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어려웠으나 묘책이 없어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아니 열성을 다한 세월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 꽃샘추위가 결코 꽃을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피는 것을 잠시 쉬게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꽃샘추위 - 임영주
짐 꾸러미가 하나 둘씩 빠져나간다. 차츰 넓어지는 공간만큼 허전함이 커져간다. 오늘은 30여 년간 운영해오던 학원을 정리하는 날이다. 규모를 축소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기는 하지만 마음이 착잡하다. 지난해부터 어려웠으나 묘책이 없어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아니 열성을 다한 세월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 꽃샘추위가 결코 꽃을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피는 것을 잠시 쉬게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빈 의자에 앉으니 지나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 삶의 터전인 마산은 1970년대 정부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수출자유지역과 창원기계공단이 조성되었으며, 한때는 전국 7대 도시로 돈과 사람이 북적거렸다.
당시 중공업체에서 기술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터라 기술학원을 개원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이름이 알려지고 원생이 늘어나면서 학원은 번창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이 되자 사회는 급변하여 3D 직업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환경, 품질관리 등 고급 기술 분야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에는 산업계도 양적 성장과 함께 개방화 물결에 큰 몸살을 앓았다. 1970~80년대 성장을 주도했던 공업 분야는 쇠퇴하고 고도 산업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회 전반에도 고학력 사회를 지향하여 입시생을 둔 가정에서는 대학진학에 온 힘을 기울였다.
생각 끝에 20여 년 이어오던 기술학원을 정리하고 독서·논술학원으로 바꾸었다. 학창시절에 익혀 둔 속독교육을 접목하고 두뇌개발 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학부모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독서 방법론으로 방송에 출연하여 유명세를 타자 몇 개의 체인 학원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장래가 보장되는 듯하여 의욕적으로 교재도 개발하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재학생이 줄어들고 정부의 교육제도 개선대책으로 경영의 어려움은 가속화되었다.
그동안 도시는 변천하여 구청제 시행과 폐지, 3개시 통합으로 창원시가 되면서 주소가 네 번이나 바뀐 셈이다. 학원 이름도 기술교육에서 독서교육으로 변화가 되었으나, 30대 청년은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목줄을 걸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반쯤 젖혀진 커튼 사이로 팔룡산 정상이 아른거리며 그 아래 수출자유지역에서는 활기찬 발걸음이 쏟아진다. 어린교 오거리의 자동차 경적소리가 숨 가쁘게 달려온 나를 깨운다. 학원을 나서며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자 장성한 세 아이의 환한 미소가 헛헛한 마음을 달래준다.
‘그래도 몇 년만 더 버텨줬으면 용돈은 궁하지 않을 텐데…….’
시린 등을 파고드는 꽃샘추위에 옷깃을 세운다.
임영주 ---------------------------------------
≪수필과비평≫ 등단, 마산문화원장, 수필과비평작가회의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산문집: ≪소나무는 흙을 탓하지 않는다≫, ≪최치원이 남기고 간 이야기≫(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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