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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세상 마주보기]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 김사연

신아미디어 2013. 5. 20. 08:01

"아름다운 이별이란 누군가의 기억 속에게 그립고 소중한 존재, 감사하고 존경받는 존재로 남은 채 헤어지는 것이다. 나를 기억하는 분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정녕 후회 없는 여생, 헛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  김사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일까? 저승사자가 방문 앞에 다가와 부를 때 피하는 답변이 연령마다 다르다고 한다.
   61세 회갑回甲엔 “지금 안 계시다고 여쭈어라!”, 70세 고희古稀엔 “아직 이르다고 여쭈어라!”, 77세 희수喜壽엔 “지금부터 노년을 즐긴다고 여쭈어라!”, 80세 산수傘壽엔 “아직 쓸모가 있다고 여쭈어라!”, 88세 미수米壽엔 “쌀밥을 더 먹고 간다고 여쭈어라!”, 90세 졸수卒壽엔 “서둘지 않아도 된다고 여쭈어라!”, 99세 백수白壽엔 “때를 보아 스스로 가겠다고 여쭈어라!”고 한단다.
   하지만 요즘 같은 환절기엔 이런 변명도 소용없는 듯 가까운 친지들로부터 부모 혹은 부부의 상喪을 당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날아오고 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시다가 영면하신 친척 아저씨의 영안실에 조문을 간 적이 있었다.
   고인은 할머니 친정 조카로 오래전에 별세別世하신 할머니를 대신해 왕래를 해 온 친척 아저씨다.
   망자의 부인인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동아줄만큼 끈질겼던 고인의 생명줄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소천所天을 예감한 남편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장남이 보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하지만 아들이 귀국하려면 14시간 이상이 소요되고 공항에서 병원까지 도착하려면 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확인하기 위해 힘겹게 눈꺼풀을 올리는 남편의 얼굴은 항암치료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인내하는 표정이었다.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꼬집으며 잠들지 않고 깨어 있으려 애쓰는 모습은 그리움의 한을 지우고 아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지금까지 단 둘이 지내온 다정했던 남편이 아닌 오직 자식만을 위해 마지막 숨을 아끼고 있는 배반자의 모습이었다.
   아주머니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표현이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남자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윽고 1년처럼 길었던 16시간을 기다림으로 힘들게 채운 남편은 아들의 손을 잡자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영면永眠했다.
   반면에 중풍으로 3년을 앓으시던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저승과 이승을 오가시며 질긴 숨을 잇다가 힘든 운명을 하셨다.
   머지않아 닥칠 할머니와의 이별이 두려워 한약을 배울 때 틈틈이 보약을 달여드린 것이 스승님의 말씀대로 천추의 불효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살아있는 가족들은 슬픔과 아쉬움의 눈물로 심신의 고통을 지울 수 있었지만 구천九天을 떠돌다가 저승으로 승천하실 때까지 할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며칠 전, 5촌 고모부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영하 13도의 추위였지만 당숙모와 함께 서울의료원 영안실과 서울추모공원까지 다녀왔다.
   그렇다고 5촌 고모와 당숙 모두에게 이런 예우를 갖춘 것은 아니다.
   유독 이분들에게만 마음을 연 까닭은 초등학교 학창시절, 내게 베풀었던 연필과 공책 등 학용품 선물을 잊지 못해서였다.
   주변에 수많은 친척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라는 우리 삼남매에게 이분들 말고는 관심을 베푸는 이들이 없었다.
   그런 연유로 약국을 경영하며 한동안 적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는데 불혹에 접어들었을 그들은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당시, 신혼이셨던 5촌 고모님은 뛰어난 미모에 성격마저 시원스러웠건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서리가 내린 듯한 백발에 무릎 통증으로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어 하신다.
   그 몸으로 지난 5월, 내 모친상 때 고통의 내색조차 않고 거동을 하셨던 내외분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내 영혼이 사라지기 전까지 감사한 마음을 지울 수 없기에 두 분의 마지막 길은 결코 외롭지 않게 보내 드리고픈 생각이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누군가의 기억 속에게 그립고 소중한 존재, 감사하고 존경받는 존재로 남은 채 헤어지는 것이다.
   나를 기억하는 분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정녕 후회 없는 여생, 헛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김사연  ------------------------------------------------
   ≪월간문학≫ 등단, 저서: ≪그거 주세요≫, ≪김약사의 세상 칼럼≫, ≪상근 약사회장≫, ≪펜은 칼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