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실체가 잔인하기만 하다. 바람 부는 세상에서 고독한 영혼으로 캄캄한 거리를 혈혈단신 헤매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 친구에게 내려지는 고통은 가슴을 돌덩이로 짓누르게 한다. 한생애를 사는 동안 삶의 과정이 만만치 않아 우연의 법칙과 충돌할 때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삶이라는 괴물은 사람들에게 감당 못 할 고통을 주고 있어, 마음 둘 바를 모르겠다."
바람아 불지 마라 - 오차숙
지금은 소통의 시대이다. 하지만 스마트 폰이 책상 위에 있어도 그것을 집어 신호를 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집어 들긴 했지만 차마 친구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지 못하는 입장이다.
친구에 대한 예의, 친구에 대한 불안감, 그 뒤에 따르는 문제들이 기계의 가동을 방해시키고 있어, 나를 주춤거리게 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2여 년 전, 친구가 신부직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는 마음의 통증이 덜 왔지만, 그래도 친구의 투병소식은 또 한 번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한 달 전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친구가 예후가 좋지 않은 ‘○○암’에 시달리며 고통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정신만 혼미해질 뿐 움직이지 못한 채 경직당하고 있으니, 묵중한 의식을 묶어놓는 방해물은 과연 무엇일까.
삶이라는 실체가 잔인하기만 하다.
바람 부는 세상에서 고독한 영혼으로 캄캄한 거리를 혈혈단신 헤매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 친구에게 내려지는 고통은 가슴을 돌덩이로 짓누르게 한다. 한생애를 사는 동안 삶의 과정이 만만치 않아 우연의 법칙과 충돌할 때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삶이라는 괴물은 사람들에게 감당 못 할 고통을 주고 있어, 마음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이 순간 친구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와인 한 잔과 촛불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내고 있으니, 알코올의 힘이 크긴 크다. 그 기운으로 모두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를 푸념을 하고 있으니, 또한 상처의 연속으로 이어질까 염려된다.
신부였던 친구와는 각별한 관계가 아니었지만, 한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서 친구가 살아온 환경과 꿈과 미래를 향한 비전-신부의 길을 택한 친구의 삶과 그 뒤에 따르는 고독감까지도 감지할 수 있어, 서로가 영적 멘토가 되더라도 무리감이 없었다.
나는 친구가 꿈꾸던 삶, 그리고 조심스럽게 실현시켜가는 성직자 삶이 감사할 뿐이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면서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무엇보다 삶이 삶인 줄도 모르고 의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기보다는, 삶의 의미를 좀 더 알고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사람과의 인연이나 매듭까지도 인정하고 위안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발칸 반도에서 극도의 추위를 이겨낸 흑장미의 향기가 더욱 강하게 진동되듯, 겨울을 견디며 얼음판을 뚫고 솟아난 복수화가 삶의 철학을 진지하게 내보이듯, 친구와 나는 여건상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말없음 속에서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친구를 영적 멘토로 인정하기에 과분함이 넘쳤다.
비록 그 친구가 중견 신부로서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다른 친구와는 달리 순수함 그 자체로서, 잔인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할 줄도 몰랐고, 상대방의 의식을 뭉개지 않아 이기적이지도 않았으며, 자기의 직분을 내세워 권위적이지도 않았고, 다중인격자처럼 위선적이지도 않았으므로 간혹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친구가 암의 노예가 되고 있다니, 그 소식을 듣고도 문병은커녕 전화도 조심스러워진 형국이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삶과 삶의 관계는 잔인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친구, 그 신부님은 남편과는 고등학교 동창이며 나와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친구는 일반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다시 가톨릭 신학대학교를 입학해 로마유학까지 마친 상태로서 20대 후반 사제서품을 받고서도 소록도에 가서 근무하는 등, 신부로서의 길을 30여 년간 성스럽게 걸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친구 신부님의 소식을 구름과 바람을 타서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결국 ‘너’ 무너지고 마는구나.’라며 마음 중앙에는 쓰나미 같은 통증이 일었으나,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서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친구가 가야 할 행선지 또는 선택한 길도, 처해진 상황도 알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30여 년간 여러 가지 보직을 거쳐 어느 성당 주임신부로서 복무해 온 신부님이라 모든 것을 성스럽게 수행하길 바랄 뿐이었다.
친구로서의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제주도 고요한 마을 동창 중 한 사람이 성직자가 되어 주었기에 글을 쓰는 나로서는 정신적 통로를 찾은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고, 간간이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도 특별한 일만 없으면 밤 10시 후에라도 약속 장소로 달려와서 동행한 친구들과 함께해 주었으니 감사했다.
그 친구는 언제나 그랬다.
친구는 상황에 따라 술을 좋아했고 대화를 좋아했고 음악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고향과 동창들을 좋아해서 이튿날 새벽 미사가 있음에도 시간을 서슴없이 쪼개며 배려해 주곤 했다.
“제주도에 내려올 때는 하루 전만 연락해라.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차숙이 ‘너’라면……. 내가 너에게 무슨 소릴 들으려고 안 나오겠니?”라며, 농담도 서슴지 않던 친구라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의 배려는,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불시에 제주도에 볼일이 있어 비행기를 타더라도 그 밤을, 그 귀한 시간들을 밋밋하게 보낼 수 없어 한밤중에라도 신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맥주를 마시며 얘기하곤 했었는데…….
그런 친구가 암과 투병하고 있다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어쩌다 그가 거주하던 신부님 공관에 가보면 국산차 향기가 세속적인 차와는 느낌이 달랐고, 성화로 꾸며진 공관 분위기는 우리 집 거실과는 그 형상이 달랐으며, 주일마다 주보에 발표하는 글이라며 보여주는 신부의 글은 내가 쓴 세속적인 글보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어, 생명력이 넘치곤 했다.
뿐만 아니라 넓은 서재에는 엄청난 책과 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성스러운 기운들, 무엇보다 때때로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기도 하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양주병과 와인들은 사람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그러던 친구가 이름 모를 병실에 입원해 암과 투병하고 있다니, 무엇보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들은 입장인데 전화 한 통 못해주는 형편이 되고 있으니, 친구 된 나로서는 마음이 초연할 수 있겠는가.
다른 친구에게도 다를 바 없겠지만, 나는 글을 쓴다는 이유로 그 친구는 성직자의 길을 간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이 허락지 않더라도 대화의 맛, 술의 맛을 느끼게 하던 친구였다.
서로가 서로를 어렵게 여기면서도 서로를 인정해 주는 관계였는데, 그 친구가 제주도에 건강하게 버티고 있어 한라산이 좀 더 생동감이 있었는데, 친구는 어쩜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을까.
가장 평범한 것이 인간의 삶이겠지만, 가장 어렵고 깊은 것 또한 삶이라고 할 수 있어, 모든 여건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 변명할 말이 없다.
상처는 상처로써 가까스로 치료하고, 현실을 향해 흘러가는 여객선은 무덤덤하게 몸 사리며 흘러가는 것이 세상이라, 삶은 잔인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친구야, 미안하다. 현실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렴. 신의 손가락에 의해 제작된 삶의 각본, 이제 그 각본에서 벗어나 통증이 멈춘 순간에는 지난 시간들을 진지하게 회상하며 참 삶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해 보렴.
시작과 끝이 있는 삶의 횡포에 희롱당하지 말고…….”
오차숙 --------------------------------
현대수필(평론, 수필)로 등단, 작품집: ≪음음음음 음음음≫, ≪실험수필 코드읽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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