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도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는 엄청난 산고를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제우스의 외도로 헤라클레스가 생겼을 때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시기를 했다. 즉 해산과 운명의 여신들을 시켜 그의 출생을 방해하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여신들이 팔짱을 끼고 지켜 섰기 때문에 산모는 지독한 진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족제비가 일부러 발등을 스치며 지나가자 화들짝 놀란 여신들이 엉겁결에 팔짱을 푸는 사이 헤라클레스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펭귄 의사 - 김애양
광활한 빙원에서 뒤뚱거리며 떼 지어 다니는 펭귄이 귀엽기 짝이 없다. 새까만 등짝과 하얀 가슴의 대비는 세상에서 흑백논리를 제일 잘안다는 듯이 짓는 그의 도도한 표정과 잘 어울린다. 빨간 부리와 발갈퀴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몸짓이 남극이라 해도 추워 보이지 않고 여유롭다. 어릿광대를 보듯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예쁜 동물이다.
펭귄이 나오는 화면을 유심히 보다가 저들은 왜 날지 않을까 더욱 궁금해졌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새의 특징은 날아다니는 자유로움인데 연미복처럼 늘어진 날개가 거추장스러운 듯 균형 잡기에 급급한 그들에게서 딱한 점이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분만 본연의 의무를 외면한 우리들산부인과 의사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전공의 4년 동안 얼마나 많은 밤을 산모와 함께 진통을 겪으며 지새웠던가. 비몽사몽 눈 비비며 아침을 맞던 날들은 피곤함의 극치였다. ‘응애’하고 첫 호흡을 터뜨리는 신생아가 두 손에서 꿈틀대며 전해주던 생명의 경이로움만이 고단함을 씻어주곤 했다. 도대체 아가들은 왜 밤에 태어나서 우리들을 힘들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야 밤에 주로 만들어지니까 그렇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선배의 짓궂은 표정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힘들게 배운 의술이건만 날지 않는 펭귄처럼 나는 분만의 소명을 저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아기를 받았던 게 언제였던가?
오래전 서울의 동쪽 외곽에다 산부인과를 차렸다. 꿈꿔왔던 대로 진료비 대신 고구마를 삶아오는 순박한 환자들이 사는 동네였다. 집과 가까워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모를 돌볼 수 있었다. 5년 넘게 개업한 동안 얼추 500명의 아가가 내 손을 거쳤으리라. 우렁찬 신생아 울음소리가 귓전을 메우던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 누구의 평화도 원치 않는다고 하더니 불현듯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나쁜 일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마불단행魔不單行을 절실히 알게 된 계기였다.
첫 번째 환자는 임신 7개월에 뱃속에서 사산된 산모였다. 이런 경우는 위험 요소를 내포하기 때문에 대학병원을 권했지만 그녀는 내게 수술해달라고 간청했다. 그걸 거절하지 못하고 오지랖 넓게 손을 댔던 것이 잘못이었다. 수술 후 패혈증으로 번져 대학병원에서 자궁적출술을 받고야 말았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환자라 쉽사리 감염이 찾아들었을 것이다.
나의 경솔함을 자책하며 그녀의 문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양수가 터져 입원한 산모가 있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위로 딸이 둘 있어서 아들을 고대하던 경찰관의 아내였다. 부리나케 병원에 돌아와 산모를 내진한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내 손에 만져진 것은 탯줄이었다. 자궁 문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탯줄만 흘러나온 제대탈출臍帶脫出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어쨌든 빨리 아기를 꺼내야 하므로 제왕절개수술이 급했다. 하지만 마취과 의사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119를 불러 대학병원에 당도했다. 10분이 채 안 되었건만 태아의 심장은 멈추어버렸다. 탯줄을 통해 엄마와 혈류가 통하지 못한 그 몇 분을 아기는 견뎌내지 못한 것이었다.
