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3월호에 수록된 3편의 수필에 대한 박양근교수님의 애정담긴 작품론을 통해 수필세계를 여행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수필 세계는 무한한 우주와 같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모둠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화로서 수필,원형으로서 등장인물 - 박양근
작가는 말로써 비언어적 현상과 존재에 일정한 형태를 부여한다. 문학적 형태는 소설가에게는 소설, 시인에게는 시, 수필가에게는 수필이라는 장르로 나타난다. 등장인물 혹은 주역을 소개하는 방식도 인물설정의 규범을 따른다. 작가는 관찰한 행동에 유창한 언술과 대화기법을 결합하여 등장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는 조사관 앞에 앉아있는 피의자를 대신하여 사건을 설명하고 주인공의 심경을 전달하는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작중인물은 장르 안에서 만들어지는 행동의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필 속의 주인공은 실제인물이면서 개개의 성격을 모형화한다는 점에서 현실 속의 인간보다 더 실제적이다. 인생을 다루는 서사수필, 더 좁혀 주인공의 삶을 투영하는 전傳수필에서 주인공은 사건을 진행시키고 주제를 구체화한다. 행동 묘사와 가치평가에 있어서는 정형성이라는 규칙이 끼어든다. 그것이 우화이다. 작가가 자신이 아니라 주변인을 묘사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 주제에서 우화적 요소는 더욱 뚜렷해지고 등장인물도 원형이라는 모뎀을 물려받는다.
문학 비평가 존 토비아스는 “모든 게 주인공에게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인생의 모든 것이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고, 모든 주인공은 하나의 주인공에 쏠려진다는 뜻과 같다. 모든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모든 꽃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향하듯이 주인공 개개인은 원형이 지닌 자질과 성격을 공유한다.
인물 설정은 오래전부터 서사작가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호머의 ≪오디세이≫는 시대적 영웅을 담아낸 최초의 반자전적, 반허구적 스토리로서 항해자로서 원형에 해당한다. 중세문학은 스토리와 구성을 중시하였지만 인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겼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인간의 행동을 외부와 마주칠 때의 반응으로 여기면서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등장인물의 삶에 집중하는 전 수필의 경우, 주인공 각자에게 새로운 삶의 양식을 부여하면서 플롯과의 유기성이 높아졌다. 수필에서 등장인물과 작가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망을 이루고있다는 점에서 행동의 유형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번 문제작 평에서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분석하여 구성과 성격 간의 관련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전수필은 짧은 서사단편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현실 속의 상황이고 실제 인물이라는 점에서 원형과 우화성이 더욱 뚜렷해진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인생은 우리라는 관계의 일부로서 원형적 가지치기를 한다는 것이다.
장기오의 <고독한 양치기>
장기오가 등장시킨 ‘그’는 방송국 연출자이다. 자신의 이념을 위해서는 동료로부터 무시당하면서도 타협을 거부하고 존경해오던 선배조차 비난하는 그는 “고독한 양치기”로 간주된다. 개인적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양치기라는 사람은 3인칭 대명사 ‘그’로 불려진다. 이로써 ‘그’는 실제 인물인가 아닌가를 떠나 우화적 인물에 접근하는 여지를 지닌다.
방송인들에게는 어느 직장보다 예술적 재능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교수가 논문으로, 판사가 판결문으로 말한다면 PD는 드라마의 성공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드라마가 미술이나 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청률로 평가받는 대중문화라는 것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은 순수성과 불결함, 이상과 현실, 미학과 상업주의라는 양면가치성을 나타낸다. 드라마 제작 피디라면 누구나 양자의 목표치 사이에서 선택의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은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현실과 같다. PD는 연기자와 스텝을 감독하는 연출자이지만 어찌 보면 그야말로 방송이라는 무대에서 관료주의와 광고주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와 다름이 없다.
<고독한 양치기>에 등장하는 ‘그’는 ‘언제나 당당하다.’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 드라마를 거의 제작한 일이 없고 시청률의 희생자이긴 하지만 탁월한 그의 이론에 주눅이 든 동료와 후배는 언젠가 명작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겉과 속이 다르듯 그가 동료들의 무지와 천박함을 비웃을 때 동료들도 그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서술자 장기오조차 그의 “겉멋이 든 지적 허영과 자기과시”를 지적한다. 논쟁점은 드라마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는 통속성은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아무튼 그는 이념을 굽히려 들지 않는 이념의 옹호자이다.
