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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다산의 18, 그리고 나의 - 지홍석

신아미디어 2013. 5. 14. 17:30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난 해가 공교롭게도 1818년이다. 선생이 풀려나자 그의 제자 18명은 스승의 생활을 돕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계, 다신계茶信稧를 조직했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난 지 18년이 되던 1836년 음력 2월 22일, 다산은 마현리 자택에서 별세를 한다. 그렇게 보면 다산 정약용과 ‘18’이란 숫자는 참으로 대단한 인연이 되는 셈이다."

 

 

 

 

 

 

  다산의 18, 그리고 나의  -  지홍석

   남도의 고장 강진으로 테마 여행 겸 등산을 다녀온 날이다. 심란해서인지 컴퓨터를 켠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 이유는 정체된 고속도로에 있었다. 그러나 강진은 봄이면 놓치고 싶지 않은 장소다. 거리가 멀다고는 하지만 주작·덕룡·수인·만덕산 등 명산이 즐비하고 ‘다산초당’과 ‘백련사 동백 숲’이 있는 곳이다.
   언제부턴지 내가 좋아하는 숫자가 하나 생겼다. 그러나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어감이 좋지 않아 잘못 들으면 욕으로 들릴 수도 있어 입에 올리기가 조심스러워서다. 그러다 우연히 다산 정약용의 성장과정과 자취, 문헌을 살피다보니 어느새 그 숫자가 저절로 입에 와 닿기 시작했다. 바로 ‘18’이란 숫자다.
   다산이 ‘18’이라는 숫자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신유박해’ 때다.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남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론이 정치적 공격을 한 사건으로, 정약용은 그의 둘째 형 정약전, 셋째 형 정약종과 함께 연루가 된다. 그때 정약종은 천주교 신앙을 끝까지 버리지 않아 장형을 받다가 죽었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어 겨우 사형에서 유배로 감형이 된다. 그해가 18세기 시작 연도인 1800년이었다.
   그 후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로 유배를 떠났다. 그런데 그 기간 이 장장 18년이다. 유배생활 대부분이 강진이었는데, 그 당시 백련사에는 학승으로 명망이 높았던 혜장선사가 있었다. 서로에게 끌리던 두 사람은 인간적, 학문적 교류를 하게 되었고, 다산은 만덕산 자락에 초당 보정산방寶丁山房을 짓고 기거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약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난 해가 공교롭게도 1818년이다. 선생이 풀려나자 그의 제자 18명은 스승의 생활을 돕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계, 다신계茶信稧를 조직했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난 지 18년이 되던 1836년 음력 2월 22일, 다산은 마현리 자택에서 별세를 한다. 그렇게 보면 다산 정약용과 ‘18’이란 숫자는 참으로 대단한 인연이 되는 셈이다.
   다산의 수많은 저서 중 ≪목민심서≫는 가장 으뜸이다. 현재에 와서도 공직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야 할 기본서로 ‘모든 일처리에 있어 중심은 바로 백성으로, 백성의 눈높이에서 시작하여 백성의 마음을 읽고, 백성의 손과 발이 돼 행동하는 것을 지침으로 삼으라.’는 내용이다. 다산이 죽은 지 180여 년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도 후세에 귀감이 된다.
   그런데 근래에 ≪목민심서≫의 내용과 배치되어 움직이는 곳이 공직기관이 하나 있다. 세계로 나아가는 교통물류 건설, 국민을 섬기는 행정으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일류 부처가 되겠다는 부서다. 그러나 실상은 국민의 뜻과는 상이한 제도를 만들어 빈축을 사고 있다. 2011년 11월, ‘주말 고속도로 통행료 할증제’를 만들었다. 갈수록 혼잡이 심화되는 주말 고속도로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토·일요일과 공휴일에 승용차와 16인승 이하 승합차, 2.5t 미만 화물차 등 1종 차량에 한해 통행요금의 5%를 할증 부과키로 한 것이다.
   그 취지를 언뜻 살피면 에너지절약차원의 상당히 괜찮은 제도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단순히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게 할 목적으로 제정된 근시안적인 꼼수법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가 직장인으로, 주 5일 이상을 근무하고 봉급을 받아 생활하는 데에 기인한다. 그런 그들이 주말과 공휴일이 아니면, 언제 시간을 내어 부모님이나 지인들을 찾아뵙고 최소한의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주말과 공휴일에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빌미로 고속도로의 근본적인 체증을 해결하기보다 할증료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 생각을 하다니.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되자 톨게이트에서 각종 문제점이 발생되었다. 잔돈 때문에 지정체가 발생하고 전자카드와 현금 징수의 요금차이가 제기된 것이다.
   그러자 최고지도자가 국무회의에서 ‘주말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 등을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통행료 할증 때문에 잔돈 준비하느라 시간이 더 걸려 오히려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게 아니겠느냐?” “시행 전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시뮬레이션을 다양하게 준비해서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말아야 한다.”라고 질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왜 나는 더 서글펐을까. 정작 ‘주말 고속도로 통행료 할증제’가 왜 문제가 되는지 그 진단조차 못하는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관견管見’과 ‘관중규표管中窺豹’로 국민을 바라보는 한, 국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가슴속에는 비애와 상실감으로 가득 찰게 뻔해서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자 당선된 의원들에게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느냐고 좌담이 벌어졌다. 그때 모 대학교 총장이, 국회 등원에 앞서 당선자들에게 공자의 ≪논어≫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꼭 읽어 줄 것을 당부했다. 공직자들의 덕목으로, 국민 곁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 줄 것을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마음의 분노를 가라앉혀 볼 요량으로 인터넷을 시작한다. 포털사이트에 접속을 해 아이디(ID)를 적고, 영문 이니셜과 혼합된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1818”
   그리고는 분풀이하듯이 엔터(Enter) 키를 친다. 세상을 향해 실컷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던 것일까. 18이란 숫자를 연거푸 두 번이나 쓰고 나니 묘한 카타르시스가 가슴속을 후련하게 한다. 원하는 사이트가 열리자 벌써 누군가가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 동백꽃 사진을 올려놓았다.
   다산초당 가는 길, 목이 잘려 떨어진 동백꽃들이 바닥에 흥건하다.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한 다산의 마음이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라는 동백꽃말이 되어 땅 위에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홍석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