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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세상마주보기] 두 분 정말 보기 좋아요 - 황정희

신아미디어 2013. 5. 30. 08:31

"“두 분 정말 보기 좋아요.”  오손도손, 토닥토닥하는 모습이 다정하게 늙어가는 부부의 모습으로 비쳤던 것 같다. 그 말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예 남편이 한마디한다. “여보, 우리 부부가 좀 더 젊게 보였다면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하지 않았겠지? 아, 이제는 속절없이 노인네가 되고 말았네.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왔는데.”"

 

 

 

 

 

  두 분 정말 보기 좋아요   -  황정희


   폭염 주의보가 내린 7월 말. 독일에서 잠시 다니러 오는 막내딸 부부를 맞으러 남편과 함께 인천공항에 갔다. 막내딸 지영이는 3년 전 결혼하자마자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가 같은 대학에 다니다가 금년 1월 아들을 출산했다.
   나는 출산 때 가서 돌봐주지 못해 안타까웠고 딸애에게 늘 미안했다. 마침 방학이라 사위가 한 달 간 산후조리를 해 주었다고 해서 고맙고 기특했다.
   딸애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자주 동영상으로 보내왔다. 물론 시댁에도 보내고. 세상 모든 손주들이 다 귀엽겠지만 민찬이는 맑고 큰 눈에 코도 오뚝하고 입과 귀, 이마 어디 한군데 빠짐없이 잘생기기까지 했다.
   인천공항 도착 층, C출구 앞.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항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처음 공항을 건설할 때는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 이제는 세계 어느 공항에도 뒤지지 않은 국제공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 자랑스럽다. 다른 나라에서도 인천공항을 배우러 온다니 놀라울 뿐이다. 둘러보니 우리만큼 나이 든 부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젊은 층이고 사오십 대에서 기껏해야 육십 정도다. 젊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문득 몇 십 년 전 내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옛날을 더듬는다. 그때는 김포공항이었지. 다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들 갔다 오는지.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는데 우리 부부만이 이방인처럼 한가로이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들과 딸들이 넷이나 있어도 모두들 바빠 우리 둘만 마중을 나왔다.
   민찬이를 곧 첫 대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기대감에 들떠 걱정 아닌 걱정을 주고받는다.
   “요즘 낯을 가린다는데.”
   “그것도 잠시 아니것는가. 금방 친해지것지.”
   “민찬이가 사진처럼 잘생겼을까요?”
   “아, 그럼. 어떻게 다를 수가 있것는가. 아마 실물이 더 잘생겼을 거네.”
   “친할아버지도 예뻐해야 될 텐데, 워낙 표정에 잘 안 나타내는 분이라. 친할머니는 굉장히 예뻐할 것 같은데.”
   “아이고 걱정도 마소. 아, 이 외할아버지도 이뻐 죽겄고, 보고 싶어 죽겄는디. 그쪽은 오죽허것는가. 자기 첫 친손자 아닌가베. 더구나 친탁까지 해서 잘생겼는데 아마 몰라도 민찬이한테 푹 빠질 것이네.”
   딸애가 나올 시간이 다 되었는데 늦다. 민찬이 때문에 이것저것 짐이 많겠지. 느닷없이 남편이 선글라스를 꺼내서 쓴다. 아니, 이 양반이 난데없이 선글라스는 왜 끼누. 애가 보고 무서워하면 어쩔려구. 6개월밖에 안 된 민찬이가 선글라스 꼈다고 멋있게 봐 주남. 속으로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말은 못하고 있는데 안경을 벗어, 닦아달라고 내민다. 나는 잘못 들은 체하며 얼른 받아 핸드백 속에 넣어 버렸다. 남편은 안경 좀 닦아 달랬더니 백 속에 넣어버리면 어쩌냐고 황당해하며 항의를 한다. 나는 능청스럽게 넣어달라는 것으로 알았다고 시침을 뗐다. 옆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젊은 여자가 빙긋이 웃는다.
   “봐요. 아가씨도 웃잖아요.”
   “어머, 저 아가씨 아닌데요.”
   그녀는 오십이 다된 중년 부인이었고 독일로 유학 간 큰딸을 마중 나온 것이라 했다. 남편도 처녀로 보았다니 요즘 젊은 엄마들은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처녀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일까? 그녀는 우리에게 상냥하게 한마디 덧붙인다.
   “두 분 정말 보기 좋아요.”
   오손도손, 토닥토닥하는 모습이 다정하게 늙어가는 부부의 모습으로 비쳤던 것 같다. 그 말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예 남편이 한마디한다.
   “여보, 우리 부부가 좀 더 젊게 보였다면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하지 않았겠지? 아, 이제는 속절없이 노인네가 되고 말았네.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왔는데.”

 

 

황정희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괜찮은 남자를 놓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