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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전설의 오지 배틀러(Aussie Battler) - 김경중

신아미디어 2013. 4. 2. 08:14

"티나의 전 남편은 전형적인 오지 배틀러다. 오지(Aussie)는 오스트랠리안, 배틀러(Battler)는 억척스러운, 오지 배틀러는 억척스러운 호주인이다. 티나 남편의 손가락 갈라진 틈에 검은 때가 끼었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누구와 만나도 화제가 넘친다."

 

 

 

 

 

 

  전설의 오지 배틀러(Aussie Battler)  -  김경중


   티나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오지다. 그녀는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다. 그녀는 십대 소녀의 엄마이며, 간호사고, 취미는 비주얼아트다. 그녀는 오팔 원석으로 귀걸이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를 즐긴다. 그녀는 긴 머리에 원피스 차림이다. 그녀의 옷장에 바지나 정장은 없다. 그녀는 또 고전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그녀가 책을 구입할 때 유의해 보는 것은 주로 삽화다. 그녀는 그렇게 수집한 책을 인터넷에 올려 팔기도 한다.
   그녀는 우리 가족에게 친절하다. 그녀는 어느 날 만두재료를 가지고 오는가 하면, 다른 날은 도미나 연어, 또 다른 날은 염소 치즈를 가지고 와서 우리와 같이 먹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그녀의 가족과 식사할 기회가 생기면, 그녀는 아프리카 사람을 돕는다며 아프리카 사람들이 일하는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스 수불라키나 수시를 먹자고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다. 그녀는 장소가 허락하는 한 두 딸과 함께 제이슨과 동행한다. 제이슨은 큰 검둥이다.
   그녀 집은 발 디딜 공간이 없을 정도로 책이 쌓였다. 그런 그녀가 작년에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은 두 딸과 살고 있다. 일 년 전에 남편이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녀와 두 딸들은 깊은 상처를 받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요즘 어려움을 극복한 듯, 남편이 그 여자와 멜번에 오면 그들이 쇼핑하는 동안 그들의 한 살 난 아들을 돌봐 주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때 하루내 차를 몰고 전 남편이 사는 곳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은 티나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그녀 곁에 가면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티나의 전 남편은 전형적인 오지 배틀러다. 오지(Aussie)는 오스트랠리안, 배틀러(Battler)는 억척스러운, 오지 배틀러는 억척스러운 호주인이다. 티나 남편의 손가락 갈라진 틈에 검은 때가 끼었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누구와 만나도 화제가 넘친다. 티나 남편도 티나같이 책을 좋아한다. 그는 우리나라 동해안을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은 잘못되었다며 바다에 자기나라 이름을 붙인 예는 없다고 말한다. 티나가 말하길 남편의 조상은 책을 훔친 죄수라 했다. 나는 호주 조상들이 죄인이란 사실이 사실일까 생각했는데 그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식사에 초대받아 가 보니, 그녀의 시어머니가 티나 남편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꽤나 두터운 책이다. 티나의 전남편과 티나는 책을 무척 아낀다. 책을 접거나 구기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티나는 서점을 돌다가, 한국 사진책이나 ≪춘향전≫ 같은 책을 발견하면 구입해서 우리에게 갖다 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사실, 오지의 조상들은 거의 모두 경범죄인이었다고 한다. 영국이 그들을 추방한 목적은 하층민을 없애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지들은 자신의 조상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들끼리는 인사를 잘해도 동양인에게 먼저 인사하는 오지는 많지 않다.
   오지들의 발음이 특이하다. 그들의 H 발음 때문에 나는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시드니 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을 찾으려고 직원에게 물으니, ‘헤이치’라고 해서 내가 다시 H(에이치)냐고 묻자, 그 사람은 계속 ‘헤이치’라고 했다. 티나에게 이유를 물으니, 그녀도 잘 모른다며 방언일 것이라고 한다.
   올여름 멜번에는 두 달 동안 비가 없었다. 건조하고 고온이어서 부시파이어를 시작으로 1월 초에 호주 1백 50여 곳에 불이 났다. 그런데 그 부시파이어가 주로 방화, 심지어는 소방수의 방화도 있었다고 한다. 화재는 뉴 사우즈 웨일즈에서만 일백여 건 그리고, 타즈마니아에서는 백 채 이상의 집이 불탔고, 퀸스랜드에서는 홍수로, 그리고 서부에는 사이클론 경보로 조용한 날이 없다. 땅이 넓다 보니, 재해도 많은가 보다. 하늘을 바라보니, 아침 저녁으로 노을만 붉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이 더위에 차고나 창고에서 낮에는 더위로, 밤이면 뱀이나 벌레들과 싸우며 살고 있다. 그래도 내가 이 더위를 견디는 것은 건조하기 때문이다. 햇빛이 너무 밝아 낮에도 블라인드를 내려야 하는 날이 많은 멜번. 멜번은 불타는 땅. 하늘도, 땅도, 사람도 벌겋다.
   아더 필립 선장이 이끈 열한 척의 함대가 포트 잭슨(지금의 시드니)에 도착한 것이 1788년 1월 26일, 배에는 죄수 750명과 호송 관계자 750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맨 먼저 뉴 사우스 웨일즈(시드니)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십 년 후인 1808년 영국에서 첫 가버너가 도착하여 1월 26일을 기념하기 위해 경마경기 등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그후 1825-30년 사이에 한 무리의 죄수들이 지금의 브리즈번 가까운 곳에 정착했고, 퍼스에는 일반 영국인들이, 멜번에 가까운 필립베이에는 수쿼터(불법 점유자)들이, 그리고 에들레이드에는 죄수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영국 민간기업이 정착했다. 마지막 죄수 호송이 이루어진 1868년에는 약 16만 명에 달하는 경범죄인들이 호주에 왔다. 그 당시 그들의 삶은 각박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굶주렸고, 여자들은 성폭행의 두려움으로, 남자들은 경범죄를 지어도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는 살벌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척박한 환경이 그들을 돌게 한 걸까? 그 당시 에보리진들은 1백만의 인구에, 3백여 부족이 2백5십 개의 언어와 7백여 개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며 토템 신앙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다가 불법 침입자들에게 쫓겨 죽임을 당하거나 내륙으로 몸을 숨겼다. 에보리진은 빙하기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호주에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보리진들은 호주의 날(1월 26일)을 <애도의 날The day of Mourn>로 선포했다. 1788년경 하얀 손에 죽임을 당한 에보리진이 2만 명이다. 그래도 요즘은 티나같이 에보리진에게 사과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 전설의 오지 배틀러! 그들은 요즘 호주화로 20조 달러(한화 2경3천조 원)가 넘는 세일 유전층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이 호주 십대들의 범죄율을 잠재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호주 십대들이 심상치 않다. 아시안들은 ‘호주의 날에 외출을 삼가자.’고들 말한다. ‘호주의 날’ 주요 이벤트가 불꽃놀이다. 그러잖아도 부시에 불꽃놀이가 한창인데…….
   이래저래 호주의 1월은 불꽃투성이다.

 

 

김경중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