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던가. 고고의 성을 울리면서부터 둥지에서 재잘거리는 제비새끼들의 노란주둥이만큼이나 예쁜 입 종알대며 말을 배우고, 엎치락뒤치락 걸음마하며, 문자를 터득하고…. 드디어 노래하고 춤추고 애인을 찾으면서. 하나, 누구에게나 저마다 숨어있는 장애는 있을 터, 창조주는 공평하거늘 차안此岸 어디엔들 완전한 사람 있으랴. ‘노래 못하면 3급 장애인, 춤 못 추면 2급 장애인, 애인 없으면 1급 장애인’이라는 세간의 호사가들 사이에 유행처럼 회자되는 유머가 세태의 정곡을 찌른다. 글씨도 못 쓰면서 글은 쓰고 싶어 하듯,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지금까지도 춤을 아낀다. 장애극복을 위한 몸부림일 테지. 세파에 지친 상처투성이의 영혼이 말끔히 치유되어 끝없는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고 여한 없는 영성(spirituality)을 꽃피우는 내세의 향연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두고 간 ‘댄서의 순정’만은 내 고이 간직하리라."
나비넥타이 - 전병훈
손녀 여진이로부터 고사리 손으로 만든 ‘작은 음악회’의 초청장을 받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찾은 유치원 강당에는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이건만 학부모들로 붐빈다. 일 년 동안 익힌 솜씨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자랑하고 엄마 아빠에게는 쏟은 정성과 사랑에 보답하는 송년잔치이다. 어린이 사물놀이로 막이 오른다. 생애 처음으로 출연하는 공연에 마냥 고무된 천진무구한 얼굴들이 해맑다. 무대의 가장 높은 열 중간에 다소곳이 앉아 장구를 부둥켜안고 장단 맞추는 손녀의 미소 짓는 모습이 팔불출 할아비의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다. 조용하던 객석이 술렁인다. 자기의 아이 찾느라 분주하고, 스마트 폰으로 이름 날리기에 바쁘며, 찾은 아이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에 여념이 없다. 오랜만에 보는 교육열 뜨거운 현장의 진수다. 현악기와 관악기 연주에 합창, 무용 등 다양하게 알찬 내용이 이어졌다. 남자 어린이들의 목에 맨 앙증맞은 나비넥타이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대견스럽다.
사르르 눈이 감긴다. 흐르는 음률을 타고 타임머신은 나를 25년 전으로 옮겨 앉힌다. 무대는 뉴저지 주의 뉴브런스위크 하이랜드파크 문화센터다. 나는 다양한 피부색깔의 세계인과 어울려 뒹굴고 춤춘다. 각자 자기가 태어난 고국의 무용을 자랑하는 시간이다.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한국무용을 뽐내며 갈채를 받는다. 생소한 우리 고유의 율동과 선율에 덩달아 날갯짓하는 반원들 앞에서 한층 우쭐한다. 과연 가무는 시공을 초월한 만인의 공통언어이다.
나와 춤과의 인연에는 사연이 있다. 15여 년의 은행원과 공인회계사라는 경영실무자에서 갑작스런 모교의 요청으로 본의 아니게 예상치 않은 학문의 길로 전직한 지 어언 8년이 흐른다. 학창시절에 이루지 못한 유학의 꿈이 되살아난다. 허나, 인간사 한번 놓친 실기를 만회하기란 쉽지 않다. 어렵사리 학위과정 입학수속을 마친 학교는 공교롭게도 재직학교와 자매결연이 되면서 교수의 신분으로 학생이 되는 것이 금기란다. 해서 서부에서 동부로 급선회하여 연구교수로서 수학하는 길을 택한다. 그마저 노모를 모시는 대가족의 가장인지라 외기러기다. 처자식과 함께하는 호사는 엄두도 못낸 옹색한 남편이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아둔한 아버지라는 일생일대의 치욕스런 수치를 남기면서. 40대 끝 무렵 홀로 겪는 만학의 육체적 정신적 무게는 예상보다 버겁다. 그 시절 나를 지탱한 버팀목은 말도 배우고 춤도 추며 생활 속의 문화까지를 엿보려는 꿈도 야무지게 일타삼매를 노린 문화센터 모던댄스교실에 남긴 서투른 걷기와 샤세(walk & chasse)의 발자국이다.
