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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3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영화, 그 아련한 추억 - 서정길

신아미디어 2013. 4. 4. 08:17

"중앙공원 앞 아시아극장을 찾아갔다. 극장 전면 대형 간판에는 내 또래의 한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이 사진같이 그려져 있었다. 입장료 45원, 거금이었다. 이렇게 큰 극장을 본 적이 없었거니와 표에 내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영화도 보기 전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영화, 그 아련한 추억  -  서정길


   유년의 추억이 꽃향기처럼 스며있는 곳이 있다. 뒷동산과 골목길, 연못, 강, 뽕밭, 밀밭 등 수없이 많지만 특별한 한곳이 있다. 잠실이다. 둘째 큰댁에서는 양잠을 많이 했다. 그곳에는 시골마을에서 보기 힘든 신문지가 있었다. 신문지는 누에가 첫잠을 자기 전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발 위에다 펴주었다. 신문에 게재된 영화 광고만 보면 큰아버지 몰래 찢어 두었다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갈피에도 온통 영화 포스터뿐이었다.
   집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장터에 가설극장이 차려졌다. 그들은 짐자전거에다 영화 간판과 확성기를 달고 골목길을 누볐다. 이번에 못 보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영화라며 톤이 높은 목소리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화를 보러 갈 요량으로 평소보다 일찍 숙제를 끝냈다. 아버지가 마실 나간 틈을 타 영화구경 가겠다고 어머니를 졸랐다. 애들 보는 영화가 아니라며 오히려 꾸중만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가설극장 주위에 건장한 청년이 매서운 눈초리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또래들이 천막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지자 삼엄하던 경계가 느슨해졌다. 재빨리 천막 틈새로 몸을 날렸다. “거기 서.”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요행히 잡히지 않았다. 다음 날, 교실에서는 나를 둘러싼 반 이이들이 어젯밤 감행했던 무용담과 영화 줄거리에 귀를 기울였다.
   초등학교 5학년 소풍 때였다. 소풍은 명절처럼 용돈이 생겨 좋았다. 영화가 보고 싶어 같은 마을에 사는 또래 둘을 꾀었다. 선생님 눈을 피해 소풍 대열에서 이탈해 무작정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뛰던 가슴이 진정될 무렵 버스는 종점에 도착했다. 달성공원 부근의 시외버스 정류장이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돈을 꼬깃꼬깃 접어 양말에 넣고 다녔다. 중앙공원 앞 아시아극장을 찾아갔다. 극장 전면 대형 간판에는 내 또래의 한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이 사진같이 그려져 있었다. 입장료 45원, 거금이었다. 이렇게 큰 극장을 본 적이 없었거니와 표에 내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영화도 보기 전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영화였다. 아버지는 술주정꾼에다 도박판에서 세월을 낚았다. 어머니는 지독한 가난과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에 가출을 했다. 병든 아버지 간호와 동생을 돌보아야 했던 주인공 이윤복의 삶을 그린 영화였다. 껌팔이와 남의 가축을 돌보고 겨울날 밥을 구걸하는 어린 가장인 주인공처럼 이미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극장은 흐느낌이 들리더니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어른이 되면 저 나쁜 사람들을 반드시 응징하겠노라 분기를 세웠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토끼 눈이 된 채 집에 들어섰다. 대청마루에 앉아 계시던 부모님과 큰댁 식구들이 일제히 마당으로 내려왔다.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면서 안도인지 꾸중인지 알 수 없는 한마디씩 던졌다. 세 살 터울인 동생이 말했다. “오빠 선생님하고 교장선생님이 우리 집에 왔다갔어.” “오빠 죽었다고.” 동생의 뚱딴지같은 소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이어 아버지의 다그침이 시작되었다. 풀죽은 목소리로 영화를 보고 왔노라 실토하자 회초리가 종아리를 붉게 물들였다.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라며 큰댁 식구들이 말린 후에야 매를 면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피멍이 든 종아리에 연고를 발라주시며 잃었던 아들을 찾았다는 안도 때문인지 울음을 삼켰다.
   다음날 등교하자 반 아이들이 “어, 어.” 하며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담임선생님께서 앞으로 불러내었다. 취조하듯 자초지종을 물었다. 말하는 도중에 “이게.”, “이게.” 하시며 머리에 수없이 꿀밤을 먹였다. 아픈 것보다 어제 본 영화가 오버랩 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선생님은 엉뚱한 행동에 기가 찬 듯, “당돌한 녀석”을 연발하시며 회초리를 들었다. 손바닥엔 붉은 선이 수없이 그어졌다. 영화를 본 내용을 급우들 앞에서 발표하게 했다. 나도 반 아이들도 모두 울었다. 다음날, 옆 반에 불려가 발표하면서도 연신 눈물을 쏟아내는 연사가 되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복도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은 이름 대신 괴짜라 불렀다.
   이후 영화감상은 아주 특별한 취미였다. 학창시절에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면 틈틈이 영화를 즐겼다. 친구와의 만남도 데이트도 자주 영화로 이어졌다. 영화 감상기를 심심찮게 포털 사이트에 올려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다. 피곤이 엄습해도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졌을 정도다. 이사를 한 후 화면이 큰 TV를 구입했다. 영화관과는 비길 수 없지만 백 편이 넘는 영화를 담아 두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즐기고 있다. 영화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시공을 초월한 공간에 나를 서게 하거니와 존재를 확인하게 해 준다.
   한 달에 두 편의 영화를 꼭 감상하리라고 스스로에게 내걸었던 약속은 이런저런 이유로 유보되어 있다. 올해는 동호회라도 가입하여 영화를 즐기고 싶다. 곧 설 연휴다. 모처럼 가족에게 영화 한 편 보자고 제의해 봐야겠다.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감상하던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반추되지는 않을까.

 

 

서정길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