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 속에 달궈진 쇠는 두들겨야 좋은 연장이 되고 도자기는 불가마에서 구워져야 청자의 오묘한 빛을 내게 마련이다. 육십 평생 끈을 놓지 않았던 소망은 그 무덥고 뜨거웠던 지난여름 동안 달궈져 새로운 삶을 향해 새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여름을 이겨내고 세계에 감동을 안겨 주었던 여수시민들이 자랑스럽고 또 나 자신도 대견하다."
뜨거웠던 지난여름 - 김영덕
여름은 뜨겁고 더워야 제 맛이고 겨울은 추운 게 자연의 순리이다. 그렇더라도 지난여름은 유례없이 뜨겁고 길었지만, 또한 짧은 여름이기도 했다.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 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몇 번인가 밤비가 내린긴 했지만 큰비는 아니었다. 한여름 밭작물들이 시들어가는데도 이곳 시민들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박수를 쳤는가 하면, 어처구니없게도 각 종교단체에서는 맑은 날씨이기를 바라며 매일같이 기도회를 열었다.
여수에서는 2012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는 주제로 세계박람회를 치렀다. 생각해 보면 시민들의 각오와 다짐은 대단했다. 수년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재원조달이 늦어져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었다. 개회 며칠 전까지 야간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여러 불만과 우려 속에서도 터널이 뚫리고 교량이 준공되어 새로운 도로가 생겨 꿈같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되기에는 날씨가 큰 몫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지역은 국토의 균형발전에 크게 미치지 못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를 알고 하늘이 도우신 걸까? 날씨는 여수시민들의 편에 서서 소망을 들어주었다.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치른 박람회의 피날레 불꽃은 화려했다.
넓어진 도로와 재정비된 철도며 상상도 못할 정도로 지역 환경이 30년은 앞당겨졌다고도 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데에 새로운 비전을 안겨 준 것이다. 도로망에 따른 교통 대란, 숙박, 식당 문제 등 염려되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시민들의 열의와 성숙한 협조로 행사를 잘 치러 낸 것이다. 뜨거웠던 날씨만큼이나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여수 시민들의 훌륭한 참여의식의 열매가 아닌가 싶다.
여수국제박람회 만큼이나 나에게도 지난여름은 뜨겁고 특별했다. 늘 가슴 한쪽을 짓눌렀던 시대의 희생양, 부족한 배움의 한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쓰기 수업을 받으며 갈증을 달래기도 했지만 내면에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떠나가질 않았다. 살면서 꿈은 해가 갈수록 먼 이야기가 되어 갔고 나의 소망은 가정과 가족이라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아이들은 늦도록 학업을 계속했고, 남편은 건강을 잃어 십여 년을 병원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나의 소망은 식을 줄 몰랐다.
삼십오 년 동안 생계를 지탱해 주었던 나의 ‘맞춤복가게’는 기성복시대에 밀려나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 후 직장생활 육년, 예순의 중반을 넘어 선 지난 해 초,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다음날 날 곧바로 검정고시학원의 문을 두들겼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이 없기는 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비슷한 연배들이 있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의 국가자격고시를 치렀다.
여름 내내 박람회 열기로 주위는 들썩이고 외지의 친척들이 다녀가서 어지간히 심지를 곧추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음은 아직인데도 기억력은 따로 놀아 서울의 자식들에게 밤낮없이 전화로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같은 수학문제를 몇 번씩 되물어도 그때마다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던 아들과 딸이 고맙기도 했고 교육공학박사인 남동생의 응원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 힘으로 어떤 날은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아 밤 내내 끙끙대다 창문이 밝아 와도 지치지 않았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단시일에 끝내야 한다는 욕심에 밤잠을 설쳐도 마음은 즐겁고 행복했다.
재미가 붙은 나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어서 동생의 말대로 더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그리곤 대입자격시험에 자신이 생겼고 끝내 이루었다. 그 가슴 벅찼던 성취감과 감동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두어 번 건성으로 보았던 박람회장을 찾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그 희열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시 보았던 박람회장 입구의 ‘비행기 타지 않은 세계여행’이라는 포스터가 왜 그렇게 멋지게 보였던지. 지금 난 대학에 등록을 하고 입학을 기다리며 가슴이 부풀어 있다. 늘그막에 빠진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가 있는가.
“머릿속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그리며 가슴에 그 씨앗을 키우면 온 몸의 세포가 그 목적을 달성하려 방향을 한곳으로 집중한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풀무 속에 달궈진 쇠는 두들겨야 좋은 연장이 되고 도자기는 불가마에서 구워져야 청자의 오묘한 빛을 내게 마련이다. 육십 평생 끈을 놓지 않았던 소망은 그 무덥고 뜨거웠던 지난여름 동안 달궈져 새로운 삶을 향해 새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여름을 이겨내고 세계에 감동을 안겨 주었던 여수시민들이 자랑스럽고 또 나 자신도 대견하다.
김영덕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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