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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실버카페를 아시나요? - 이정현

신아미디어 2013. 4. 5. 08:06

"연주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보고 “대체 몇 살이에요?” 어느 누가 내 나이를 자꾸 물어와도 듣기 싫지 않아 또 대답을 해 준다. ‘왜요? 제가 용띠에요. 칠십삼 세.’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실버카페를 아시나요?  -  이정현


   내가 출연하는 다음 주에는 우리의 가요 <옛 시인의 노래>를 연주하려고 한다. 이 노래는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하며 읊조리는 노랫말이 하도 절절해서 시詩를 사랑해서 이곳을 찾아 온 어르신들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이다.
   20대 초반 P시에서 살았는데 그곳에 있는 의과대학에서 매년 음악회를 열었다. 몇 번 가 보았는데 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성악가 못지않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열창을 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어느 젊은 의사가 모차르트의 <터키마치>를 피아노로 능숙하게 연주했는데 그 피아노 소리의 기억은 오랫동안 내 귓전을 맴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치는 풍금 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지면서 악기 하나라도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었는데 그날의 피아노 소리는 내 바람을 더욱 굳게 해 주었다.
   요즘은 음악을 취미로 하는 모임이나 배울 수 있는 곳이 더러 있다. 나도 그곳에서 악기를 배워 내가 바라던 소원을 다소 누리며 살고 있는데 플루트를 시름시름 익힌 세월이 꽤나 오래되었다. 글살이를 시작하고부터는 글쓰기 행사나 시 낭송회에 가끔 나가 연주를 해서 다소나마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켰다. 그러던 중 지금은 실버카페와 인연이 되어 내가 바라던 일을 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실버카페란 이름 그대로 노인들만의 전용카페이다. 오는 분들 모두 연세가 지긋하니 서로 편안하게 차도 마시고 담소하며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노인도 노인 나름이어서 고급 레스트랑이나 입장권이 비싼 연주회, 전시장을 찾아 고급문화를 즐기는 분도 있을 것이다. 반면 대다수의 노인들은 경로당이나 교통비가 할인되는 전철이나 무궁화호를 타고 가까운 근교로 나가 시간을 보내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이곳 카페에서는 다양한 무대 공연이 지역봉사자들의 참여로 펼쳐지고 있어 고급 공연장이나 경로당 또는 근교 나들이와는 또 다른 문화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찻값도 시중에서 삼천 원, 오천 원 하는 커피나 한방차를 오백 원,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 하니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이 적적한 시간에 슬금슬금 나들이 하며 소일하기에는 참으로 적합한 곳이다.
   노래나 춤 연극 공연도 재미있지만 특히 이곳에서의 백미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시 낭송 프로그램이다. 시인이신 사회자께서 으레껏 어르신들께 낭송할 기회를 드리는데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애송시를 무대에 올라 몇 편씩이나 외우시는 분도 있다. 팔십, 구십 연세이신데도 주름진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긴장하는 모습이 하도 진지해서 바라보는 내 마음도 설렌다.
   당신이 직접 쓴 시를 가져 오시는 분, 신문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오려 모아 놓았다가 가져 오는 분, 딸이 사 줬다며 아예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분, 낭송가들이 낭송한 시를 적어 달라고 부탁하는 분, 그 모습들이 흡사 옛날의 내 모습 같아 그분들이 지난날에는 얼마나 문학을 갈망하는 소년 소녀이었던가를 알수 있을 것 같았다. 6, 70년 전 학창 시절을 떠난 후로는 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오래도록 시詩를 잊고 살았는데 이곳 카페에서 시詩를 만나 새삼 감동을 받게 되니 이제사 늘그막에 사는 보람을 찾은 것 같다며 기뻐하신다.
   나도 시 낭송 팀의 한 사람으로 악기봉사를 하면서 가능하면 어르신들의 귀에 친숙한 노래를 선사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야만 노래를 통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낯설지 않을것 같아서이다.
   <노들강변>이나 <한오백년>처럼 가사는 한스럽지만 의외로 멜로디가 흥겨워서 신명이 나는 우리 민요는 어르신들의 박수를 많이 받는다. 노년의 적막한 심정을 아울러서인지 연주를 하는 나도 무아지경이 되어 가슴속 깊은 곳으로 애환이 녹아 든다. 어릴 적에 배우고 불렀던 동요도 촉촉이 젖어드는 유년의 추억 때문인지 인기가 높다. 연주하는 나도 새삼 감회가 새롭지만 카페에 오신 어르신들도 유독 입을 모아 나직하게 따라 부르니 그 모습 또한 애틋하기 그지없다. <오빠생각>, <고향생각>, <반달>, <고향땅>과 <메기의 추억>은 앙코르에 대한 내 단골 예주곡인데 그때마다 아예 합창이 되어 버린다.
   나 역시 이곳 실버카페가 없었다면 언제 어디서 동요를 마음껏 부르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연주를 하는 내내 우리 칠남매 별노래 부르면서 오손도손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던 고향집이 보이는듯하니 말이다. 봄이면 야들야들한 새싹이 움트던 초록빛 포플러 나무 울타리, 빨강 양철 지붕 위에서 딩동거리던 여름밤의 빗소리도 몹시 듣고 싶다.
   버스에서 내려 곧장 오솔길로 접어들면 이 지역 근린공원에 둘러싸인 카페로 향하는 길이다. 공원 곳곳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분들이 보인다. 우거진 노송 아래 벤치에 앉아 담소도 하고 운동을 하는지 유유히 걷기도 한다. 그 모습이 태양 아래 평화롭다. 내 마음도 편안해져서 내가 와야 할 곳을 찾은 기분이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해서 실버카페에서처럼 팔구십이 넘어도 팔팔한 분들이 많아 육칠십은 아이라고 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백 살이 넘은 분을 소개하기도 하고 전철을 타도 노인석이 꽉 차서 자리 얻기가 어려우니 고령화가 늘어간다는 실감이 난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닐 것이며 육칠십이 어찌 아이일까마는 일반적인 추세가 그렇다니 은근히 신경 쓰인다. 만일을 생각해서 무엇으로 시간을 때우나 궁리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으니 이 일이나 열심히 하면서 노년을 파이팅 했으면 좋겠다.
   건강과 시간이 허락될 때까지 시詩가 좋아 이곳을 찾으신 어르신들과 시를 읊으며 감동을 나누련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옛 시인의 노래>도 함께 부르며 텅빈 노년의 가슴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 주고 싶다. 이 일은 나에게도 의지가 되고 위로도 되고 살아가는 활력소가 된다.
   연주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보고 “대체 몇 살이에요?” 어느 누가 내 나이를 자꾸 물어와도 듣기 싫지 않아 또 대답을 해 준다. ‘왜요? 제가 용띠에요. 칠십삼 세.’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이정현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