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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 남홍숙

신아미디어 2013. 4. 3. 08:07

"엄마는 함께 울어주지도 공감해주지도 않았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취직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웬 유별이람, 하며 속으로 딸 흉을 봤다. 남들 앞에서 성실한 척하지 말고 내면을 차분히 성찰해보라는 등, 진부한 언어를 진부한 수필처럼 풀어 놓는 엄마였다. 딸은 제 엄마라는 이름으로부터 얼마나 여러 번, 철문같이 꽉 닫혀버린 느낌을 받았을까. 날개를 가지고도 날지 못하는 새장에 갇힌 새를 경험했을까."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  남홍숙


   한때 나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야만 꽃의 모양새가 완성된 것이라 여기고, 하루의 햇살은 정오의 시간을 넘겨야만 햇빛이라는 지음새로 자격을 얻는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새의 울음 또한 청아해야만 숲향을 올올히 전하는 거라 단정하고 살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의 그런 행실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이 내게 외유내강형, 완벽주의형이라 했는데 그 말을 곱씹어보니, 나는 완벽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꽃이나 새나 해는 나 자신이 아니라 타자이다. 그렇다. 나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자에게 엄격한, 졸부 기질이 다분하다. 그것을 특히 나의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적용하여왔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의 침실과 나의 부엌과 나의 책상머리에서,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부모의 기지를 발휘했는가,라고 물어올 때, 나는 yes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세 아이 중 둘째 딸이나 막내아들에게는 조금 자신이 있는데, 큰딸 생각을 해보면 목에 가시마냥 따끔따끔 걸린다.
   큰아이는 소위 큰과수원집이라 불리는 집 맏딸로 태어나 할머니, 다섯 명의 큰아버지, 큰엄마, 고모, 고모부의 사랑을 먹고, 매일 작업하러 오는 일꾼들 관심 속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고사리 손으로 세 살, 여섯 살 터울의 동생들을 극진히 보살폈으며, 아이답지 않게 엄마의 일을 묵묵히 도왔다.
   엄마인 나는 이때까지 큰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남의 자식도 그렇게 자라는 줄 알았다. 햇살이, 새가, 꽃이 피어나는 것을 거저 얻는 거라 치부한 것처럼 딸에게도 그랬다. 그뿐 아니다.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아 더 신선한 아이에게서, 내가 필요한 언어만을 듣기 원했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낳은 아이가 스물일곱이 되어 학교를 졸업하였고 취직자리를 구하느라 오늘도 레주메resume를 쓴다.
   구인사이트에 들어가 백 번을 써서 보냈는데 대답은 메아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니 쏘리sorry, 패일fail로써 딸이 들어갈 공간 부재에 대하여 명료한 대답을 냉철하게 보내주었다. 아직 연둣빛 나이인데 백 번씩이나 바삭 마른 가지를 가슴에 얹어야만 했던, 그 마음의 갈빗대 사이로 얼마나 시린 바람이 들어갔을까. 엄마인 나는 그 속을 알지 못했다. 날마다 뛰는 호흡 속으로 묘지를 느껴야만 했던 딸의 흐느끼던 가슴을.
   엄마는 함께 울어주지도 공감해주지도 않았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취직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웬 유별이람, 하며 속으로 딸 흉을 봤다. 남들 앞에서 성실한 척하지 말고 내면을 차분히 성찰해보라는 등, 진부한 언어를 진부한 수필처럼 풀어 놓는 엄마였다.
   딸은 제 엄마라는 이름으로부터 얼마나 여러 번, 철문같이 꽉 닫혀버린 느낌을 받았을까. 날개를 가지고도 날지 못하는 새장에 갇힌 새를 경험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프로는 유치원생에게만 적용할 건 아니다. 10살 미만에 형성된 인격이 중요하다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는 멀고도 가까워서 아이와 부모가 살아가는 한, 평생 마음의 거울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 상큼한 사과 향을 담을 시기에 시큼한 식초를 맛보아야 했던 딸의 속내를 비출 거울을 갖지 않으면, 아무리 엄마라도 깨치지 못한다.
   이 미망의 시대를 알지 못하면, 그녀의 심층을 마른 갈대로 찔러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을 한 외모에서, 구멍 뚫린 속옷 같은 그 속내를 추측하지 못한다. 가뭄에 시들어가는 포엔시에나꽃이 얼마나 불타오르고 싶은지, 그 열망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가 클수록 부모 마음은 더 넓고도 세밀해야 한다. 아이가 다 자랐는데 심중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어른의 마음에 맞추어 대화를 하는 건, 잘못 깨물었다가 입안을 확 달구는 매운 고추 같은 언어가 되어 그녀의 화만 불붙게 한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도 참아내려고 한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라지만 20대 후반으로 갈수록 내면에서는 이해관계에서부터 부채 같은 신경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거액의 수업료를 낸 부모에게 아이는 채무자라는 느낌을 무의식중에 느낀다.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러니 흐르면 흐르는 대로, 흘러가야 한다. 강물이 흐르면서 강바닥의 모래알을 쓰다듬어 말갛게 씻어주고, 바람결이 흐르면서 연둣빛 새싹을 틔우듯, 부모의 언어는 그렇게 흘러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다. 자녀와의 대화는 마음의 결과 결 사이로 바람결처럼 흐르게 하여야 한다. 맺히는 것은 옹이 진 마음이 아니라 바람과 햇살이 지난 자리에 꽃망울이 맺히고 물결이 스쳐간 곳에 물고기가 알을 낳듯이, 그렇게 맺혀야 한다. 그저 시간이 흐르듯이 흘러가야 한다. 흐름과 흐름 사이에서 사랑이 맺히도록, 속 깊이 감춰 둔 진실 어린 속내를 서로 교감하여야 한다. 새 또한 세상과 교감하기 위하여 얇은 잎새에 곡예하듯 매달려 먹이를 쪼고, 햇빛도 제 몸을 뜨겁게 달구어 놓지 않는가.
   새봄이 오면 꽃샘바람이 불어와 위기와 도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불꽃으로 나불댄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다 보면, 꽃은 핀다.
   어느 해인가. 내가 과수원 안주인이던 시절에 꽃샘바람이 서리를 동반하고 꽃봉오리를 강타하여 배나무는, 배꽃을 피우기에 얼마나 힘겨웠는지 모른다. 농부는 서릿발에 시들어가는 꽃봉오리 앞에서 평소 믿지 않은 신께 기도를 했고, 밤새 왕겨를 이불로 덮어주면서, 꽃과 함께 산고를 겪어야만 했다. 그 결과, 그해 꽃향기는 난분분 흩날리며 과수원을 달달하게 감쌌다. 열매는 우량아처럼 아주 튼실했다. 잘 익은 과일을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배가된 단물이 입 안 가득 번졌었다.
   지나고 보니 꽃을 피우려 애면글면하던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오늘도 나는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앞에서, 꽃을 기다리는 농부가 되어본다.

 

 

남홍숙  --------------------------------------------
   ≪현대수필≫ 등단,  수필집: ≪물빛≫, ≪그대의 혼으로 과일이 익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