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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사색의 창] 조화로운 삶 - 민병옥

신아미디어 2013. 3. 7. 12:12

"자연은 조화롭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리라. 모든 생명체는 자웅을 지어 종족을 번식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지 않는가. 이것이 깨지면 투쟁이나 재앙을 통해서 평형을 유지한다."

 

 

 

 

  조화로운 삶 민병옥


   우주 만물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각자의 역할을 다 한다. 우주의 한 원소인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질서 속에서 안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펭귄이 남극에서 혹한을 어떻게 견디어낼까.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는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법칙이 있는가 보다.
   물질세계의 흐름은 안정을 위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세계는 여러 형태로 주위와 결합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를 지탱해 나간다. 그 형태란 물질들이 자기가 가진 일부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안정을 취한다.
   물질의 구성 입자인 ‘원자’라고 하는 놈(者)은 전자(情)를 내어주어 양의 전하(+)를 띠기도 하고, 어떤 놈은 전자를 받아들여 음의 전하(-)를 띠어 더욱 안정된다. 전하를 띤 입자들이 가까이 접근하여 양과 음의 강한 인력에 의해 결합을 하게 된다. 강한 인력으로 서로가 묶여 있기 때문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남녀 간의 사랑도 그러하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기에는 쓸쓸하다. 또, 불안정하여 슬픔과 우울증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남녀가 가까이 접근하여 서로 저울질하면서 관심을 끌게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서로 함께하기를 약속하고 결합하는 연애결혼이 그와 같은 것이다. 이 결합은 충분히 서로 알고 결합했기에 아주 강한 결합이며 대개 조화를 이뤄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을 주고받는 성질이 비슷한 놈은 어떻게 할까. 이들은 서로 정을 공평하게 내놓고 공유함으로써 안정을 찾게 된다. 즉 내성적인 남녀 간에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선남선녀들은 서로 좋아서 사랑을 키워 결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홀로 살아야만 하겠는가?
   두 남녀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매파가 있어 인위적으로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이때는 어느 한쪽이 기울면 깨어진다. 서로 공평한 배경과 조건이 맞아야 성사된다. 서로 열정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중매에 의한 결혼을 하게 된다. 서로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부부를 볼 수 있다.
   또 다른 형태의 결합은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전자쌍[情]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물은 주위의 수소이온이라는 입자에게 전자쌍을 주어서 더욱 안정한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물은 자신이 안정하기에 여러 물질을 끌어당기는 힘이 큰 물질이다. 따라서 물은 다양한 성질을 가져 주위의 세계를 지배하고 안정화시킨다.
   사람도 그런 경우가 있다. 옛날의 민며느리 제도나 데릴사위 제도가 여기에 속한다. 오늘날 일부다처제의 나라에서는 신부를 맞이할 때 지참금을 많이 지급하고 데려온다고 한다. 애정에 의한 결합이 아니라 자기의 과시, 부의 상징, 종족 번식을 위한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나는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 짝을 찾아 안정을 얻었다. 어느 날 당숙모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여름에 만나 가을에 결혼했으니 불과 몇 달 만에 이루어졌다. 당숙께서는 이미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둘 사이를 맺어 주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우리를 맺어준 당숙모님은 처이모이기도 하다.
   결혼 후 처음에는 모난 돌처럼 성격, 의견, 육아 문제 등 이리저리 충돌이 많았다. 차츰 살아가면서 모난 돌이 부딪혀 깎이고 파여 둥근 돌이 되는 것처럼 둘 사이가 변해갔다. 오랜 세월을 통해 서로를 교감하면서 조율되어 둥근 보름달처럼 되었다.
   우리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결혼해서 살아가고 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교육하면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안정하게 살고 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신의 섭리며 제 몫을 다하는 삶이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고 ‘나 홀로’가 과연 행복한 삶일까. 불편 없이 살기는 하겠지만, 홀로된 외로움과 적적함은 떨쳐버릴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남극의 펭귄은 추운 겨울을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서로 함께 ‘허들링(Huddling)’ 하면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다고 한다. 서로 둥글게 돌면서 몸을 맞대어 온기를 나누면서 함께 살아간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펭귄으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자연은 조화롭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리라. 모든 생명체는 자웅을 지어 종족을 번식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지 않는가. 이것이 깨지면 투쟁이나 재앙을 통해서 평형을 유지한다.
   지구촌에서는 자연을 역행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다. 인간 활동으로 지구 온도를 높여 기상 이변을 가져오고 있다. 또한, 아무 대책 없이 환경을 파괴하여 인재人災를 자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연과 함께 더불어 공존해야 함을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마구 해치니 안타깝다.
   자연의 법리대로 순응하면서 함께 비벼대는 삶. 희로애락을 누리는 삶이 순리이고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찰나의 삶을 혼자가 아닌 더불어 안정하고 조화롭게 사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아닐까.


 

민병옥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