세월이 흘러 그는 “루저(loser)”가 된다. 연출과 연기의 세상에서 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연기 이론에 뛰어났지만 연출이라는 실전에서는 무능하다는 사실을 친구뿐만 아니라 자신도 잘 알게 된다. 그럼에도 본인은 그 점을 우둔한 시청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본인은 불운아로 여길 따름이다.
루저는 생존경쟁이 빚어낸 사회의 잉여물이다. 한 명의 승자를 뽑기 위해서는 다수의 동료가 패배자로 남아야 한다. 처음부터 루저가 없듯이 그는 무능력자가 아니다. 연출자로서 드라마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살피지 못했을 따름이다. 결국 서사수필이나 전수필의 경우처럼 그의 운명에 파국이 닥쳐온다.
장기오는 파국의 경위를 “어느 날 그가 드디어 사고를 쳤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연출자는 오직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 그도 기획 단계부터 장소 헌팅에 이르기까지 연출자로서 최선을 다한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라는 말에는 고의성이 담겨있고 그런 사건은 외부에서 빚어지거나 본인이 일부러 저지를 수가 있다. 그의 경우, 고의적인 사고라면 드라마의 기본 요건인 스토리를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고독을 풀어가는 심리드라마에서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그의 주장은 주위를 불안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태프와의 충돌이 빈번해지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다다른다.
“이봐 헬리콥터 한 대 불러야 되겠어.” 조연출은 농담하는 줄 알고 허허 웃었다. 그러자 그는 벌컥 화를 내며 “이 자식이 웃어! 너 연출을 우습게 보는 거야?” 비로소 심각함을 깨달은 조연출이 정색을 하면서 “아닙니다. 헬기는 택시 부르듯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 자식이, 부르라면 불러! 헬기 올 때까지 촬영 중단!” 하고는 버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연출은 즉각 상부에 보고했다.
“연출자가 이상합니다.” “철수해!”
촬영 중에 NG를 낸 그는 터무니없이 헬리콥터를 주문한다. 헬리콥터는 촬영에 필요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즉시 부를 수 없는 촬영 도구이다. 하늘을 나는 헬기는 불가능한 것을 이루려는 꿈의 무익함을 상징한다. 터무니없는 사고의 경위를 파악한 본부는 철수를 명령한다.
그 후의 후일담은 어떤가. 그는 병원에 입원했고 복귀했지만 혼자서 떠돈다. 말수가 줄어들고 불쌍하리만큼 외로워진다. 끝내 대표작 한 편 남기지 못하고 명예퇴직한다. 서술자와 평설자를 겸하는 장기오는 그를 “모두가 떠나버린 뒤로 혼자 남은 고독한 양치기”와 같다고 회상한다. 마침내 그는 드라마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이 작품은 수필이다. 작가가 알고 있는 직장동료를 그린 전수필이기도 하다. 개인사를 다루는 수필일지라도 지나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그가 돈키호테인가, 시대와 타협하지 않은 외로운 연출가인가. 아니면 꿈이 산산 조각난 루저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토론이다. 답은 그가 돈키호테이면서 불운한 연출자라는 사실이다. 드라마 제작의 생리에 적응하지 못한 루저이기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는 패배한 루저는 아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집념을 포기하지 않은 자아의 원형이기 때문에 그는 결과와 상관없이 드림워커(dream worker)로 남는다. 고독한 양치기가 아니라 꿈의 양치기라는 것이다. 직장에서 떠났지만 그의 이념이 손상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좌절의 원형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된다.
