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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세상 마주보기] 산세베리아를 살려낼 수 있을까? - 하재열

신아미디어 2013. 5. 30. 08:21

"무릇 사람들은 식생들이 자연의 터를 잃은 후 제 살길을 찾아 스스로 기력을 다해 적응해온 것을 제가 키운 것인 양 허세를 떨어 온 것 같다. 이 허세를 누가 원예라고 이름 지은 건 아닐까?"

 

 

 

 

 

  산세베리아를 살려낼 수 있을까?   -  하재열


   베란다에 놓여 있던 산세베리아가 밑동째 싹둑 잘려 버렸다. 늘 있던 자리에서도 밀려나 한쪽 구석에 박혀 있다. 용케도 잘리지 않은 두 가닥 여린 잎줄기가 겨울 햇살을 가늘게 받고 있다. 이끼로 눅눅했던 화분 돌이 하얗게 말라버린 채다.
   청록색 긴 잎줄기를 달고 거실과 베란다를 오가며 집을 꾸며주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 작은 분에 담겨 함께 이사 온 지가 십 년도 넘었다. 그동안 키에 맞추어 분갈이를 한 번인가 해주었을 뿐 특별한 손길을 준 적도 없지만 잘도 컸다. 공기 정화를 잘한다고 해 득 볼 생각만 하고 이리저리 옮겼다.
   지난 늦가을에 꽃을 피웠다. 바람이 서늘해진 무렵 문득 쳐다봤더니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지금껏 산세베리아가 꽃을 피운 걸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다른 게 묻은 건가 싶어 건드려 보았다. 잎사귀에 숨어 가녀린 연두색 꽃대 세 가닥이 잎줄기 반쯤 높이에서 피운 눈송이 같은 꽃이었다. 근 이레나 멋을 부리며 기쁘게 해주었다.
   페이스북에 올려놓고 자랑을 하였다. 댓글이 이어지며 어떻게 키웠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집에 경사가 있을 거라는 덕담에다, 자기 집의 것도 필까 하는 부러움과 기대감도 적어놓았다. 흔한 꽃이 아니라서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어느 집에서나 한 자리 잡고 있을 화초인데도 좀체 꽃을 피운 걸 본 적이 없었으니 관심이 높아진 것이리라. 귀한 놈이구나 싶었다. 꽃이 떨어질세라 마음을 죄며 창으로 스며드는 짧은 양지를 따라 옮겨주며 살폈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로 가득한 집이 늘 부러웠다. 퇴근길에 집집마다 거실 불빛에 비친 화초들의 그림자를 비교하곤 했다. 푸른 그늘이 짙은 집은 사람들 마음도 넉넉해 보였다. 한때 나도 베란다를 온통 춘란으로 채운 적이 있었다. 춘란 전문가로 이름난 한 스님을 따라 한동안 이른봄 남도의 야산을 누비며 춘란을 채집하러 다녔다.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노는 날마다 집을 비웠으니 춘란에 미쳤다고 아내의 타박도 심했다. 한곳에 너무 몰두하면 눈에 허깨비가 보이는 것일까? 대구지방에는 자생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춘란이 있다고 소문만 떠돌던 산골을 혹시나 싶은 어설픈 기대로 혼자 뒤적이기도 했다. 추운 날에 오들오들 떨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아내 말마따나 그때는 뭐에 홀렸었는가 보다. 춘란 분이 육십 개도 넘었다. 앵글로 화분대를 만들어 분을 높게 받쳐놓으니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밖에서 바라보면 오층의 우리 집이 녹색으로 넘쳐났다.
   전문가라도 된 양 춘란을 즐긴 것도 몇 해 가지 않았다. 이른 봄마다 어김없이 야생에서와 똑같이 꽃을 피워 기쁘게 해주더니 해를 거듭할수록 세가 꺾였다. 비료도 주고 했지만 허사였다. 아내는 너무 깔끔해서 화분이 많은 걸 늘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좀 지저분하고 눅눅한 걸 참지 못한다. 겨울에도 가끔 창문을 열어 바람도 맞도록 해야 하거늘 먼지 들어온다고 닫아버린다. 생육조건이 애초 어긋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산에 사는 생물이 집에 갇혀서 살겠느냐며 입을 내밀었다.
   그런 아내가 불만스러웠지만 그 말은 맞았던 걸까? 몇 해 잘 피었던 것은 살던 곳에서 묻어온 땅심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걸 내 손품 덕이라고 여겼다. 베란다의 엷은 햇살에도 멋지게 피어 설레게 했던 꽃에 취해 비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사를 했다. 그것도 날을 받다 보니 일월 중순 엄동 중에도 제일 춥다고 일기예보가 알리던 날에 맞추고 말았다. 이삿짐 뒷마무리가 거의 끝난 뒤였다. 아뿔싸! 양란 잎이 축 처져 있고, 작은 매화분재도 움이 나려 하더니 주저앉고 말았다. 춘란 분도 더러 깨어지고 영 비실거린다. 엉성한 이사 솜씨가 더 망쳐 놓았다.
   내다 버렸다. 썰렁해진 빈자리를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남은 춘란도 겨우 꽃을 피운 듯 기력이 없더니 다음 해 봄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 불임의 춘란이 되었다. 아지랑이 지펴 오르던 날, 춘란을 멀리 담양의 한 야산에 다시 심어두고 왔다. 홀가분했다. 아내가 슬며시 웃는다. 내가 키우지 못할 걸 애당초 재어보고 있었다는 것인가? 불교대학에 다니며 방생에도 나서더니 도가 트인 모양이다.
   밑동이 잘려나간 텅 빈 산세베리아 화분에 대해 아직 아내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아내가 한 일이겠지만 물을 수가 없다. 꽃만 즐기고는 죽어 나간지도 몰랐으면서, 페이스북에 허풍을 떨며 들은 치사가 그렇게 좋더냐고 핀잔맞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베란다에 놓아두었어도 추위를 굳건히 견뎌왔기에 죽은 걸 이상히 여겼다. 새삼 알아보니 겨울에도 육 도에서 십 도는 유지하라고 한다. 지금껏 추위를 이겨온 것은 살고자 하는 강한 생의 욕구로 내성이 생겨 강인해진 것이리라.
   무릇 사람들은 식생들이 자연의 터를 잃은 후 제 살길을 찾아 스스로 기력을 다해 적응해온 것을 제가 키운 것인 양 허세를 떨어 온 것 같다. 이 허세를 누가 원예라고 이름 지은 건 아닐까? 올해 들어 가장 추웠다는 밤에 내가 바깥 창문을 닫지 않아 산세베리아가 죽었다는 걸 아내는 알고도 입을 닫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낮에 그림 작업을 하며 물감 냄새 날려 보내려 열어 놓고는 잊은 날이 있었다.
   아내는 얼지 않은 두 잎을 마저 자르지 않고 남겨 두었다. 이번엔 베란다가 황량하다고 여겼던 것이었을까. 산세베리아는 춘란처럼 노지에 다시 심을 수도 없으니 이젠 허풍떨지 말고 다시 살려보아야 하겠다. 그렇지만 죽어나간 건 창문을 열어 놓은 탓이 아니고, 그 내성에도 명이 다한 탓에 씨를 잇기 위해 마지막으로 화사한 꽃을 피우고 갔을 거라고 중얼거린다.

 

 

하재열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