보호자는 경찰이란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대학병원의 집기를 집어 던지며 아들을 잃은 원통함을 표출했다. 그리고 우리 병원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걸었다. 제대탈출은 흔하지는 않지만 양수가 미리 터질 때 생기는 대표적인 합병증이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단 생각에 그의 거센 항의가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은 다음 환자로부터 왔다. 그녀는 첫아이도 우리 병원에서 낳은 온순하고 가녀린 산모였다. 입원해서 진통을 잘 견디고 분만대로 옮겼을 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태아는 출산 직후 첫울음을 울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잘 들리던 심박동이 멈추어 버린 것이다. 나로선 딱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죽은 아이를 받고 보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착한 산모는 울기만 했고 그녀의 남편은 조용히 병원비를 계산했다. 그때에 아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한 분은 삽을, 또 다른 분은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낯선 연장에 흠칫하는 내게 말하였다.
“임신을 하면 구들장도 건들지 않는 벱이여. 집안 공사를 한다고 죄다 헤쳐 놓으니 삼신할미가 노하신 게지. 아무 말 필요 없어. 조상님 곁에 묻을 테니 죽은 애기나 내주어…….”
나는 두 다리가 꺾여 덥석 땅에 주저앉아야 했다. 가져온 곡괭이로 병원을 부수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으리라. 인간에게 잘잘못을 묻기보다 운명이라 여겨 덮으려는 어르신들의 마음씀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로 나는 병원 문을 닫아 버렸다. 불가항력이라 해도 내가 아니었다면 아기가 죽지 않았을 거란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다. 또 소규모로 응급사항에 대처할 수도 없이 안일하게 병원을 꾸려나가는 무책임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스 신화에도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는 엄청난 산고를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제우스의 외도로 헤라클레스가 생겼을 때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시기를 했다. 즉 해산과 운명의 여신들을 시켜 그의 출생을 방해하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여신들이 팔짱을 끼고 지켜 섰기 때문에 산모는 지독한 진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족제비가 일부러 발등을 스치며 지나가자 화들짝 놀란 여신들이 엉겁결에 팔짱을 푸는 사이 헤라클레스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까지 눈에 보이지 않게 출산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신화만 봐도 산부인과 의사들은 운명적 요소와 맞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개원을 했을 때에는 분만을 받을 엄두를 더는 내지 못했다. 이제 분만은 대형화된 병원에서 여러 의사가 동업할 때여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다. 힘들게 배웠건만 환희와 기쁨이 담긴 출산을 포기한 채 날지 못하는 새처럼 근근이 산부인과를 꾸려 나가고 있다. 분만을 배제한 산부인과에선 대안으로 비만이나 미용분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수련과정 때 미처 배우지 못한 진료를 하는 데엔 그만큼의 갈등과 수고가 따르기 마련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 없이도 의사의 위상을 잃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명칭을 ‘여성학과’로 바꿔 부른다거나 날로 고령화되는 사회에 걸맞게 ‘노인 부인과’를 만드는 등 진료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펭귄은 구태여 날지 않아도 지천에 깔린 먹이를 구할 수 있다. 날지않는 펭귄의 불룩한 배가 풍요로워 보이듯이 분만을 받지 않는 산부인과 의사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애양 ----------------------------------
≪책과 인생≫으로 등단, 수필집: ≪초대≫, ≪의사로 산다는 것≫, ≪위로≫.
작가메모
펭귄은 내게 가장 슬픈 동물이다. 딸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새아버지가 생겼지만 동시에 아이는 새할머니 품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
어버이날 아이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엄마,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펭귄은 새인데도 날지 못한대.’
나는 한 대 얻어맞은 듯 숨이 멎었다. 아이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그건 나를 비난하는 소리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인데 왜 날 손수 키우지 않느냐는. 일 년이 지난 후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찰흙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손재주가 좋았다.
정교하게 펭귄가족을 만들어 세워놓고는 엄마펭귄, 아빠펭귄, 아가펭귄…. 설명을 해줬다.
그동안 오기로 굳게 막아두었던 나의 눈물샘이 그때 터져버렸다. 하지만 아이는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엄마 노릇도 못한 엄마를 끊임없이 위로하면서.
이렇게 나는 역할에 취약하다. 그건 의사 노릇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산부인과를 개원했으면서도 분만도 안 받다니.
그 심정을 적어보았다.
나는 여전히 펭귄을 보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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