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도 옛날에는 커다란 바위였을 것이다. 몽돌이 되기까지 서로 부딪혀 깨어지고 깎이면서 얼마나 많이 아파야 했을까. 저그럭저그럭 제소리를 높여 충돌할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의 자리를 탐하니 억울하고, 덜그럭거리며 제 영역만 넓히려 하니 위기감에 모서리를 들이대었을 것이다."
몽돌의 노래 - 김용순
같은 버스 안이지만 화제는 제각각이었다. 아침을 못 먹고 왔다거나 온다고 해 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하거나 타인의 옷차림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회장이라는 사람이 이틀 동안 함께해야 할 일정에 대해 말할 때까지 나는 딴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버스에는 생각이 제각각인 다른 사람들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서로에게 타인이다. 타인은 때로, 서로에게 자유와 실존을 박탈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라고까지 말한 서양의 실존주의 철학자도 있었다.
타인들을 태운 버스는 낯선 지방으로 달려 저물 녘이 되어서야 숙소가 있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한 버스에 타고 간 타인들이 이번에는 남자 여자로 나뉘어 잠자리에 들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자방’에서 자고 새벽을 맞이한 나는, 아직 자는 타인들이, 나 때문에 깨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 여겨서 겉옷과 목도리를 소리 안 나게 걸치고는 고양이걸음으로 숙소를 빠져나갔다.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의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뿐 어둑새벽의 시야는 짙은 회색에 잠겨 있었다. 무채색의 공기는 호흡기를 통해 몸안으로 들어와 내 안의 잡다한 색깔의 상념을 다독거렸다. 그때야 관계라는 타인과의 끈에서 헤어난 듯 홀가분했다.
한참 만에 해안의 모습이 어슴푸레 나타났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마다 발밑에서 돌멩이들은 저그럭저그럭 비명을 질렀다. 내 몸에 짓눌린 돌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모양이었다. 큰 돌을 밟으면, 내 몸의 균형을 잃게 할 정도로 저항하며 더 큰 소리를 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돌이 부딪는 불협화음을 들으며 해안을 걸었다.
이윽고 제모습을 온전히 드러낸 검푸른 바다는 허연 거품을 물고 끝도 없이 돌밭 해안에 달려들었다. 수많은 돌은 파도에 떠밀리어 내 발치까지 왔다가는 도로 휩쓸려갔다.
“쏴아아, 철썩!”
“자그르르르…….”
돌 소리가 좀 전과는 달랐다. 큰 돌을 밟을 때 나는 저항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하나된 어울림의 소리였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신비로운 가락. 마냥 들어도 싫증나지 않고 새롭기만 한 화합의 노래였다.
자그르르르 하나의 가락을 내지만, 파도에 구르는 돌들은 색깔도 모양도 모두 달랐다. 대부분 새까만 색으로 반들거리고 간혹 덜 검은 것도 있고 아예 하얀 돌도 있었다. 조금 길쭉한 것도 있고 납작한 것도 있고 공 모양인 것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화음을 이루어 소리를 모았다.
몽돌도 옛날에는 커다란 바위였을 것이다. 몽돌이 되기까지 서로 부딪혀 깨어지고 깎이면서 얼마나 많이 아파야 했을까. 저그럭저그럭 제소리를 높여 충돌할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의 자리를 탐하니 억울하고, 덜그럭거리며 제 영역만 넓히려 하니 위기감에 모서리를 들이대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몽돌이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빛도 열도 고갈되어버린, 보잘것없는 마그마의 잔해가 아니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자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모서리라고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그것을 하나 건져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방실거리며 손바닥 근육이 움직이는 대로 몽돌몽돌 굴렀다. 살포시 쥐어 보았다. 단단한 돌로 느껴지지 않고 마치 나와 한몸인 것처럼 저항 없이 부드럽게 쥐어졌다.
나라는 돌을 들여다보았다. 삐죽삐죽 모서리투성이였다. 부대끼며 사느라 깨어진 자리에도 새로운 날이 서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감추려 애썼지만, 어느 순간 튀어나와 들이댔을 내 모서리들, 의식적으로 대들지는 않았을지라도 일방적으로 내달려오는 돌덩이에 고스란히 내 자리를 내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지 말라고 들이댄 모서리가 더 큰 불협화음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몸 한 귀퉁이가 깨어져 나갈 때, 상대 역시 아팠으리라. 나처럼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라는 돌을 파도치는 바다에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좁은 소견이 벼리어 놓은 내 마음의 모서리를 거센 파도에 갈고 또 갈아 몽돌이 되고 싶었다.
저만치 숙소 앞에서, 전날 타고 갔던 버스가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성씨도 사는 곳도 감정도 다르지만, 우리는 자타불이自他不二, 그 버스를 함께 타고 같은 곳으로 가야 할 공동운명체였던 것이다.
나는 만지작거리던 몽돌을 마음에 저장했다. 나만 보이고 상대는 보이지 않을 때, 그리하여 고통에 자신을 가둘 때마다 꺼내볼 심산이었다. 마음에 돌을 담고 가는데도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나갈 때와는 사뭇 다르게 가벼운 것을 느꼈다.
김용순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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