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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촌감단상] 소통과 소똥 - 정선모

신아미디어 2013. 4. 24. 08:35

"90년 가까운 시간의 간격만큼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사람이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어찌나 천진무구한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장난감에 반사된 햇살이 한창 놀이에 빠져있는 두 사람 얼굴을 간질이며 장난치고 있는 듯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소통과 소똥  -  정선모


   봄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서 93세이신 친정어머니와 여섯 살 손자가 함께 자석 블록을 가지고 놀이를 하고 있다. 손자가 갖고 노는 블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어머니가 “고것 참 재밌구나.” 하시며 놀이에 동참하신 것이다. 집안의 제일 어른이신 친정어머니를 ‘왕할머니’라고 부르는 손자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함께 만들자고 자꾸만 조르는데,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갖다 대기만 해도 척척 달라붙는 자석 블록이 마냥 신기한 듯 이것저것 만들기에 푹 빠져 손자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신다.
   “왕할머니, 여기에다 초록색 네모 붙이세요.”
   “아니, 세모 말고 네모요.”
   “노란색 말고 초록색이라니까요!”
   무얼 달라는 것 같아 보였는지 아무거나 집어주는 왕할머니에게 몇 번이나 “그게 아니라니까요.” 하더니 가볍게 한숨 한번 “휴~” 내쉬곤 그냥 자기 혼자 만들기에 열중한다.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식탁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는 세모꼴 지붕이 있는 커다란 집을, 손자는 로켓을 만들었는데 가만 들어보니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자는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 중인 만화영화 주인공을 자기가 만든 로켓에 태웠다고 말하고, 친정어머니는 커다란 집에 누가 사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다. 손자는 왕할머니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상관없이 자기의 로켓이 우주여행을 하다 어떤 괴물을 만나 용감하게 무찌르고 있는 중이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친정어머니는 아이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다 당신이 만든 집을 부서뜨릴까봐 두 손으로 감싸며 그 집에 함께 살고 싶은 이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이고 있다. 90년 가까운 시간의 간격만큼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사람이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어찌나 천진무구한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장난감에 반사된 햇살이 한창 놀이에 빠져있는 두 사람 얼굴을 간질이며 장난치고 있는 듯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그날 저녁, 뉴스를 보는데 “정부조직개편안을 둘러싸고 여·야 간 소통이 안 되어…….”라는 아나운서의 말을 듣던 호기심 많은 손자가 묻는다.
   “할머니, 소똥이 뭐예요?”
   아하, 소통이 안 되면 바로 ‘소똥’이 되는 것이구나. 뉴스를 보던 가족들은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친정어머니와 손자가 서로 소통이 안 되어도 한동안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것은 블록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손자는 식사하러 오시라는 말과 같이 꼭 알려야 할 말을 전할 때는 왕할머니 귀에 바짝 대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정선모  -----------------------------------------
   월간 ≪한국시≫에 수필 <여백의 미>와 <하늘에 닿는 소리>로 등단. 신곡문학상 수상,  수필집: ≪빛으로 여는 길≫, ≪지휘자의 왼손≫, ≪바람의 선물≫,  수필선집: ≪아버지의 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