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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나의 대표작] 음악 없이 춤추기 - 최화경

신아미디어 2013. 3. 4. 13:09

" “태어나줘서 고맙고 내게로 와줘서 더 고마워.” 내가 매년 딸에게 보내던 생일 메시지를 나도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음악 없이 춤추기  최 화 경


   2006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로이 오비슨 CD
   약간의 돈

 

   이건 며칠 전 지나간 내 생일 선물이다. 벌써 몇 년째 이런 식의 선물을 받다보니 꽃바구니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내 생일의 수수함에 좀 쓸쓸했다. 아니, 음력 섣달그믐날인 내 생일이 유죄인지도 모르리라. 날짜가 주는 분주함과 고단함에 잠시 우울했다.
   어린 딸은 언제나 CD와 책을 선물한다. 어느 해 생일인가, 내게 옷을 선물했다가 나의 까다로움에 마음을 다친 남편은 생일날 내게 돈을 준다. 좀 멋없고 삭막하긴 하지만 돈으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 나쁘진 않다. 장미와 촛불과 와인, 그리고 금색 리본 장식이 달린 선물상자가 아니라도 야단스러운 걸 싫어하는 나로선 이런 식의 단조로움이 오히려 넘침이 없어 좋았다. 그런데 올해 생일은 좀 역정이 났다.
   딸이 주문한 로이 오비슨 CD는 품절인지 벌써 일주일째 배송지연이다. <인 드림In dreams>이라도 듣고 있으면 괜찮을 듯싶었는데, 듣고 싶던 음악도 못 듣고 나 먹자고 미역국 끓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미역국도 안 끓이고 청승을 떤다고 남편이 혀를 찬다.
   “우리 나이쯤 되면 자기 생일날 직접 미역국 안 끓인대…….”
   “그럼 누가 끓여준대?”
   “딸이나 남편이 끓여 준다더라.”
   “……?”
   남편은 나를 한번 쳐다보다가 입을 다문다. 시댁으로 가서 종일 전을 부치다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니 기름 냄새 때문인지 머리가 혼미하다. 두통약과 비애도 꿀꺽 같이 삼킨다. 생일을 잘 차려 먹어야 잘산다는데 이렇게 데면데면 지나가 버리니까 사는 게 이 모양인가. 자기들 생일은 살뜰하게 계획하고 챙겨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딸과 남편이 좀 야속했다.
   늙음의 징조인가. 뜬금없이 생일타령에 노염까지 타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국경일처럼 법석을 떨며 생일을 챙기는 내 또래 여자들이 부러워서 이런 걸까? 난 사실 이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생일이건 결혼기념일이든 그냥 조용한 곳에서 맛있는 밥이나 한 끼 먹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틱한 이벤트로 무슨 기념일을 축하받는 친구들을 별로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래, ‘삶이 다 같을 순 없으니까.’ 하고 날 위로하며 담담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일은 자꾸만 마음이 헝클어져 좀처럼 담담해지질 않았다. 당겨서 미리 먹던 가족과의 식사도 시간이 안 맞아 취소되었고 명절 준비 때문인지 몰려드는 몸의 피로가 송곳이 되어 날카롭게 날 찌르며 대든다.
   “태어나줘서 고맙고 내게로 와줘서 더 고마워.” 내가 매년 딸에게 보내던 생일 메시지를 나도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외롭고, 흥겹지도 않고 민망하기까지 한 이런 기분은 마치 음악 없이 춤추는 것만큼이나 싱겁고 안쓰러웠다. 음악 없이 춤춘다는 것. 그 우스꽝스럽고 어쭙잖은 몸짓의 힘겨움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밋밋한 기분에 몸만 한껏 안타까운 것, 그건 거의 형벌이지 싶다. 갑자기 내게 근사한 생일잔치가 왜 필요했을까. 내가 원한 게 끔찍한 숫자의 장미도 아니었을 테고 낯선 여행도 아니었을 것이다. 도대체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상실감의 끝은 어디일까.
   그 밤, 속절없이 그렇게 허무와 휘황함이 스러지며 나의 40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 아닌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그건 원치 않아도 내가 보듬어야 할 무정한 나의 50대의 시작이기도 했다.

 

최화경  ------------------------------------------
   ≪좋은 문학≫ 등단.  수필집: ≪음악 없이 춤추기≫, ≪달을 마시다≫.  공저: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외.

 

 

작가메모

 

   티파니 선물 상자 같은, 민트색의 정갈한 책장을 넘기니 식탁에 아기 얼굴 세 개가 그려진 사진이 실려 있다. 세 개의 얼굴은 똑같았다. 낯익은, 너무나 친근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본 걸까. 더듬듯 천천히 생각해보니 외국의 이유식 병에 그려져 있던 사내아이 얼굴이었다.
   거버이유식. 틀림없었다. 갑자기 뼈마디가 아파 오며 피로감이 몰려 왔다.
   티 스푼으로 바나나 이유식을 떠먹이면 딸은 새로운 맛이 낯설었던지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이빨이 몇 개 없는 입 속은 붉은 잇몸으로 가득해서 온통 장미꽃 같았다.
   며칠 전 홍시를 먹다가 싫다는 딸에게 수저로 억지로 떠먹였더니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새처럼 잘 받아먹었다. 이유식을 받아먹던 시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스무 살이 넘은 딸의 반쯤 벌린 입에서 비릿한 젖내가 나는 것 같았다. 또다시 관절에 통증이 오고 고단함이 밀려왔다. 병처럼, 애 키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살이 오는 듯 어딘가가 아파온다. 늘 피곤에 절어 살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나의 사십대는 늦은 결혼에서 오는 힘겨운 육아로 자주 우울했다.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애와 삭아지는 몸뚱이가 원하는 안식 사이에서, 간절했던 것은 오직, 빠르게 흐르는 세월의 속도였던 것 같다. 빨리빨리 시간이 가버려 할머니가 되면 애는 저절로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에 나이 먹는 게 두렵지 않았었다. 꽃 한 송이, 케이크 한 조각 없는 생일의 스산함을 애가 건네주는 CD와 책이 보상해 주는 듯 섭섭하지 않았었다.

 

   사십의 끝.
   무심하고 단조로운 마지막 생일이 노엽고 역정이 났던 걸까. 외롭고 흥겹지도 않은 세월이 안쓰러워 마치, 음악 없이 춤추는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땐 그랬다. 이제 어린 딸은 자라서 내 생일에 간 맞는 미역국을 끓여준다. 헐거워지는 몸과 함께 세월도 마음도 삭아져 이젠 다 지나간 듯하다. 아닌 걸 사랑할 수 있고 견딜 수 없는 걸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오십대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보듬어 안고 다독이는 치유의 시간들 속에서 음악 없이 추는 춤도 고요해서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