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0’을 알기 위해 살아간다. ‘0’을 아는 순간, 인생을 행복으로 마무리 한다. 그렇다면 ‘0’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것,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백 년을 산 코끼리는 더 이상 똥이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똥을 만들 수도 없다. 똥은 살아 있음이요,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 왔던 인생의 흔적이고 발자취가 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비워질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코끼리를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코끼리 똥 - 조남숙
스무 날째 장마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기고 미처 강을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 피해 액수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혼란에 빠진 세상처럼 어머님이 계신 요양원을 다녀오는 내 마음도 어수선한 감정들로 넘친다. 아흔세 번째 생신날이 작년보다 더 쓸쓸해서다. 굵은 빗줄기가 더욱 거세질수록 어머님의 쇠잔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유리창 와이퍼가 강한 빗줄기를 막아내고 있다.
먼 옛날, 너무나 배가 고픈 코끼리 한 마리가 살았어요. 날마다 아침이면 이를 닦고 물 100리터를 마셨어요. 그런 다음 아기코끼리는 축구공 같은 똥을 1개 만들었어요. 365일 지난 다음 날은 똥을 2개 만들었어요. 해마다 똥이 하나씩 늘어나는 날은 꼭 찾아왔어요. 아기코끼리는 어른코끼리가 되었어요.
쉰한 번째 해, 뜻밖의 일이 생겼어요. 마흔일곱…, 마흔여덟…, 마흔 아홉…. 그게 다였어요. 다시 세어봤지만 잘못된 것은 없었어요. 그 다음 해에는 마흔일곱…, 마흔여덟…. 더 이상 셀 수가 없었어요.
여러 해가 지났어요. 코끼리는 나이가 들어 쭈글쭈글해졌고, 이가 누렇게 되었어요. 마지막 똥을 만드는 날은 꿈도 꾸지 않았어요. 이를 닦고 물을 마셨어요. 하지만 똥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요. 100년이 지난 후에야 “0”을 알게 되었지요. 코끼리는 매우 행복했어요.
-헬메 하이네의 ≪코끼리 똥≫에서
요양원에 오신 지 6년째다. 치매로 인한 조울증으로 감정 조절이 쉽지 않고 뇌졸증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하시다. 그러나 다리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걷는 연습을 하셨고 다른 어르신들만큼 맑은 마음으로 생활하셨다. <전국 노래자랑> 프로그램을 보시면 덩실덩실 춤추면서 다른 분들과 신명난 흥에 빠지시곤 하셨다. 지금은 걷는 것도, 보는 일도, 박수치는 일도 시들하다. 모든 상항이 많이 악화되었다.
어머님은 미역국을 많이 드시지 않았다. 그리 좋아하시던 참외도 잘 씹지 못하셨다. 2주 전에 보이던 눈물을 오늘도 보이셨다. 손자도 알아보지 못하시며 허공을 향한 손짓도 가뭇없어 보였다. 밤마다 염불하듯, 주문 걸듯, 지난 세월을 읊조리는 이상 행동이 다른 어른신들 수면을 방해한단다. 바퀴 달린 의자에 힘없이 앉아 계신 모습에서 흘러간 세월을 느낀다. 자주 우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슬픔과 기쁨이 수시로 교차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애잔하다.
작년 생신날에는 식당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음식에 독을 탔다고 하시어 차려 놓은 음식을 그대로 두고 나와야 했다. 그 어떤 음식보다 설렁탕을 좋아하셨는데, 그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거동도 많이 불편해서 외출도 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치매현상이 심해진다. 누런 이 하나 없는 틀니로 생크림 케이크를 드신다. 웃으신다.
코끼리는 ‘0’을 알기 위해 살아간다. ‘0’을 아는 순간, 인생을 행복으로 마무리 한다. 그렇다면 ‘0’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것,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백 년을 산 코끼리는 더 이상 똥이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똥을 만들 수도 없다. 똥은 살아 있음이요,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 왔던 인생의 흔적이고 발자취가 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비워질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코끼리를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억지로 비우려 하지 않아도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비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우리가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 죽어가는 것이다. 생의 정점을 지나면서 코끼리 똥이 한 개씩 줄어드는 것처럼 내 안의 것을 내어놓게 되는 것임을 거부할 수가 없다. 날마다 이를 닦고 물을 마시던 코끼리처럼 우리는 자고 먹는 일들, 일상생활에 익숙한 일들을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며 산다. 그러나 늘 그랬던 일들이 하나, 둘씩 줄어들면서 급기야 모두가 사라지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때마다 당황되고 부대끼는 마음을 달래는 일이 인생이리라. 코끼리 똥이 하나씩 늘어나는 일과 줄어드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가 나이가 들고 죽는 일은 하늘이 정한 일일 게다. 똥이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도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어머님께서 깊은 밤에 지난 세월을 읊조리는 것은 당신에게 있었던 지난 궤적을 정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0’을 만나기 위해 남은 것을 부여잡지 않으려는 건지도 모른다. 당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편에게 전하고픈 말을 준비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이제 당신은 몸과 마음을 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없지만 자식들 얼굴은 실컷 보고 싶다는 소망을 말씀하고 계신지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난다. 시뻘건 흙이 거침없이 내려온다. 가속도로 밀려오는 장맛비의 괴력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도 무너진다.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정지하지 않는다. 아흔네 번째 생신날에도 어머님은 더 늘어난 주름살과 줄어든 몸으로 ‘0’을 알기 위해 이 닦고 물을 마실 것이다.
나는 올해, 똥을 48개 만든다.
조남숙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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