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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사색의 창] 축하중 - 정명희

신아미디어 2013. 4. 15. 08:15

"‘축하중’은 작년보다 올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아픈 이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주라는 스승의 메시지인 것 같다."

 

 

 

 

 

 

  축하중  -  정명희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리라.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축하중’이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운전사에게 “근처에 축하 중학교가 있나요?” 하고 물었다. “아∼ 있겄지유! 서울에 없는 게 무에 있남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목포 출신인 그가 운전대를 잡은 지 십 년이 넘었다기에 그런가 싶었다.
   일을 마치고 가는 길에 서울토박이라는 기사에게 또 물었더니 아마도 학교 이름일 것이라고 하였다. 창의력이 화두라서 북한의 국화인 함박꽃을 연상시키는 함박 중학교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차가 밀리기 시작하여 이번엔 더 찬찬히 읽을 수 있었다. ‘총중량 40톤, 축하중 10톤’이라고 씌어 있었다. 학교 이름은 아닌 것 같지만, 무슨 뜻인지 언뜻 와 닿지 않았다.
   기온이 널뛰기할 무렵, 호흡곤란이 심해 입원한 아이 하나가 조금 안정을 찾았다. 산소줄을 뽑아주자 옆자리 친구와 장난감을 만지며 놀기 시작한다. 이제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 같아 무척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여태껏 모습을 보이지 않던 아이 아빠가 술을 마시고 찾아와 불같이 화를 낸다는 전갈이 왔다. 당직 선생이 달래고 있다는 보고였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는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또 연락이 왔다.
   일찍 출근하여 아이 아빠를 찾았다. 아무도 없는 진료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병원 진료에 대한 불만일 것으로 생각했다. 무슨 말이든 들어보고 사정 설명해주면서 보호자의 아픈 마음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어린 자식들 생각하며 밤낮도 없이 장거리를 목숨 걸고 오르내리며 달린다. 서울서 트럭을 몰고 부산까지 내려오며 도로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도착해 짐만 내려주고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다시 그 차에 짐을 받아 싣고서 서울까지 왕복하는 하루살이의 생활이다. 그렇게 핸들만 믿고 사는데 일거리 없는 날이 허다하니 네 식구 사는 데 필요한 최저 생계비도 못 벌어서 도움이 절실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열심히만 하면 아이들 배불리 먹이며 잘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희망만은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주 아픈 둘째 때문에 아내가 늘 병원서 생활하니 도저히 마음 편히 살 수가 없다. 집에 혼자 남아있는 어린 녀석을 돌볼 사람이 없어 일도 못 나가니 생활이 어려워진 것이 마치 병원 탓인 것 같아 화를 냈다고 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아픈 아이가 걱정되어 늘 괴롭다며 술에 의지해 살고 있다. 하지만 불현듯 살고 싶지 않은 날도 종종 있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딱한 사정이라 위로의 말을 건네다 문득 ‘축하중’이 떠올랐다. 그에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갑자기 두 눈이 반짝한다. 그게 바로 자기의 전공이라며 25톤 트럭의 운전기사라는 그가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변을 토한다. 축은 두 바퀴를 가로로 연결하는 것이다. 트럭의 앞쪽에는 바퀴 한 개씩 연결하는 축이 두 개 있고 뒤쪽에는 쌍으로 붙은 바퀴를 좌우로 연결하는 축이 두 줄 있다. 그리고 트럭의 앞쪽 축과 뒤쪽 축 사이에는 작은 바퀴 한 개를 가로로 연결하는 축이 따로 있다. 평소에는 트럭의 앞쪽과 뒤쪽 사이에 있는 연결부의 축을 들고 있는 상태로 다니다가 짐을 많이 싣게 되면 그것을 내려서 하중을 골고루 나눈 다음 무게를 측정해야 한다. 볼펜에 침까지 발라가며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 이제껏 보지 못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하게 되었는지 그는 까맣게 잊은 듯하다.
   처음보다 무척 밝아진 표정의 그가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 가르쳐 드릴까요?” 한다. 과적 차량 검사대를 통과하며 무게 측정을 할 때는 일단 들고 들어간 바퀴는 내려서 다시 잴 수가 없다. 과적에 걸려 무게측정을 다시 할 때에도 절대 내려서 다시 재지 못하니 진입할 때 들어올려놓았던 앞뒤 축 사이의 여분의 축에 걸린 바퀴를 내려서 들어가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실린 무게를 많은 축으로 분산케 한 다음 계량기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하는 별 다섯 개짜리 요점이라며 시험에 나올 중요한 것을 짚어주는 선생님처럼 거듭 강조하는 그의 표정이 천진하다.
   지난밤 자신이 한 행동이 참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누구 하나 힘드냐고 관심 둬주는 이가 없었는데 자기를 인정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앞으로 어디를 가든 아이가 아프면 이곳을 찾아오겠다는 다짐까지 한다. 생뚱맞은 나의 질문이 그에게 힘이 되었나 보다. 그를 조금 더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아침이다.
   내게 장차 과적 차량 검사의 기회가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이른 아침 강의는 고속도로를 들고날 때마다 오래 가슴에 남아 있을 듯하다. 아이 아빠의 아픈 마음을 돌아보게 해 준 나의 호기심에 박수라도 보내야 할까.
   ‘축하중’은 작년보다 올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아픈 이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주라는 스승의 메시지인 것 같다.

 

 

정명희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