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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4월호, 인연] 엄마가 싫어요 - 이 명 진

신아미디어 2013. 4. 26. 09:02

"그런 모녀의 모습을 보며 인연을 생각한다. 길을 걷다 옷깃을 스치는 사이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부모자식 사이 아니겠는가.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고리를 우린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울고 웃는 사연을 만들며 살아간다. 콩알 반쪽을 나누어 먹어도 배부른 사이. 열 손가락을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관계. 뒤로 구부려도 안으로만 굽어지는 팔과 같은 존재들이 가족 아니던가."

 

 

 

 

 

 

  엄마가 싫어요  -  이 명 진


   마흔 살.
   눈가에 잔주름이 오글오글 잡힌다. 피부 톤은 탱탱한 생기를 잃은 황갈색이다. 말을 할 때마다 입가가 실룩거린다. 하지만 그녀의 양볼에 쏙쏙 파인 보조개는 더없이 앙증맞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찰랑거리는 검은색 단발머리가 나이보다 훨씬 어린 느낌을 받게 한다. 아마도 작은 얼굴에 마른 체형이 더욱 어리다는 분위기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전, 아이를 더 낳고 싶어요.”
   그녀는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세 살짜리 딸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첫아이 때, 이미 난산의 고통도 경험한 그녀가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다. 내게 솔로몬의 지혜가 있다면 그녀의 고민이 해결될 수 있으려나. 한마디 대답도 못한 채 가만히 그녀와 눈을 맞춘다. 두 눈 속에 눈물이 어른댄다. 뚝뚝 떨어진다.
   맑은 빛이 내 생각 속으로 콕 들어와 박힌다.
   “전,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요.”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고 싶지 않겠는가. 그녀의 집에 열흘 정도 머물면서 아이를 돌보는 모습이 집착으로 느껴져 내심 당혹스러웠다. 십여 년 전, 그녀는 어학 연수차 갔던 아일랜드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순박한 청년이었던 남편은 홀로 머나먼 외국 땅에서 당차게 생활하는 그녀의 매력에 빠져 결혼 신청을 했다. 부부는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서로 아끼고, 믿으며, 보살펴 주는 관계라 했던가. 그녀의 남편은 어린 시절 아픈 과거까지 감싸 주며 사랑해 주었다. 외롭게 성장한 그녀를 지켜주고, 옆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한 남편은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되어 주었다.
   “엄마는 절 사랑하지 않았어요. 저 때문에 팔자가 꼬였다고 화만 냈지요.”
   유복녀로 태어난 그녀는 일곱 살 무렵까지 외할머니 집과 이모 집을 옮겨 다니며 자랐다. 아버지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엄마의 손길과 냄새 또한 기억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는 새아버지를 소개해 주며, 그의 성을 따라 호적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새아버지와 엄마는 헤어졌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버린 새아버지와 사는 동안, 모녀를 향한 끊임없는 구타는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견디지 못해 새아버지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 모녀를 아무도 반겨 주지 않았다. 지하 월세를 얻어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그녀는 혼자 방을 지켜야 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밤이면 들어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 홀로 밥 먹는 일과 학교 다니는 일에 익숙해지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때처럼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대가 그리워 본 적이 없었다며 천장을 바라보던 눈길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저는 새아버지 성이 싫어서 외국 남자와 결혼했어요.”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 지렁이 같은 골이 꿈틀꿈틀 알 수 없는 깊이를 만든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해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는다. ‘나’는 ‘나’일 뿐, ‘너’가 될 수 없는 탓일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호적 제도에 의구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내가 마치 사회의 모순을 무심히 즐기고 있는 방관자처럼 비난하는 소리가 묻어나와 소름이 돋는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찾을 수 없는 이름 성씨에 독기를 뿜어댈까. 아니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연민이 그녀를 조국에서 도망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엄마는 여전히 남자의 사랑만 찾아 다녔다.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를 원망했다.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거나, 공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 자기를 키워 주었으면 딸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안아 줄 수 있겠다며 오열한다. 돈 많은 남자 만나 편하게만 살려고 했던 엄마의 생활이 싫어 가슴을 후벼파는 소리만 했다. 그녀의 입에서 모진 소리가 튀어 나올 때면, 그녀의 엄마는 여자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을 탓하며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런 모녀의 모습을 보며 인연을 생각한다. 길을 걷다 옷깃을 스치는 사이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부모자식 사이 아니겠는가.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고리를 우린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울고 웃는 사연을 만들며 살아간다. 콩알 반쪽을 나누어 먹어도 배부른 사이. 열 손가락을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관계. 뒤로 구부려도 안으로만 굽어지는 팔과 같은 존재들이 가족 아니던가. 그녀는 병든 자신의 가슴을 남편도 아닌 세 살짜리 딸아이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다.
   “우리 딸 너무 예쁘죠?”
   그녀의 어린 딸은 정말 예뻤다. 한국 여자와 아일랜드 남자 사이에서 우성인자만 물려받은 듯, 귀엽고 총명했다. 어린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붓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듯 보였다. 아이가 어떤 떼를 부려도 그녀는 잘 받아 준다. 하루 종일 아이의 말 상대가 되어 주고, 장난감을 갖고 놀아 주기에 분주하다. 집안일은 남편이 퇴근한 후 도와 줄 때까지 팽개쳐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아이 사랑이 지나치게 맹목적임을 실감한다. 온 시간을 종종걸음으로 아이를 쫓아다니다 보면 지칠 법도 한데 그녀는 웃는다. 어려서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 모두 주고 싶다며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 준다. 문득, 나도 우리 딸아이를 저렇게 키웠을까 기억을 되짚어 본다.
   “전, 엄마가 싫어요.”
   그녀의 한마디가 서늘하게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아, 사랑은 내리사랑이라지만, 혈육은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는 관계 아니던가.

 


이명진  --------------------------------------------
   본명: 이명숙.
   ≪해동문학≫ 수필 등단. ≪수필과비평≫ 평론 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 대학원 석사. 경기도문학상, 성남문학상 수상, 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방송문예학과 출강. 열린 문학회 자문위원.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수필과비평작가회의·국제 펜클럽·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수필집 ≪창밖의 지붕≫, ≪탈출기≫, ≪물색없는 사랑≫, 공저 ≪맑고 아름다운 향기≫ 외 다수, 논문집 ≪법정 수필 연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