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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결혼행진곡 - 김은옥

신아미디어 2013. 4. 3. 07:59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한 달 내내 그랬다. 사소한 일에도 내 화에 못 이겨서 딸을 나무랐던 일, 으레 밥 잘 먹고 건강하려니 싶던 딸애가 감기에 걸려 된통 고생했던 일들이 자꾸 생각났다. 딸은 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부모 말을 대부분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른다. 그래서인지 잘 챙겨주지 못했던 일들만 더 밟혔고 그런저런 기억들에 잠을 설쳤고 밥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결혼행진곡 김은옥


   두 뼘이나 될까, 막 태어난 딸아이 고 조그만 게 고운 눈을 감고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아가 사랑한다, 아가 사랑해.” 하며 한없이 들여다보던 때가 생각났다.
   무주 이모 집에 놀러 갔을 때 딸과 두 살 터울인 돌도 지나지 않았던 아들이 폐렴을 앓게 되었다. 큰 병원으로 가야겠기에 나는 아들만 데리고 먼저 올라왔고 겨우 세 살이었던 딸은 이모 집에서 한 달 정도 더 지냈다. 나중에 데리고 와서 나랑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안아주려고 팔을 벌리자 딸은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두 손을 마주 꼬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길을 가면서도 티브이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려 해도 딸아이의 어린 시절이 보였고, 사춘기도 없이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밥 먹고 학교 가던 모습, 꽃다운 이십 대를 고시원에서 보내는 동안 어여쁜 딸의 얼굴에 점차 웃음이 사라지던 시간이 눈앞을 가렸다.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한 달 내내 그랬다. 사소한 일에도 내 화에 못 이겨서 딸을 나무랐던 일, 으레 밥 잘 먹고 건강하려니 싶던 딸애가 감기에 걸려 된통 고생했던 일들이 자꾸 생각났다. 딸은 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부모 말을 대부분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른다. 그래서인지 잘 챙겨주지 못했던 일들만 더 밟혔고 그런저런 기억들에 잠을 설쳤고 밥 생각도 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 편도선 수술을 해주었다. 그때 침만 삼켜도 아프다 했다. 그런데도 별 내색 않으면서 아프냐면 고개만 끄덕였고 엄마와 있으니 좋다며 그저 자꾸 웃던 일도 새삼스레 생각났다.

 

   이천십이 년 십일 월 십칠 일 오후 세 시 삼십 분. 길목마다 늦가을 바람이 사정없이 내닫고 있었다. 대법원 청사 예식장 주변에서는 단풍잎들이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미리 도착한 하객들은 인사를 나누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바람이 거칠어 좀 싸늘한 감이 있었지만, 빛나는 웨딩드레스와 하얀 리무진, 그것들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붉고 노란 낙엽과의 대비는 그야말로 기막히도록 훌륭한 조화였다. 몇 날 며칠 먹지 못하고 잠들지 못해 살이 쏙 빠진데다 그날도 오후 세 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나는 묘하게도 그 풍경 속에서 마치 수초처럼 고요히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웃음 띤 얼굴로 마주 보며 함께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 신랑이 가사를 더듬는듯하면 신부가 알려주고 박자까지 살짝 맞춰가면서 말이다. 저게 내 딸인가. 정말 신기했다. 단둘이서만 이 자리에 서서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눈길로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 신이여 허락하소서.” 하객들 앞에서 신랑 신부는 떨지도 않았다. 눈물을 참으려고 고개에 힘주고 있던 나는 내 딸의 그런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부셨다. 저 녀석에게 저런 당찬 모습이 있었구나, 그래, 염려하지 말자, 저렇게 행복해하니까.
   이천십삼 년 일 월 육 일, 강남 ‘파티오 나인 웨딩 갤러리’ 열두 시 삼십 분. 내가 아는 동생의 딸이 웨딩마치를 울렸다. 역시 신랑 신부는 시종일관 웃음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이천십삼 년 일 월 십구 일 상월곡역 ‘맑은 샘 광천교회’ 한 시 삼십 분. 언니 딸의 결혼식이었다. 교회가 예술의 전당보다 더 넓어 보였다. 예배처럼 진행되는데도 유머 섞인 목사의 주례로 예식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하고 경쾌했다. 신랑은 전문 작곡가요, 신부는 가스펠 가수이자 실용음악학원 원장이다. 그래선지 두 달여 사이에 치른 세 결혼식 중에서 음악의 비중이 가장 컸다. 머리를 길게 기른 신랑을 보고 나는 왠지 ‘아, 말도 상당히 잘하겠구나.’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전혀 반대였다. 내 딸 결혼 때나 아는 동생 딸 결혼 때는 신랑이 굉장히 활달했고 주례의 물음마다 씩씩하게 화답했었다. 그런데 이 조카사위 될 신랑은 정말 긴장한 모습이었다. 몸까지 얼어버렸다. 주례가 “마주 보세요.” “돌아서시오.” 할 때마다 비틀거렸고 대답도 겨우 했을 정도였다. 땀 흘리며 긴장하는 모습 또한 행복의 다른 빛깔이려니…….

 

   한 달 걸러 딸을 시집보낸 친정어머니이자 장모가 된 우리 세 사람. 딸 결혼을 앞두고 우리는 그동안 전화 통화를 자주 하며 서로 격려도 하고 걱정도 같이 했었다. 그런데 결혼식 전과 후의 통화내용이 달라졌다. 이제 통화의 주된 내용은 딸들의 신혼살림 이야기이다. 딸이 반찬은 어떻게 해서 먹고 사위가 얼마나 예쁜지 집에 언제 오는지, 어찌 그리 바쁜지, 건강은 어떤지 등등, 예전에는 우리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제는 딸과 사위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노랫말처럼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리라. 여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것들이 성장해서 짝을 만나고 사랑하고 반려자가 되기를 약속하는 결혼식.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울리는 <결혼행진곡>에 맞춘 행진은 바로 이 같은 순간을 두 사람이 서로 감싸 안고 앞으로 앞으로 희망으로 나아가는 행진일 것이다. “아가 사랑한다, 아가 사랑해.” 하며 한없이 들여다보던 때가 다시 떠오른다.

 

 

김은옥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