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려 기본적인 인륜마저 저버린 사건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각종 뉴스들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수고로움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나라를 온전하게 누리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리라. 험난한 세월 견디어 온 당신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버드나무 껍질 - 안규자
차창으로 펼쳐지는 섬진강의 벚꽃이 만개하여 무릉도원이 따로 없지 싶다. 전기고문이라도 당한 듯 쑤셔대는 다리의 통증을 뒤로하고 모처럼 봄나들이에 나섰다. 막내딸네 집이 가까워오면서 봄의 향기가 어머니마저 취하게 하였는가. 붉은 댕기 다홍치마 시절 이야기가 끝도 없이 풀려 나온다.
어머니의 꽃다운 새댁시절이었다. 단출한 식구에 일찍 저녁을 해결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순경 두 명이 들이닥쳤다. 사립문을 확 열어젖히며 토방 앞까지 와서는
“지서까지 같이 좀 가야 하겠소. 신고가 들어왔소.”
하면서 총부리를 들이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붙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경찰들은 어머니를 지서로 대동했다. 곧장 창고 같은 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울음이 복받쳤다. 그런데 더듬더듬 말소리가 나서 둘러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날이 새면 만나 길쌈을 하고, 야학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동네 친구들도 끌려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의아해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데 어머니의 이름이 불려졌다.
“어디 보자, 감투가 여맹위원장이라? 산사람들한테 여러 차례 쌀과 반찬을 주었구먼. 순순히 불면 목숨만은 살려주겠지만, 만에 하나 거짓으로 드러나면 그 즉시 총살이다.”
순간 아득해 왔다. 야학에 나가 한글을 배우고 어디선가 나온 사람들이 가끔씩 가르쳐주는 노래를 배운 적은 있었다. 하지만 산사람들을 도와준 기억은 없었다. 무섬증이 몰려왔다. 횡행하는 소문대로라면 산사람들이란 원래 주민들의 지원 없이는 절대적으로 활동을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밤중에 산에서 내려온 그들에게 음식이나 의복 등을 주었다고 의심이 가면, 우익이 가리킨 단 한번의 손가락질에 의해 저승길로 사라졌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온 터였다.
어머니의 뇌리를 스치는 사건이 있었다. 그날 저녁 역시 어스름한 시간이었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두 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우리는 산山사람들이다. 쌀과 반찬이 필요하다.”
라고 하였다.
며칠 전 동네사람이 산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해서 지서로 끌려간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온 집안을 다 뒤져 봐도 좋소만, 우리도 먹을 것이 없소.”
라고 했다. 그러자
“죽고 싶나? 시간이 없다. 빨리 쌀과 반찬을 내놓으시오.”
라고 윽박질렀다.
아버지는 끝까지 정말 가진 것이 없다고 버티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대문 밖에서 여러 명의 남자 웃음소리가 왁자했다.
“자알 했소. 그놈들이 찾아와 음식이나 의복을 내놓으라 하면 반드시 지금처럼 하고 또 반드시 신고도 해야 하오.”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익들이 좌익 색출을 위해 변장을 하고 산사람 행세를 했던 것을 바로 며칠 전에 겪은 터였다.
그뿐이던가? 장날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터 개천가로 모이라는 동네 동각洞閣지기의 외침이 있었다. 혹여 몰라서 안 나왔다고 하면 자신에게 그 책임이 돌아갈까 걱정이 되었는지, 아침식사로 쌀뜨물에 쑥 잎만 동동 떠있는 멀건 죽을 먹었건만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모이지 않은 사람들은 좌익으로 몰릴 것이라는 서슬 퍼런 말에 동네 사람들은 바쁜 일손을 내팽개치고 우르르 장터 개천가로 몰려갔다.
세 명의 남자가 둑에 있는 나무에 묶인 채 서 있었다. 총을 든 사람은 여럿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계급장을 붙인 사람이 개천 둑으로 올라가 일장 연설을 하였다. 그는 산사람들을 도와주면 이적행위이니 그 끝장이 어떠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태세로 입에 두 손을 마이크인 양 붙여대고 고래고래 연설을 하였다.
“똑똑히들 잘 봐두시오. 산사람 편에 선 사람의 말로는 바로 이것이요.”
라고 연설을 마치자 사뭇 긴장이 감돌았다.
나무에 묶여 총소리와 함께 황천길을 떠나야만 할 찰나에 놓인 사람이 일가친척은 아닐망정 구경꾼들은 눈물을 연신 찍어냈다. 어느 마을 누구 자식이네, 누구 동생이네 하면서 사건의 전말이야 알 리 없지만 그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안쓰럽기만 했다.
지긋지긋한 일제 압박을 벗어나 해방이 되었다고 춤을 추었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다. 어쩌다가 산사람이니, 빨갱이니, 좌익이니 하면서 못 당할 것을 당하는 이런 세상이 왔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생각들을 했다.
