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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세상마주보기] 광장  - 최행자

신아미디어 2013. 5. 27. 08:41

"활짝 열려 있는 광장의 의미가 우리를 가슴 벅차게 한다. 둘이 앉았다가 셋이 앉으니 대화는 더 풍성해지고 살아가는 즐거움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시간이 가도 또 다른 날이 와도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광장이다.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광장은 문득 문득 가고 싶어지는 곳, 사람들의 흐름을 타고 가는 나는 아름다운 광장을 남기고 돌아선다."

 

 

 

 

 

  광장   -  최행자


   광장은 넓은 품을 갖고 있어서 좋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먼저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에 넉넉해지는 마음이 된다. 가끔은 오래전 사람들이, 옛날이 그리워서 마음이 아파오면 광장으로 향한다.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넓은 광장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한자리를 내어준다. 마음 가는 곳이 바로 내게 선택된 자리 같아 주저앉으면 곧 편안함이 가슴으로 밀려들어온다. 아무도 무어라 하는 소리 없는 그럴듯한 자리가 꼭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든지 시간은 허용되고 하염없이 앉아 시선이 가는대로 초점을 맞추면 가슴 속 실타래 풀리는 소리를 듣는다.
   광장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샛길이 많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계속 사람들은 바뀌어 가고 그들이 이루고 돌아가는 변화에 활력이 넘치는 시간은 지루함을 잊게 해 준다. 다양한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에 어느새 외로움도 잊고 그들이 짊어지고 가는 삶을 상상하는 재미에 빠져 들어간다. 샛길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품고 살았던 세월을 그리는 재미도 함께한다. 어떤 삶을 살았을까? 처한 환경 속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무수한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겪었을 즐거움보다 더 많은 고달픔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읽어진다. 이제 뒤돌아볼 여유의 시간을 얻으니 지나간 세월은 고난과 아픔이 있었다 해도 한 사람을 키워낸 밑거름이 되어주었노라고 말할 수 있고 후회라는 말로만 옛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굴곡 없는 편안함보다 아픔이 더 속을 채워준 삶을 새기면서 닮고 싶은 모습을 눈여겨본다. 광장으로 나오기 위해 샛길을 빠져나온 사람들, 나름대로 부딪치면서 느끼고 깨닫고 다지고 오면서 표정은 다 제각각이 되어 있다. 이곳까지 숨이 차게 힘들게 왔든, 여유부리며 쉽게 걸어 왔든 광장을 뒤로하고 빠져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모습을 감추고 사라져 간 사람들이다. 광장은 주인을 원하지 않는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그네들에게 활짝 열려진 쉼터다. 통로의 몫도 마다하지 않는다.
   광장에 가면 열려있는 것들이 많다. 빌딩들의 문은 광장을 향해 열려있고 열고 싶을 때 열 수 있는 창문은 밝게 빛나고 있다. 카페는 유리 벽으로 속내를 훤히 드러내놓고 사람에, 대화에 그리고 쉼에 갈증난 사람들을 유혹한다. 유리창 안의 광경은 혼자도 좋고 마주앉아 있는 모습도 좋아 모두가 화선지를 가득 메워 놓은 그림으로 마음에 담긴다. 마주 놓인 찻잔이 마음을 끄는 데 한몫을 더 한다. 광장은 소통의 장임을 과시하는 노천 까페도 있어 지나다 쉽게 앉을 수 있어 좋다. 나그네에게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넉넉한 인심에 그냥 지나치기가 섭섭하다. 쓸쓸한 나그네가 된 절절한 마음일 때 우연의 만남이 어려우면 전화로 친구를 불러내고 싶다. 말 나누고 싶은 친구가 간절해진다. 한참 동안 친구를 기다리고 앉아 있어도 자리를 비워 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확 트인 공간에서 차 한 잔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책을 보든 신문을 보든 간섭하는 사람 없어 도심에서 한가로움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다.
   급히 친구가 나왔다. 이렇게 선뜻 나와 준 친구는 더 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우연한 만남처럼 큰 감동을 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밝음이 가득한 광장에 어울리는 만남이 돼 주었다. 살아오면서 우울한 날들이 만들어준 가슴 쓰렸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이와 웃음으로 감싸 안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문제도 없고 답도 없고 마음 무겁게 남겨진 숙제도 없는 그냥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대화다. 삶에 열정이 있어 분노도 쉽게 일어나고, 시샘으로 미움도 많았던 가슴은 이제 바람을 잠재운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평온해진 마을에 스며드는 저녁 같은 언어에 귀를 열어 놓고 싶다. 노년의 친구와의 대화는 이해와 공감이 있고 뜨거운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처럼 인생의 향기를 피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커피 맛을 음미하다가 바쁜 걸음으로 스쳐지나가는 지인을 보았다. 반가움에 소리쳐 불렀지만 못 알아듣는다. 도심 한복판 광장에서 그도 우리도 뜻밖의 만남이라 부름을 빨리 들을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친구가 일어나 뛰어가 팔을 잡았다. 이곳에서 우리는 함께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했다. 광장 노천 카페에서의 만남이 색다른 의미를 주었다. 활짝 열려 있는 광장의 의미가 우리를 가슴 벅차게 한다. 둘이 앉았다가 셋이 앉으니 대화는 더 풍성해지고 살아가는 즐거움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시간이 가도 또 다른 날이 와도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광장이다.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광장은 문득 문득 가고 싶어지는 곳, 사람들의 흐름을 타고 가는 나는 아름다운 광장을 남기고 돌아선다.

 

 

최행자  ------------------------------------------

   ≪수필과비평≫ 등단,  작품집: ≪다시 하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