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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금돼지의 속삭임 - 김순희

신아미디어 2013. 4. 2. 08:29

"놓쳐버린 대어의 환상에 젖은 강태공의 마음이 된 나에게 요술처럼 야무지게 작아진, 금돼지가 속삭인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 챙기시라고요. 오늘의 사랑이 훗날 아름다운 첫사랑인 거예요.”"

 

 

 

 

 

  금돼지의 속삭임  -  김순희


   여름밤은 몹시도 더웠다. 잠결에 목에 감긴 목걸이를 옆에 둔 핸드백 속에 넣었다. 그로부터 삼사 일 후 잠자리에 들면서 목에 걸려 있어야 할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이리저리 생각하다 그렇지, 백 속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었지. 하면서 되살린 기억에 안심하였다. 하지만 며칠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백을 열고 닫고 했으니 혹시 제자리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생겼다. 급히 백 속에 손을 넣어 보았으나 염려한 대로 목걸이는 없었다. 착각이었나? 오락가락 헛갈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근래의 기억력에 자신이 없으니 문제였다. 하지만 어디엔가 있겠지, 하면서 이리저리 찾기 시작했다.
   작은 서랍부터 차근차근 뒤져가며 침대 밑 구석구석까지 찾아도 없었다. 밤이 가고 새벽이 되었다. 기진한 나는 아침식사를 대강 끝내고 눕고 말았으나 편히 쉴 수 없었다. 더구나 그 목걸이는 아들내외가 준 생일선물이었는데……. 목걸이에 달린 통통한 금돼지가 눈에 선했다. 요즘 금값이 말 그대로 금값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봄에도 분신처럼 하고 다니던 금팔찌를 잃어버리곤 화단에 나무를 심으면서 빠졌을 거라 생각하고 심었던 나무를 뽑아 흙을 털어가며 마당 이곳저곳을 파헤치기도 했었다. 목걸이보다 몇 배 무거운 팔찌였지만 오래 끼다 보니 헐거워져 가끔 손목에서 흘러내리기도 했기에 잃어버린 것이 당연했다고 자책하고 말았다. 하지만 몇 달도 못 되어 겹쳐 생긴 일이고 보니 내 몸의 퇴행성은 머리에서부터 시작되나 보다는 생각에 몸속의 힘이 금간 항아리에서 물이 새듯 술술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때마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 살기 싫어. 정말 이제 그만 살고 싶어. 살아갈 자신도 없고.” 했다. 친구는 “너무 자학하지 마. 몸 아픈 것보다는 몇 배 나은 거야. 우리 나이에 목걸이 같은 거 없어도 살아, 털어버려.” 하고 위로해 주었다. “알았어.” 개미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구 말처럼 몸이 아픈 것보다야 나을 테지만 모든 것이 서서히 낡아가는 몸 탓이라 생각하니 서글퍼지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삼 일 전에 식구들과 같이 여의도의 어느 중식당에서 식사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전화로 서비스하던 종업원을 불러 물었다. “저어 혹시….” 참으로 허황한 대화였다. 오후에는 밖으로 나섰다. 미련스럽게 여기저기를 뒤져보는 것도 싫어서였다. 남편과 식사했던 동네식당에 찾아갔다. 어리석음은 잠시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래, 세상엔 가끔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혹 누가 주워서 주인에게 맡겨 놓았을지도 모르지. 금돼지는 식당주인의 서랍 속에서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목걸이를 찾아주면 적당한 선물이라도 해야겠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생기가 솟아났다. 하지만 식당 문을 열었을 때 “어서 오세요.” 하는 주인의 얼굴을 대하고 막상 말을 하려니 공연한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부산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을 보니 오히려 미안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한결같이 그런 것 본 일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친절한 주인의 말대로 연락처를 적어 놓고 힘없이 나오는데 “손님 여기 핸드폰 가져가세요.” 하며 핸드폰을 건네준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에 ‘내가 이래요.’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이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어지간한 실수는 탓하지 않는 남편이라고 믿으면서도 차마 몇 달 전의 팔찌 분실도 생생한데 말하기도 염치가 없었다. 번번이 저지르는 일을 어찌 실수라고 하겠는가. 여느 때 같으면 딸들한테 털어놓기라도 하련만 그 또한 면목이 없어 그만두었다. 남편은 재차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사실은…….” 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도 어이없는지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답답해진 내가 말하고 나니 좀 가벼운 느낌이라고 하니 ”그럼, 털어 버려야지. 속에 담고 있어봐야 병이 돼요. 잊어버려요. 난 또 무슨 큰일이라고.” 한다.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위로를 받고 ‘까짓것’ 툭툭 털어버릴 양으로 목걸이를 넣었던 백을 보이며,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빠져 나간 거야. 이 백에 확실히 넣었거든, 어떻게 흘렸는지 통 감感을 잡을 수 없다니까.”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거리면서 몇 번이나 뒤져본 백 속을 다시 한 번 손을 넣어 훑어보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손에 돼지 목걸이가 잡혀 나오는 게 아닌가! 머리가 정말 빙그르르 도는 것만 같았다. 누가 집어넣기라도 했나? 이럴 때 귀신 곡한다는 말도 하나 보다.
   무엇보다 더욱 믿기 어려운 것은 누가 통통하게 살진 내 금돼지를 삶아 놓은 메주 콩알만 한 돼지로 만들어 놓았는가? 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제 죽은 자의 희망’이라는 오늘, 아니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가버리는, 그 역사적인 오늘”을 , 살기조차 싫다고 했던 통통한 나의 금돼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놓쳐버린 대어의 환상에 젖은 강태공의 마음이 된 나에게 요술처럼 야무지게 작아진, 금돼지가 속삭인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 챙기시라고요. 오늘의 사랑이 훗날 아름다운 첫사랑인 거예요.”

 

 

김순희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