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을 핑계 삼아 두문불출하며 나른한 늦잠을 즐기는 내게, 다행스럽게도 집은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부려본 적이 그 언제였던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하루에 초대받다 - 심선경
창가로 비쳐 든 햇살의 각도로 짐작건대 누워 있기엔 꽤 늦어버린 시각인 듯하다.
본능적으로 스프링 같은 탄성을 발휘하여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잠시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드러눕는다.
어제 춘천터미널에 표를 끊으러 갔다가 남부지방의 폭설로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운행 중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가족들이 있는 부산으로 부지런히 달려가서,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며 주말부부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을 터다.
폭설을 핑계 삼아 두문불출하며 나른한 늦잠을 즐기는 내게, 다행스럽게도 집은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부려본 적이 그 언제였던가.
이 시간엔 누가 찾아올 리도 없고, 전화벨도 울리지 않으니 옷을 갖춰 입을 필요도 없으며, 밥을 하려고 부엌에 가서 분주히 서두를 이유도 없다. 가만히 누워 천장이나 벽 쪽으로 동공을 옮겨가며 느긋한 여유를 즐기자니 생명체인 나 자신이나 무생물인 가재도구들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움직이지 않으니 이렇게 편한데 그동안 무얼 얻으려고 그리 바삐 달려왔는지, 얼마나 살 것이라고 바깥에 있던 것들을 안으로 죄다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쉬고 있어도 편안하지 않으며, 그 무엇을 성취해도 온전히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나는 본래 자유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는 순간, 마음에 동요가 일었고 시작한 일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내가 어떤 일을 시도하려는 생각을 품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변의 모든 사물이나 사람들이 함께 따라 움직였다. 오늘처럼 가만히 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연결고리처럼 이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욕망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꼴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자유와 권리를 부지불식간에 빼앗기고 말았던 게다.
진정으로 행복의 극점에 다다를 수 있음은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내려놓는 그 순간임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저택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처럼 오늘 하루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참이다.
심선경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파로호에 잠긴 초록별을 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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