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예외일 수가 없다. 신근이를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에게는 그런 묘한 힘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강한 욕망에 젖어 사는가. 가지고 또 가지고 전부를 가졌다고 보는데도 더 가지려 한다. 서푼 어치도 안 되는 지위나 힘을 과시하려고도 하고, 잘된 자식자랑을 하고 싶어서도 안달이다. 이런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불편하고 곤혹스러운가."
신근이 - 백남오
‘송신근’은 지리산길에서 만난 친구 같은 아우다. 졸저 ≪지리산 황금능선의 봄≫에 수록된 작품의 대부분은 그와 더불어 산행한 기록이다. 함께 천왕봉을 올랐고, 겨울 종주를 했고, 텐트 속의 밤을 새웠고, 청학동을 찾아 그 머나먼 길을 헤매고 다녔다. 벌써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와 산행을 하면 참 편하다. 운전도 내가 하고, 지리산 지형도 내가 더 많이 알고, 소소한 부담들도 내가 더 많이 하는데도 말이다. 그는 다만 나보다 여섯 살 젊고, 체력이 더 강하다는 이유로 배낭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그가 있어야 마음이 안정이 되고 즐겁다.
신근이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다. 망망대해, 천연의 신비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첩첩산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환경이다. 홍도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삶의 꿈을 찾아서 집안 친척이 있는 육지, 마산으로 무작정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삶은 팍팍하기만 했다. 보일러 기사로 시작해서 한의원 조무사, 건물관리원, 병원시설과 직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인생의 바닥을 모두 훑었다. 그 여정에서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검정고시로 중등학교 과정을 거쳐 국가고시로 법학사까지 받았다. 지금은 어엿한 종합병원의 ‘시설과장’ 명함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팠겠는가. 그런 와중에서도 지리산마니아가 되었고, 결국 지리산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만난 것이다.
신근이를 생각하면 이태준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연상될 때가 있다. 그만큼 천성이 착하고 순박하다는 얘기다.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할 줄 모를 만큼 정직하다. 그러다 보니 그를 아는 사람 치고 그를 싫어하는 이는 누구도 없다. 전기, 보일러 등 고장만 나면 그를 불러 수리를 부탁하는 것은 이제 기본이 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그가 사는 동네사람들 몇 명만 모여도 그를 불러내어 함께 자리를 하고 싶어 한다.
직장에서는 ‘맥가이버’란 별명이 붙을 만큼 동분서주다. 한번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 거절할 수도 있으련만, 그는 절대로 그리하지를 못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에 속할 것이다.
신근이는 아직 미혼이다. 어린 나이에 객지에 나와 힘겨운 인생길을 걷는 것이 벅차기만 했으리라. 그러다 보니 혼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신체 건강한 그가 혼자 사는 것이 늘 안쓰러워 반듯하고 다정다감한 여인이 하루속히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이제는 혼자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씨익 웃기만 할 뿐이다.
따뜻한 인간의 정이 그리운 시대, 각박한 세상에 부딪쳐 아픔을 피하기 어려운 시대, 사람들은 신근이를 통하여 잃어버린 사람의 정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예외일 수가 없다. 신근이를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에게는 그런 묘한 힘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강한 욕망에 젖어 사는가. 가지고 또 가지고 전부를 가졌다고 보는데도 더 가지려 한다. 서푼 어치도 안 되는 지위나 힘을 과시하려고도 하고, 잘된 자식자랑을 하고 싶어서도 안달이다. 이런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불편하고 곤혹스러운가.
신근이는 정말 가진 것이 없다. 아내도 자식도 재산도 그에게는 없다. 그렇다면 전부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나 역시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내 놓을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신근이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졌다. 하지만 신근이가 더 즐겁고 나는 아플 때가 많다. 작은 상처에도 신근이의 위로를 받기만 한다. 이 얼마나 나의 옹졸한 그릇을 보여주는 대목인가. 그는 이미 세속적 욕망이 행복의 절대조건이 아니라는 삶의 참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모를 일이다.
진정 나는 소망한다. 신근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와 선량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로 대접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결함이 아니라 빛나는 장점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그리하여 인간적인 정이 흘러넘치는 따뜻한 사회를 가꾸어 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런 신근이에게 문학적 인자가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지리산 외, 우리가 가까워질 수 있는 소중한 공통분모다. 신근이 역시 나를 유달리도 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사실 내가 등단하기 전부터 그는 가장 훌륭한 독자다. 나의 글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과 인상 깊은 구절을 피력하고 가감 없는 비판까지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나의 작품에는 그가 언뜻 던진 생각의 편린들이 녹아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중요 문학행사까지도 함께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가을을 기다린다. 9월에는 진해에서 ‘김달진문학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월하 김달진 시인의 고도한 문학정신을 기리는 아름다운 행사에는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문인들이 모인다. 이분들을 환영하고 함께 어울리는 일은 기쁨이자 영예다. 그 보람된 일에 나는 신근이와 함께 수년째 참여하고 있다. 진해가 꿈과 설렘의 도시로 인식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모두가 신근이이기에 가능하고, 즐거운 일이다.
요즘은 지리산을 가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의 바쁜 일상 때문이다. 지리산을 가지 않는 주말에는 함께 무학산을 오른다. ‘학봉’을 타고 올라 ‘안개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대곡산’으로 해서 ‘만날고개’로 내려오는 4시간 전후의 코스는 멋지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마음으로 산길을 걷는다.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어도 보고,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해놓고 박장대소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특정 이슈를 만나면 통렬한 비판의 화살을 쏘아도 댄다. 세상의 모든 것이 화제가 된다. 그야말로 행복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댓거리’에 도착하여서는 늘 들르는 주막에서 푸짐한 해물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 걸치면 세상사 모든 슬픔은 녹아내리고 만다. 그러다 취흥이 오르면 노래방이라도 전전하면 또 어떠랴. 그렇게 삶의 위안을 얻는 것을.
신근이와 오래오래 삶의 도반이고 싶다.
백남오 -------------------------------------
≪서정시학≫ 등단, 수필집: ≪지리산 황금능선의 봄≫(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 수필 <겨울밤 세석에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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