김행숙의 <오지 않는 딸>
김행숙에게는 딸이 없다. 아들이 있지만 딸이 없음으로 있어야 할 가족이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딸의 부재가 어머니에게 어떤 좌절을 안겨주는가를 조곤조곤 딸에게 말하는 기법에서 보면 서간수필에 해당한다. 그녀는 딸에 대한 모든 어머니의 욕망을 대행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라캉의 욕망언어를 끊임없이 토로하고 있다. 딸의 어머니가 되지 못한 그녀는 환상을 통해 ‘엄마를 부탁해’라는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그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독백조의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상상은 실현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지닌다. 딸이 없는 부재는 상상의 대상이 아니므로 환상의 공간을 빌릴 수밖에 없다. 환상이 만드는 서술은 프로이트의 에고심리학과 결합하면서 상실의 좌절에 리얼리티를 부여해준다. 그녀가 설정한 조용한 오후는 “말없이 시간만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때이다. 정적에 파묻힌 시간은 환상 속의 인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조용한 오후,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선다. 감미로운 바이올린 협주곡을 틀어놓고 청소하고 빨래하다 보니 오전 시간은 어느새 지나갔다. 갑자기 너무나도 조용해졌다. 겨울 햇살이 다사로워 보이는 양지쪽에 서서 말없이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이럴 때 네가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화자는 속내를 털어 낼 수 있는 상대로서 ‘딸’을 원한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딸이 그 역할을 해주리라고 기대한다. 딸이 있는 삶은 풍요롭고 나이를 먹어도 외롭지 않을 거라고 믿기도 한다. 딸이 없거나 일찍 딸이 죽은 어머니는 딸을 가슴속에서 키워간다. 가슴속에서 키우는 딸은 꿈을 이어갈수록 분신으로 발전한다. 마침내 세상의 모든 딸의 이미지를 합친 원형이 나타나게 된다.
어머니가 딸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오지 않는 딸>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같이 떠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요리 시간을 같이 즐기며 재주와 능력을 발휘하여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기도 한다. 잔소리꾼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옷을 멋지게 코디해 주고 엄마의 글을 읽어줄 수도 있다. 목욕탕에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머니의 구식 사랑법을 면박하기도 한다. 이러한 딸은 세상의 어머니가 소유하고 싶은 원형이다. 그런 딸은 주문을 외우면 마법처럼 언제든지 원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현실에서는 참으로 찾기 어렵다. 오직 원형으로서 딸만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을 따름이다. 마치 백화점 직원이 마네킹에 자신이 원하는 옷을 끊임없이 입히는 동작처럼 아름답다 못해 슬픈 환상이기도 하다.
현실은 환상과 다르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다루기 힘든 딸을 갖고 있다. 그 애들은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김행숙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대신하여 라캉의 욕망 언어를 빌어 결핍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것이다.
김행숙의 없음의 이야기는 환상의 유희로 이루어진다. 신데렐라가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하녀로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 바이올린 협주곡이 끝나고, 차의 향기가 사라지면, 오후의 한갓진 마법의 공간(magic circle)이 사라진다. 만능의 재주를 지닌 ‘딸 있는 어머니’라는 신분에서 ‘딸 없는 현실의 어머니’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가. 그것은 우화적 환상에서 벗어나 수필적 사유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름도 없는 딸아.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너는 어쩌면 나에게서 외로움을 빼앗지 않으려고 내게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네가 내 곁에 든든하게 있는 한 나는 외로울 틈이 없었을지도 모르므로 내게서 끊임없는 사유와 자기 극복의 과정을 이루게 하기 위해 너는 내게 오던 발걸음을 멈추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안에서 끊임없이 깨우치며 당겨주어 젊음에서 멀어지지 않게 긴장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도 아쉬운 것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니?
김행숙의 독백이 끝났다. 독백이 아니라 부재의 아픔을 관객에게 전하는 방백이 끝났다. 아이러니가 있다면 실제의 딸을 마주하지 않음으로써 어느 때보다 진솔하게 토로하는 편지 수필이 완벽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지 않는 딸>은 절박한 결핍을 구현한 수필이라는 점에서 딸의 원형을 무리 없이 살려낸 수필이라고 하겠다.
백남오의 <신근이>
송신근은 실제 인물이다. 작가가 세상에서 사귀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이기도 하다. 백남오는 신근이를 소개하고, 관찰하고, 서술하고, 평가하는 화자라면 신근이는 관찰의 대상에서 이상적 인격체로 발전한다. 평범한 신근이가 이상적인 인간상을 대행한다는 점에서 우화 속의 배역이기도 하다.
