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자 바람막이가 없던 우리 집이었다. 돌 지난 나를 두고 떠나간 아버지 사연을 열 살이 돼서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그날부터 섶다리는 만나서 누리는 기쁨보다 헤어지는 아픔과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이 각인된 다리가 되었다."
섶다리 - 변종호
내 고향은 강촌이다. 꿈에서도 그리던 섶다리는 고향 길목인 주천강 여울목에 놓여있다. 돌서덜에서 나온 지네 같은 섶다리. 별러서 찾았지만 선뜻 다리에 올라서질 못한다.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그냥 서 있기조차 어려운 강가를 서성거린다.
갈마드는 마음엔 세찬 눈보라가 인다. 다리를 건너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터질 듯 가슴이 아프다. 응어리져 있던 쓰린 기억들이 스멀스멀 목울대를 기어오른다.
해후에 걸린 세월이 어느덧 사십여 년이 넘었다. 그리워할 것 많은 고향에서 섶다리만을 유독 가슴에 품고 기다린 것은 천륜에 끼어든 헝클어진 세상이 원망스러워서였다.
극도로 혼란스럽던 전란 이후, 믿기만 해도 잘살 수 있다는 신흥종교의 감언이설에 현혹된 가장. 살던 집이며 부치던 논밭뙈기를 헐값에 넘겼다. 기를 쓰고 반대하던 어머니와 가족이 잠든 사이 아버지는 다리를 건너셨다. 그렇게 떠나가신 아버지를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기에 가슴앓이를 할망정 잊으려 했다. 받은 사랑이 없었기에 미련조차 없었다. 때론 아버지의 속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겉에서만 빙빙 맴돌 뿐 들어가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 길었다.
가슴에 묻어둔 아련한 기억을 들춰본다. 마을 사람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강나루에 줄 하나를 매어놓고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황톳물 무섭게 휩쓸던 여름장마도 한두 차례면 끝이 났다.
바쁜 가을걷이를 마치면 강을 사이에 둔 양쪽 마을사람들은 울력으로 강폭이 좁은 여울목에 다리를 놓았다. 아낙네들은 강가에 가마솥을 걸고 닭으로 육개장을 끓였다. 막걸리를 받아다 바가지로 돌리며 도타운 정을 나눴다. 바야흐로 축제의 장이다. 이럴 때면 마을 간에 쌓인 자잘한 감정들은 흐르는 강물에 모두 띄워 보냈다.
시기적으로 무서리 내리는 시월이니 다리가 시릴 만도 했다. 그러나 장정들은 허리춤까지 차는 차가운 물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여럿이 힘을 모아 다릿발을 비스듬히 맞세운다. 마주보는 다릿발이 연결되는 통나무에 쐐기가 박힌다. 저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일꾼들이 상판을 대신하는 서까래 굵기의 나무들을 다릿발 위로 촘촘히 깔아놓으면 축축 늘어진 청솔가지가 겹쳐 깔린다. 그 위에 흙을 덮으면 마무리가 됐다.
이렇게 놓인 섶다리는 강으로 인해 갈라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요 길이었다. 다리 위로는 연실 소통의 언어가 넘나들었고, 고단한 산촌의 삶을 이어가는 양식이며 필요한 물품이 건너다녔다. 하얗게 달빛이 부서지는 밤이면 흐르는 물에 흠뻑 빠진 달이며, 별들은 흔들리면서도 어른거리는 빛으로 섶다리를 덮어주었다. 겨울이 되면 다릿발은 얼음덩어리를 주렁주렁 매달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자 바람막이가 없던 우리 집이었다. 돌 지난 나를 두고 떠나간 아버지 사연을 열 살이 돼서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그날부터 섶다리는 만나서 누리는 기쁨보다 헤어지는 아픔과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이 각인된 다리가 되었다.
해거름이면 삽짝 문 앞에서 섶다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는 어깨가 축 처진 어머니를 가끔 볼 수가 있었다.
어느 작가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면 평생 슬프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면 평생 외롭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유년시절은 항상 외롭고 풀이 죽어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았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아버지. 가족을 버리고 매정하게 떠난 당신께서 추구하던 이상은 무엇이며, 재산을 다 바치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집 떠나던 아버지 나이를 훌쩍 뛰어 넘은 내 나이다. 젊을 땐 아버지가 몹시 원망스러웠지만 나도 아버지로 살다보니 등에 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 것만 같다. 잘하고 싶지만 실수를 하고 잘못도 하며 살아간다.
다리를 거닐어본다. 고향사람들이 해마다 섶다리를 봄장마에 그냥 떠내려 보내 듯 이제는 마음의 짐을 모두 털어버리기로 했다. ‘가족을 두고 다리를 건너던 아버지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거둬들이기로 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지 않던가. 모두가 변하는데 움켜잡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몇 십 년간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에 이제야 해빙이 찾아드는 것 같아 숨통이 트인다.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분명 그래야만 했을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동안 꼭꼭 걸어 잠갔던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힌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서로의 몸을 부둥켜 안은 채 다리를 강물에 담근 섶다리는 얼음장 밑으로 강물을 떠나보내며 내게 선인仙人의 언어로 일러주는 듯하다. ‘마음 편히 살려면 가슴의 응어리부터 흐르는 저 강물에 내려놓으라고.’
‘그래 그래야지.’ 나는 두 눈을 감고 속삭이듯 중얼거린다.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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