어느덧 세월은 많이 흘렀다. 어렵게 유학에서 수학한 본업인 학문은 용도폐기된 지 오래지만, 덤으로 익힌 서투른 스텝은 4반세기가 지나도록 나의 일등 건강지킴이다. 말 어눌하고 손발 둔한 춤의 문외한인 생짜의 이방인을 따뜻하게 감싸주신 퇴직 후 자원봉사자로 열정을 쏟던 앨리스 선생님의 정성 어린 사랑과 같이 수강하며 노구를 마다 않고 친절하게 파트너가 되어주곤 하던 인자한 부군의 친절이 내게는 아직도 봄 동산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다. 스스럼없이 집으로 초대하고, 자진하여 시샘하듯 앞다투어 교통편의를 주던 동료 수강생들의 애정 넘치는 환대는 언제까지나 내 삶에 생기를 북돋우는 자양분이다.
당시만 하여도 우리나라에는 사회체육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평생교육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부러움이 컸다. 귀국 후 나는 국내 최초로 사회체육학과를 설치하는 데 일조를 하였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올림픽 5위의 체육 강국으로의 발전과 인간수명의 연장으로 생활체육(sports for all)은 보편화되고 모든 국민의 필수가 되었다. 특히 경기댄스(sports dance)가 대학의 정규 교과목이 된 지 오래이며, 올림픽 시범경기 종목이 되면서 각종 댄스가 날개 돋친 듯 남녀노소에게서 총애를 받는 세월이다.
댄스는 시대에 따라, 또는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그 유형이 다양하다. 모던댄스와 고전댄스, 경기댄스1)와 사교댄스2) 로 나뉘기도 하며, 라틴댄스나 남미댄스가 있는가 하면 같은 종목이라도 아메리칸 왈츠나 비엔나 왈츠처럼 국가나 지역에 따른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한국전통무용, 하와이언 훌라댄스, 폴리네시안 원주민의 춤 등은 국가나 지역 고유의 민속춤으로서 명성을 떨친다. 춤이 나라를 의미하기도 한다. 리우카니발에서 절정을 이루며 불꽃보다도 더 뜨겁게 타오르는 정열의 삼바는 브라질, 관능미의 극치라 칭송받는 탱고는 아르헨티나를 상징하기도 하며, 파소 도브레는 스페인의 투우경기에서 유래한다. 경기댄스는 국제적으로 공식화되고 정형적이나 사교댄스는 국가나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즐기는 지터벅은 자이브에, 블루스는 탱고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한국에서 개발되어 토속화된 독자적인 한국인의 춤이다. 춤의 세계화 추세로 보면 왈츠나 룸바와 같은 스탠더드 모던댄스나 라틴댄스라야 지구촌의 사교계에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는 한류가 멈추지 않는 한 한국춤의 세계화는 시간의 문제이리라. 수요가 양적으로 신장되고 질적 욕구가 커짐에 따라 경기용 춤의 다양한 춤사위(routines)가 사교댄스로 유입되면서 바야흐로 사교계는 융합의 시대를 맞고 있다. 춤이 전부를 하나 되게 아우르는 대통합의 가교가 되고, 험한 세상, 피안彼岸까지 가는 길을 안전하게 건네주는 다리가 되었으면 싶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관심을 갖는 댄스도 변한다. 개성이 강하면서 동작이 자유로운 모던댄스에서 미국시민 아니 세계인을 상대로 국경을 초월한 기쁨을 향유하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재직 중에는 정규교과목인 스포츠댄스 수강학생들과 함께했다. 생기발랄한 학생들과 몇 곡을 연속으로 추고 나면 계절에 따라서는 땀에 흠뻑 젖기도 한다. 기분은 상쾌하고 젊음이 되살아난다. 성취감에 도취된 나머지 스스로 제법 잘한다는 자부심을 갖기도 했는데 추억열차의 차창에 어리는 영상은 마냥 희뿌옇다. 잊혀져가는 스텝을 가물가물 더듬어 보는 지금 생각하니 전적으로 파트너들의 학교책임자에 대한 예우차원의 보살핌 덕분이었던 성싶다. 차츰 손발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동작이 비교적 느린 사교댄스로 관심이 기울더니, 언제부터인가는 실버댄스 교실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자연스레 파트너 또한 은발의 청춘이다.
