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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세상마주보기] 손자의 선물  - 고미선

신아미디어 2013. 5. 17. 09:01

"마음의 눈을 떠 본다. 아이는 우주에 떠도는 수많은 행성 중에 조그마한 별로 보인다. 하나는 아기별이요, 다른 하나는 밝기가 조금 세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이끌어 가는 별인 듯하다. 오늘 태어난 새 생명과 네 살배기는 앵그리버드 공을 나누어 가지며 무슨 언약을 한 것일까. 네 살배기 오빠가 갓 태어난 여동생에게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손자의 선물  -  고미선


   요즘 스마트폰은 어린아이들도 좋아한다. 두 손 안에 드는 작은 컴퓨터. 전자 공학의 발달로 무선 인터넷 검색을 하는 시대가 되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세계는 하나로 통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하여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온 세계로 퍼졌듯이 게임 ‘앵그리버드’ 또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스토리는 초록색 돼지들이 풀을 뜯으며 사는 섬에 어느 날 철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면서 시작된다. 알을 훔쳐 먹어본 돼지들은 그 맛에 눈이 뒤집힌다. 새알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돼지들과 새끼를 지키려는 일자 눈썹 새들의 혈투가 벌어진다. 이것이 화난 새, 즉 앵그리 버드 게임이다.
   이 게임에 빠지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듯 중독성이 강하다. 언제 부터인지 네 살 난 손자가 스마트폰에서 무료동영상을 보기 시작하더니 새총으로 뭔가를 쏘아 올린다. 조그만 손가락으로 살살 당겼다 놓는 손맛을 느끼고 있음일까.
   새총으로 화가 난 귀여운 새 모양의 공을 올리고 각을 맞추어 쏘아 올리는 단순한 게임이다. 악동으로 등장하는 돼지 잡기를 하고 황금알 찾기를 할 때는 삼매경에 빠진다. 무슨 말인지를 중얼거리며 환상 속에서 놀다가 유럽의 언어를 방언처럼 따라 할 때면 게임콘텐츠의 위력에 소름이 돋는다.
   이젠 장난감으로도 나온다. 큰 새총과 탁구공보다 작은 공에 앵그리 버드 스티커가 붙여져 판매되고 있다. 어린이의 옷을 비롯하여 인형과 담요, 외국에선 케이블카도 새의 모양이다.
   무지개 색깔에 무채색을 더하여 열 개의 크고 작은 공이 있다. 새의 크기에 따라 날아갈 때 그리는 포물선 모양이 다르다. 파란 새는 귀여우면서 손대면 갑자기 세 마리로 나누어진다. 세모난 노란 새는 특이하게 생겨 날아가다 건드리면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얀 새는 손대는 순간 알을 낳는다. 검정 새는 폭탄처럼 생겨 무서운데 악당 돼지가 숨어 있더라도 폭발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손자는 동생이 태어날 것에 대비하여 제주에 왔다. 몇 개월 동안 어린이집도 제주에서 다닌다. 등원할 때면 자그마한 앵그리버드 공을 호주머니에 넣고 갈 정도로 아낀다. 어린이집에서 자랑을 하였는지 공 하나를 빼앗겨 눈물을 글썽이며 집에 온 적도 있다. 색깔이 다른 공 다섯 개가 한 조여서 이것만은 소중히 간직하려고 한다. 휴일이면 장난감 블록성과 돼지집을 만들며 놀이 공간 속에서 앵그리버드와 시간을 보내는 건 다반사이다.
   예정일을 넘겨 여동생이 태어났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엄마가 옆자리에 없자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산실로 떠난 엄마를 보고 싶다며 벽을 향해 우는 아이에게 “사랑하는 행복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어.”라고 했더니 “엄마 많이 아팠겠다.”라 대꾸를 한다. 무심코 나온 손자의 말에 남편과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산실에서 신생아 침대에 누인 여동생을 첫 대면하는 시간이다. ‘행복아, 사랑해.’라고 시켰으나 입가에 미소만 띄운다. 해맑은 얼굴로 앵그리 버드 공 두 개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갓난아기 손에 쥐어 주려 한다. 며칠 전에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손가락에 상처까지 나며 싸운 공이 아니던가. 아이들은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의 사랑에 시샘을 한다는데 어찌된 일인가.
   이 세상의 참다운 행복은 물건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주는 데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선뜻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커서도 지금처럼만 오누이가 서로 그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 손자도 2년 동안 부처님을 향한 기도 덕에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 손자가 두 돌이 넘어도 동생 소식이 없자 나는 애끓는 기도를 얼마나 드렸는지 모른다.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이 이토록 따뜻함인가. 광대한 우주를 보아도 부처님이 아닌 존재가 없다. 불행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영원한 행복만을 누리며 살기를 소망한다. 자비의 미소를 항상 머금고 우주에 꽉 차 계시는 아기 부처님들, 둥근 햇빛보다 밝고 푸른 허공보다 깨끗하여 항상 세속의 때가 묻지 않기를 기도한다. 부처님이 내게 주신 큰 선물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마음의 눈을 떠 본다. 아이는 우주에 떠도는 수많은 행성 중에 조그마한 별로 보인다. 하나는 아기별이요, 다른 하나는 밝기가 조금 세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이끌어 가는 별인 듯하다. 오늘 태어난 새 생명과 네 살배기는 앵그리버드 공을 나누어 가지며 무슨 언약을 한 것일까. 네 살배기 오빠가 갓 태어난 여동생에게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세상에 태어난 첫 만남에 아끼는 것 중 하나를 선뜻 내어 주려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사랑스런 누이에게 준 때 묻지 않은 선물이 아닐까.

 

 

고미선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