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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사색의 창] 숨은 기억 찾기 - 서숙

신아미디어 2013. 4. 11. 08:17

"때로 물끄러미 저 사람과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얼마나 지속될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갈림길에서 다시는 되돌리지 못했던 여러 경우와 견주는 지레걱정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유리전시장 안에 보관하듯이 그렇게는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숨은 기억 찾기  -  서숙


   몇 해 전의 티베트 여행길에서 구입한 천주가 불현듯 생각났다. 천신天神의 보주寶珠라는 뜻의 천주는 눈[眼]의 문양이 들어 있는 갈색 천연 마노다. 귀국 후 마련한 전통 매듭장식 덕분에 돋보이는 펜던트가 되었다. 아무 옷차림에나 무난하게 어울리면서도 돌의 형태와 문양이 독특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곤 하였다. 언제부터 눈에 안 띄었더라, 기억을 더듬으며 있을 법한 곳을 여기저기 뒤졌지만, 좀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천주와 숨바꼭질을 벌이는 통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보낸 편지를 실로 오랜만에 펴보게 되었으니 내가 힘써 찾으려는 것도 있지만, 저절로 나를 찾아오는 것도 있다. ‘사랑하는 맏딸 숙 보아라’로 시작하고 ‘사랑하는 아빠가’로 끝나는 편지를 받으면 나는 항상 웃음을 깨물곤 했다. 우리 5남매는 한 번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건만, 당신은 아마 아빠로 불리고 싶었나 보다. 자식에게 부리는 어리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편지를 받을 당시에는 그런 심중이 헤아려지기보다는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유치하게끔…….’ 이런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근엄하게 ‘아버님 전 상서’로 편지의 서두를 잡았다. 매사 이런 식으로 조금씩 어긋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삼킨다.
   어쨌든 물건들 속에 묻혀 찾으려는 것이 쉽게 눈에 띄질 않곤 할 때면 지나치게 많은 것으로 집안을 채우고 사는 나를 새삼 돌아본다. 옷장 속에는 입지 않는 옷도 많다. 옷가지들에는 나만의 취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옷은 단순히 입기 위한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나의 취향은 나를 이루는 일부라는 생각이 끼고 사는 것이 거추장스럽다는 반성을 누른다.
   나 같은 사람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더 이상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집마저 버린 사람도 있다. 그는 처음에는 부인을 살림살이에서 해방시켜 주려고 부엌을 거의 없애다시피 했다. 집수리를 하면서 주방을 아주 간략하게 축소하여 요리할 공간을 없앤 것이다. 그런 다음에 기회 있을 때마다 짐을 줄이곤 여행길에 올라 떠돌더니 나중에는 아예 집을 팔아치웠다. 최소한의 계절용품은 자식들에게 나눠 맡기고 그들 부부는 거처를 이리저리 옮기는 호텔 인생을 시작하였다.
   나도 예전에 호텔에 장기 투숙하는 생활을 하려면 얼마의 생활비가 필요할지 계산을 해본 적도 있다. 짐을 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떠돌며 사는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환상에서였다. 그때의 셈법으로는 의외로 집을 유지하는 것에 비해 돈이 그다지 더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집은 나의 우주, 내 취향의 저장고가 필수여서 그런 생각은 그저 잠시에 그치고 말았다. 가벼워지고 싶다는 마음은 일시적 변덕일 뿐이고 그보다는 고독한 자신의 모습을 감싸 줄 방패막이가 필요하다.
   필요한 것을 찾아 뒤적이지 않으려고 이제는 잊거나 잃기 쉬운 물건들은 아예 박물관에서와 같이 항상 눈에 띄게 유리장식장에 죽 늘어놓고 살기로 했는데, 그게 매우 마음에 든다. 이는 마치 전재산을 몸에 걸치고 다니는 티베트 여성들의 방식을 닮았다. 은세공 등으로 엮은 호박과 터키석과 산호의 장식물을 걸치고 수줍게 웃던 여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귀중품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듯이 내게 소중한 것을 켜켜이 꼭꼭 쟁여두고 있다고 여기지만 기억의 허술함 너머로 오늘도 무언가는 나로부터 새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가끔 허둥대며 기억을 잡아채려고 애를 쓴다. 문득 추억의 인물이 떠오를 때면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게 여기는 한편으로 나는 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은 내 기억의 회로에 다시는 안 떠오를지도 몰라 몇 번 자맥질을 하다간 종당에는 기억의 저편으로 가라앉아 다시는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겠지. 오싹 한기가 든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내게서 떠나갔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잊고 누군가는 나를 잊고. 시간의 덫에 걸려 추억도 서서히 퇴색하며 지워진다.
   때로 물끄러미 저 사람과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얼마나 지속될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갈림길에서 다시는 되돌리지 못했던 여러 경우와 견주는 지레걱정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유리전시장 안에 보관하듯이 그렇게는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어느 영화에서였다.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죽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다. 영화는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노래 한 곡을 되풀이한다. “문득 생각나 찾아보았지. 어디에도 없어 지갑에도 없어 서랍에도 없어. 왜 안 돌아오는 거야.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아내의 부재 후에야 그 존재의 크기가 깨달아지며 회한 속에 파묻힌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떤 이, 어떤 일은 기억에서 지울 수 없어서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가.
   깊이 간직했다, 소중해서. 그런데 둔 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너무 깊이 간직하였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접으려는데 드디어 천주가 반짝거리며 귀퉁이를 삐죽 내밀었다. ‘아, 그걸 어디에 보관했을까.’에서 ‘아, 이것이 여기 있었네.’까지 꽤 오래 걸렸다. 조바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내 마음은 행복감으로 가득하다. 물건 하나에 딸려 나오는 생각, 생각들. 생생하게 살아나는 대화와 느낌 등등, 만져지고 보이는 것을 통해 만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더듬는 매력. 역시 매개물은 삶의 풍요를 위해 필요하다. 자그마한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지금 이 천주가 내게 주는 의미가 10년 후에도 그 무게를 지니길 바라는 마음은 나의 추억, 나의 행복감이 녹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일은 또 무엇이, 누군가가 불현듯 생각나서 기억의 단절된 파편을 파노라마로 잇기 위해 애쓰며 ‘그때가 누구하고 언제였더라.’ 안개 속을 헤맬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펼치는 아버지의 편지에서처럼 서프라이즈, 덤으로 찾아오는 즐거움도 있으니 이렇게 쌓아놓고 찾는 숨바꼭질의 술래 노릇을 계속할밖에.

 

 

서숙  --------------------------------------------------
   ≪선수필≫ 주간.  수필집: ≪일부러 길을 잃다≫, ≪푸른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