댄스가 인간에게 주는 순기능은 무한하다.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가무가 왕성하면 태평성세를 누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천년사직이 무너지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도 명심할 일이다. 하물며 허약한 개인에게 있어서랴. 옥에도 티가 있고 능라금수에도 얼은 있다. 5, 6월에 지는 나뭇잎이 있다 한들 가을일 수는 없다. 간혹 물의를 빚는 댄스 주변의 불륜이 뉴스의 초점은 될 수 있으나 댄스가 인간에 베푸는 혜택(benefits)을 훼손할 수는 없겠다. 노래, 춤, 사람이 하나되는 복합예술 댄스가 발산하는 신바람은 인류화합의 최대 마력이다. 춤의 흥과 멋에 신들린 인류는 유사 이래 무수한 위기와 가파른 고비를 거뜬히 쉬 넘었다. 댄스는 인간생존의 근원이요, 인류문화의 본류이다.
춤의 마력은 시공을 초월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호흡하며 동서양을 넘나든다. 춤이 권력자나 권위적인 프로의 전유물에서 평등하게 만인의 품에 안긴 지도 오래다. 태극의 기氣와 음양조화의 상보성(complementarity)에 시원始原을 둔 춤의 원류는 그침이나 마름이 없이 유유히 흐르며 폭을 넓힌다. 인종이나 국경의 장벽 없이 세대, 성별, 노소, 언어에 따른 차별 없이 의지와 노력만 갖추면 누구나 수용하는 포용력은 청탁을 불문하고 안아주는 바다와 같은 어머니다. 춤의 파장은 신체적 스킨십이나 정서적 교감을 통한 현세의 육체적 즐거움과 쾌락에 멈추지 않고, 내세 영계靈界의 안일에까지 그 기가 뻗치고 감응感應함을 고분벽화에서부터 읽는다. 세속의 어느 종교인들 이보다 더 위력적일 수 있을까. 애초 생리적 욕구충족이나 무료함을 달래는 충동 같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의 자연발생적 발현이었음 직한 춤은 급기야 건강증진과 정신정화에 기여하는 스포츠댄스로까지 발전하였다. 나아가 인류 번뇌의 뿌리인 탐貪·진瞋·치癡3)를 말끔히 걷어주는 고차원의 예술활동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면 부질없는 환상幻想이려나. 아니면 또 다른 탐욕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절규하는 나약한 인간의 미래상을 입도선매하는 것일까.
춤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위축될 필요는 없겠다. 건강관리(healthcare)와 즐거움을 공유함으로써 육신을 건전하게 보존해주며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이심전심으로 나누는 인정, 사랑, 즐거움은 메마른 인정세태에 윤기를 돌게 하며 점점 황폐화되어가는 정서에 단비가 되고, 벽에 갇힌 채 이웃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소통의 길을 열어준다. 댄스에 대한 편협한 부정적 시각이나 편견을 버리고 개방적인 사고로 세계화 시민에 걸맞은 선진문화인의 예의, 범절로 단장하는 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아리랑에 대한 우리의 자긍심은 한층 높아지고,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세계인의 가무로 격상되리라.
