘겹게 살면서도 진실로 마음속에서 문학을 떠나보낸 적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은 문학이 그리워서 술을 마셨고, 눈이 오는 밤은 떠나가 버린 젊은 날의 추억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 원고지를 펼쳤다.’
   선생님이 ≪망둥어≫에 손을 댔다고 나무라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만나면 친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늘 송구했습니다.
   이따금 전화를 걸어 요즘 소설의 흐름에 대해 물으시는 것도 아는 것이 없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것도 송구했습니다.
   몸져눕기 전까지 작품작업을 멈추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열정이 존경스럽습니다.
   담양에 내려가 계실 때 뵈러 가려고 했으나 가보지 못한 게 이제 이렇게 후회스럽습니다. 그때 가 봤으면 선생님과 몇 마디 말씀을 더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저 먼 나라 스와힐리의 종족들은 사사와 자마니라는 독특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사람이 숨이 멎었다고 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망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의 시간 속에 살아간다고 믿었다네요. 그 사람에 대한 기억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비로소 망자는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선생님도 우리 곁에 계시다가 우리가 갈 때 같이 떠나셔야지요.
   어느 선진국 사람들은 관 속에 들어갈 때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게 뭐냐는 설문에 핸드폰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핸드폰 가지고 가셨지요?
   이따금 한가하실 때 전화 주세요. 반가운 목소리를 듣게요.
   선생님 가시는 길은 편안하시지요!

 

 

채문수  --------------------------------
   함평(학다리) 출생.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동아일보 논픽션 우수상 수상. 작품 ≪루비콘 강을 건너다≫ 외. 창작집 ≪국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