처음 등장할 때 송신근은 “지리산길에서 만난 친구 같은 아우”이다. 산을 좋아하는 백남오에게 친구가 되려면 산행 기록이 넉넉하고 천왕봉 겨울 종주에도 기꺼이 동행할 정도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면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인생의 길을 함께 걷는 인격적 품성까지 덧붙인다.
중년 남자가 원하는 친구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자신과 비슷한 신분일 필요가 있다. 백남오는 중년의 교사로서 산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이다. 그에게 산은 생활 자체이므로 요산요수와 같은 인물이면 좋다. 그 조건은 “그와 산행을 하면 참 편하다”고 표현되고 생활의 조건은 “그가 있어야 안정이 되고 즐겁다”고 나타난다.
이후의 서술은 왜 신근이가 편하고 즐거운 친구인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신근이의 이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육지로 나왔다. 보일러 기사, 건물 관리원, 병원시설과 직원 등 인생의 밑바닥을 훑은 팍팍한 삶을 거쳤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국가고시로 법학사를 받았다. 맥가이버라는 별명처럼 주변의 부탁은 좀처럼 거절하지 못한다. 미혼으로 자식도, 재산도 없다. 하지만 정신면에서는 매우 풍요롭다. 여전히 착하고 순박하고 정직한 천성을 지켜온다. 누구든 그와 자리를 같이하고 싶어 한다.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이제는 어엿한 종합병원의 시설과장 명함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인간형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가. 김행숙의 ‘오지 않는 딸’에 내건 조건처럼 신근이에게서 찾는 기대도 사실상 지나치다. 차이가 있긴 있다. 그것은 딸은 존재하지 않지만 신근이는 엄연히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원하는 유형은 선한 친구라는 원형에 가깝고 “사람의 정”을 표방하는 점에서는 우화의 주인공으로 간주할 수 있다. 백남오가 사회에는 ‘정다운 정’을 찾기 어렵다고 덧붙임으로써 그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따뜻한 인간의 정이 그리운 시대, 각박한 세상에 부딪혀 아픔을 피하기 어려운 시대, 사람들은 신근이를 통하여 잃어버린 사람의 정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중략>
진정 나는 소망한다. 신근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와 선량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로 대접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결함이 아니라 빛나는 장점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고. 그리하여 인간적인 정이 넘쳐흐르는 따뜻한 사회를 가꾸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신근이가 지닌 장점은 상대를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이러한 마음은 물질적 욕망이나 욕구보다 더욱 본질적이므로 신근이의 행동은 상징성을 지닌다. 물론 신근이는 시대적 영웅이 아니고 작가도 신근이가 픽션이나 로맨스에 등장하는 영웅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인간에게서 원하는 바람직한 미덕을 찾아 그에게 부여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화적 수필과 원형적 인물창조를 합친 수필시학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기
수필은 리얼리즘의 문학이다. 등장인물이 실제적 개체성을 지닐지라도 인간의 꿈과 동경심을 무시할 수 없다. 만일 수필세계가 인간의 가치를 고양시키고 언어로 표현한다면, 수필은 주제에서는 우화성을, 등장인물에서는 원형성을 자연스럽게 지니게 된다.
그 점에서 장기오의 <고독한 양치기>에 등장하는 ‘그’라는 연출가는 자의식이 강하지만 세상에 대한 수용력이 부족하다. <오지 않는 딸>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누구보다 욕망의 결핍을 해소하려는 꿈을 꾸지만 사유를 통해서 현실로 돌아온다. 신근이는 평범하면서 바람직한 인물이므로 독자들의 호감을 얻는다. 장기오의 글이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에 머물러 있고, 김행숙의 글이 환상적 로맨스에 빠져 있다면 백남오의 글은 수필적 사실주의를 지켜낸다.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지라도 3인의 등장인물 중에서 누구를 삶의 원형으로 삼고 싶은가의 결정은 독자의 몫이다.
박양근 -----------------------------------------
부경대 영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영남수필학회장, 수필집: ≪길을 줍다≫, ≪서 있는 자≫, ≪문자도≫ 등. 저서: ≪사이버리즘과 수필미학≫, ≪좋은 수필 창작론≫, ≪미국수필 200년≫ 등, 수상: 신곡문학대상, 구름카페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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