드디어 총소리가 났다. 두 명은 그 자리에서 푹 쓰러졌다. 그런데 한 명은 눈 깜짝할 새에 논둑을 건너고 신작로를 가로질러 내달렸다. 총을 겨누며 뒤를 따르는 여러 명의 경찰도 그의 목숨을 건 질주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다.
한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던 군중들은 목숨을 걸고 달리는 그가 더욱 날쌘 몸놀림으로 부디 경찰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를 빌었다. 그를 멈추게 했던 곳은 근처 동백숲이었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며 이백 년을 족히 자라온 동백숲이라지만, 사선死線을 넘어 달리는 그를 숨겨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울창한 동백숲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하늘에서 그를 위해 금동아줄이라도 내려올 것 같은 착각을 하며, 하늘도 땅도 보지 않고 내달렸다. 눈에 보이는 대로 듬직한 동백나무 하나를 붙잡고 기어올랐다. 반쯤이나 올라간 그가 뒤쫓아온 경찰의 총부리에 목숨을 내어주고서야, 그날 집회는 해산을 했다. 그런 기억이 그날따라 생생히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
어머니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은 협박도 해보고 얼러보기도 하면서 몇 차례 회유를 해도 듣지를 않자
“정말 바른 대로 말 안 할 거여? 여맹위원장이라 그놈들한테 단단히 교육을 받았는가 본데, 어디 한번 끝까지 버티어 볼 것이여?”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온 순경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바로 버드나무 껍질이었다. 손을 덥석 잡아끌더니 가운데 손가락에 버드나무 껍질을 말아 쥐는 것이었다. 경찰이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을 비틀었다. 눈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산사람들을 도운 적도 없거니와 고문이 두려워 거짓으로 순간을 모면한다 해도 그 죄명은 이미 빠져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을 협박해도 협조한 일이 없다고 말하자 그만 돌아가라 하였다. 다시 갇힌 곳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남아있던 친구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리며 아무리 무섭더라도 거짓으로는 실토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 친구들에게도 무슨 위원이니 뭐니 하는 자신도 모르는 감투 하나씩이 붙어 있었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명칭이 붙어 있었지만, 이를 알 바 없이 자기 이름만을 듣고 불려나갔다. 네 명의 친구들이 차례로 심문을 당하고도 같은 말이 나오자, 그날 밤을 지서에서 보내고 다음날 풀려 나왔다.
“이 손가락 좀 봐라. 그때 버드나무 껍질로 비튼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렇게 징한 놈의 세상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도 호시절이지야. 우리는 그런 세상도 살았는데 요새 여자들은 무슨 불만들이 그렇게도 많을까나.”
여순사건 이후 좌익의 폭력에 우익의 보복폭력이 이어지는 비극의 악순환이 한가한 시골마을에까지 파고들어 좌우익의 개념도 모르는 애먼 아녀자들까지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연세를 가늠해 보니 6·25한국전쟁 전 여순사건 때의 일인 듯하다. 여수와 순천에 국군의 반격이 가해지자 좌익들은 대부분 지리산과 덕유산 등 산속으로 도주하여 빨치산 활동을 했던 시절이었다.
여순사건으로 나라의 안보 기반을 튼튼히 하고 반공의지를 공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좌익성향을 띠어 죽임을 당한 유가족들은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뿐인가? 좌익들에게 억울하게 죽어간 우익인사 가족들의 애환은 숱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태 풀리지 않는 민족사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한국역사의 아픈 한 페이지인 양 모로 틀어진 어머니의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식민통치시대에 태어나 6·25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화약연기 앞을 가리는 전쟁터로 남편을 보냈고, 일곱 자식 밥술이라도 먹이고 가르치느라 손톱 밑이 다 닳은 어머니의 손끝을 안쓰러워 잡아본다.
단군조선 건국 이래 최대의 호황기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앞에 놓인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려 기본적인 인륜마저 저버린 사건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각종 뉴스들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수고로움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나라를 온전하게 누리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리라. 험난한 세월 견디어 온 당신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안규자 -----------------------------------------
전남 장흥 출생,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과비평 작가회의 회원, 에세이포레 회원, 수필집: ≪내가 건너온, 오전에 애 낳고 오후에 깨 털던 세상≫
작가메모
3년 전 모처럼 친정어머니와 섬진강 벚꽃 길 따라 막내 여동생 집에 가면서 어머니의 다홍치마 시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섬진강변의 꽃길은 여전하겠지만 제게는 꿈속에서나 뵐 수 있는 어머니가 되시고 말았습니다.
새댁시절 이야기를 곱게 풀어내시던 그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어머니의 체취는 아직도 저를 눈물지게 합니다. 더구나 제가 해외 출장 중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임종도 못 지켜드린 불효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글 솜씨가 좋아서 대표작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표작으로 뽑았습니다. 아! 그리운 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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