저무는 세밑, 올해도 작품발표회로 ‘가는 년’을 속절없이 떠나보낸다.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실버회원들의 상기된 투박한 얼굴에 유치원 음악회에서 나비처럼 나부끼던 손자 손녀들의 얼굴이 겹친다. 뜨는 해의 찬란한 아침햇살과 지는 해의 황홀한 낙조에서 삶의 심오한 의미를 되새긴다. 새싹들의 재능이 넘치던 작은 음악회의 단상단하가 갑자기 뒤바뀌어버렸다. 6세든 70세든 시험 앞에 주눅 들기는 매한가지인 것을. 긴장된 공연이 끝나고서야 나는 겨우 내 모습을 대형 벽면거울을 통하여 본다. 얼굴에는 안도감이 역력하나 애꿎게도 늙은이 목에 매달려 노심초사 불안에 떨던 주인 잘못 만난 나비넥타이는 일순이라도 빨리 자유 찾아 훨훨 날고파 진즉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이륙채비를 끝냈다. 순간 ‘칠순제비’4)의 희망사항이 뇌리를 스친다. ‘이제 남은 장애는 1.5급만이려나.’
삶은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던가. 고고의 성을 울리면서부터 둥지에서 재잘거리는 제비새끼들의 노란주둥이만큼이나 예쁜 입 종알대며 말을 배우고, 엎치락뒤치락 걸음마하며, 문자를 터득하고…. 드디어 노래하고 춤추고 애인을 찾으면서. 하나, 누구에게나 저마다 숨어있는 장애는 있을 터, 창조주는 공평하거늘 차안此岸 어디엔들 완전한 사람 있으랴. ‘노래 못하면 3급 장애인, 춤 못 추면 2급 장애인, 애인 없으면 1급 장애인’이라는 세간의 호사가들 사이에 유행처럼 회자되는 유머가 세태의 정곡을 찌른다. 글씨도 못 쓰면서 글은 쓰고 싶어 하듯,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지금까지도 춤을 아낀다. 장애극복을 위한 몸부림일 테지. 세파에 지친 상처투성이의 영혼이 말끔히 치유되어 끝없는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고 여한 없는 영성(spirituality)을 꽃피우는 내세의 향연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두고 간 ‘댄서의 순정’만은 내 고이 간직하리라.
1) 경기댄스: 스포츠댄스(sports dance) 또는 댄스스포츠(dance sports)라 불리며 체력단련과 건강증진을 도모하는 운동으로의 춤으로서 경기와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에 역점을 둔다. 왈츠(waltz), 폭스트로트(foxtrot), 퀵 스텝(quick step), 탱고(tango), 비엔나 왈츠(viennese waltz)의 종목으로 짜이는 스탠더드 모던댄스 부문과 룸바(rumba), 차차차(cha cha cha), 삼바(samba), 파소 도블레(paso doble), 자이브(jive)로 구성되는 라틴댄스부문으로 이루어진다.
2) 사교댄스(social dance): 즐거움을 공유하는 사교에 주안을 둔다. 지터벅(jitterbug), 부르스(blues), 트로트(trot), 탱고 등은 한국의 전통적 사교댄스로 사랑받고 있다.
3) 탐·진·치(貪·瞋·癡): 불교용어의 차용으로 삼독(三毒)이라고도 칭하며, 인간 번뇌의 근원으로 봄.
탐욕(貪慾)-쾌락과 소유를 향한 욕심, 생존의 욕구, 권력․지위․명예를 통해서 자긍심을 굳건히 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 욕구를 뜻함.
진에(瞋恚)-거부, 짜증, 저주, 미움, 적개심, 분노, 폭력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부정적 반응을 뜻함.
치암(癡暗)-정신적 무지를 뜻함.
4) 칠순제비: 세 아들들이 제게 붙여준 별명임. 처음에는 ‘블루스 전’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더니 언제부터인가 본인의 동의 없이 개명됨.
전병훈 ------------------------------------
수필집: ≪동행≫, ≪나의 삶 나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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