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마음에 내키지 않은 일은 그만하고 싶다.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일만 하며 살 순 없을까. 억지로 참는 일이나 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는 선택의 능력이 있었으면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 임성숙
난 살아 있는 걸까, 죽어 있는 걸까. 이렇게 숨 쉬는 걸 보면 분명 살아 있는 건데…. 엘리엇(T. S. Eliot)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악을 행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적어도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느 교수의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을 읽는 도중 <무위無爲>의 재능이란 제목의 글 중에는 또 이런 인용문도 있다. 서머셋 모옴은 한 여자의 인물을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묘사한 글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 이게 바로 나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런 능력도 있구나.’ 내가 아무 능력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것도 능력이라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그렇다면 매일 아무것도 안 하는 나는 죽어 있다는 걸까. 그이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 악이라도 행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잠시 다시 생각해 보니 위의 내용과는 다르게 참 좋은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는 능력, 즉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능력이 있다는 게 아닌가.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해서 어찌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겠는가. 즐겁지 않은 일도, 때로는 죽기보다 더 싫은 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왜 없었을까. 그런 어려운 날들을 참고 견디었기에 오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마음에 내키지 않은 일은 그만하고 싶다.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일만 하며 살 순 없을까. 억지로 참는 일이나 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는 선택의 능력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번 추석 때만 해도 그렇다. 아무것도 안 하리라 하고 굳게 마음먹었다. 내가 그렇게 결심한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동안 많이 사용한 팔목과 손가락들이 고장이 나서 오랫동안 병원에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다. 손을 쓰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지시도 있고, 이젠 내가 제일 어른이니 며느리와 딸들에게 다 맡겨 보리라 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추석날 아이들이 다 모였는데 괜찮겠지 하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며느리와 딸들이 거의 다 하고 별로 심한 일도 안 했는데 아이들이 가고 난 뒤 다시 손목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십 년 동안 습관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난 그러한 능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그런 능력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겐 아주 잘하는 능력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슨 일에나 결심을 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부터는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든가 음식 절제를 해서 혈당 조절을 해 보겠다든가 등등, 언제나 결심 하나는 아주 잘한다. 바보들은 결심만 한다는데…….
살아 있다는 증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악을 행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아니 성경 말씀에 온전한 의인은 없다고 했다.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모두 선만을 행하면서 사는 건 아니잖은가. 원망, 불평, 비난, 화냄, 이기심 모두 악인 것을. 일부러 악을 행하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원죄 외에도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악을 행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어찌됐든 이런 악을 행하고 있으니 나는 살아 있는 게 분명하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거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까지 있다면 그 악이 얼마나 클까. 그렇다면 이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참고 견뎌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9월부터 교회에 기도하러 자주 간다. 나는 기도를 잘 할 줄 모른다. 교통이 불편해서 교회까지 매일 기도하러 가는 게 힘들지만 하나님과 기도 시간을 약속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 성전 건축을 위해, 나라를 위해, 북한 전도를 위해, 형제와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 특히 당뇨 혈당 수치가 너무 높아 혈당이 정상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동안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음식 절제와 운동을 하려고 무척 노력 했지만 혈당수치는 계속 높았다. 교회에 나가서 처음 기도한 그 다음 날 아침, 혈당 검사를 했는데 정상으로 나타났다. 깜짝 놀랐다. 혈당기가 고장이 난 걸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혈당기의 고장은 아니었다. 그 후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진료 받은 날 3개월의 평균수치인 당화 혈색소라는 것도 아주 정상이었다. 신기했다. 아! 어쩌면 이럴 수가……. 하나님은 익숙하지 못한 나의 기도를, 그리고 억지로 기도 했는데도 들어주셨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영국과 전쟁 중 도저히 가망이 없을 때 장막에 들어가 4시간이나 기도하여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말하기를 “영국은 총칼로 싸웠으나 나는 기도로 싸웠다.”라고 했다 한다.
나의 힘, 나의 능력은 어디서 올까.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에서 힘을 얻고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식에게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한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힘들 때마다 이 말씀을 붙잡을 때 이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이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서머셋 모옴이 묘사한 여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내가, 또는 바보처럼 결심만 하던 내가, 이제는 음식을 조금씩 절제하게 되었고 가끔은 거실에서 체조나, 운동도 한다. 모든 능력은 내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임성숙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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