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와 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구절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해 본 이들은 저마다 소리 죽여 고함지르고 싶은 함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질긴 화두를 가슴에 품고 살지만 아무도 드러내지는 못한다."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구 활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란 시는 절창이다. 그 시를 읽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수화樹話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명작 유화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와 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구절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해 본 이들은 저마다 소리 죽여 고함지르고 싶은 함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질긴 화두를 가슴에 품고 살지만 아무도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 구절의 속사정을 예리하게 지적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첫사랑 연인이 잘살면 배 아프고, 못살면 가슴 아프고, 같이 살자면 머리 아프다.’ 딱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회상의 언덕 저 너머에 있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반추하는 헌시에 불과하다.
나는 서해 신안군 안좌도에서 김 화백을 만났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못 만날 리가 없다. 기억으로 만나고, 흔적으로 만나고, 그리움으로 만날 수 있다. 명시 <저녁에>를 쓴 김광섭 시인도 목포 앞바다에 떠 있는 화가의 고향에서 함께 만났다. 그것도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의 맑게 갠 총총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만났다.
화가의 생가인 안좌도 읍동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민박집을 정한 후 바닷바람이 코끝에 닿는 감촉이 너무 산뜻하여 밖으로 나왔다. 저녁밥을 먹고 한참 지나서인지 별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별들은 문명을 싫어하고 부끄럼이 많아 얼굴 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골의 별들은 어두운 밤이 되어야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 안좌도의 별들은 밤마다 모여 은하를 이루고 갈 길이 바쁘면 별똥별이 되어 미끄럼을 탄다. 나는 하늘의 별밭을 쳐다보다가 화가와 시인을 만난 것이다.
한국 화단의 모더니즘 1세대인 화가는 뉴욕 생활에 권태가 깃들 무렵 <저녁에>란 시를 읽고 깜짝 놀란다. 잊고 있었던 자아를 찾은 것이다. 그는 큰 캔버스(172×232)를 끄집어내 점을 찍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점이지만 화가는 점 속에 바다를 그린 것이다. 하루 16시간씩 찍고 또 찍었다. 그는 바다를 그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리는 선, 내가 그리는 점,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는다.”
화가 옆에는 아내 김향안(본명 변동림)이 시봉처럼 따르고 있었다. 그녀는 화가의 지주이자 손발이며 든든한 내조자다. 그녀는 원래 천재 시인 이상의 아내였다. 경기고녀와 이화여전영문과를 다닌 김향안은 신여성 중에서도 뛰어난 재원이었다. 그녀가 스무 살 때인 1936년 여섯 살 많은 이상과 결혼했으나 사 개월 만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상이 죽고 난 후 “결혼 사 개월 동안 낮과 밤이 없이 즐긴 밀월은 월광月光으로 기억할 뿐”이라고 말하고 “황홀한 일생을 살다 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천재는 미완성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칠 년 뒤인 44년 세 딸의 아비인 화가와 재혼하면서 허물을 벗듯 이름을 변동림에서 김향안으로 바꿔버렸다. 변동림일 때는 시인 이상에게, 김향안일 때는 화가 김환기에게 모든 걸 바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뮤즈(Muse)였다. 장안의 사람들은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 등 연하의 남자 둘을 사랑한 조르드 상드에 비견하곤 했다. 상드도 본명은 오로르 뒤팽(Aurore dupin)이었다.
김향안은 여섯 살 연상인 이상과 사 개월, 네 살 위인 김환기와는 삼십 년을 함께 살았다. 상드는 소설가였지만 김향안은 수필가, 화가, 미술평론가였다. 이상은 폐결핵환자였지만 상드는 인후결핵을 앓고 있는 쇼팽을 마요르카 섬의 발데모사 수도원으로 데리고 가 헌신적인 간호를 했다. 어느 비 오는 날, 쇼팽은 읍내에 약을 사러 간 상드를 기다리며 수도원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피아노로 받아 적어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 15번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드는 한때 그렇게 사랑했던 쇼팽을 걷어차 버려 건강과 음악의 샘을 동시에 마르게 했다. 뮈세 역시 어긋난 사랑 탓에 퇴폐의 늪에 빠져 비참하게 생을 끝냈다. 쇼팽은 39세에, 뮈세는 44세에 이승을 떴으나 상드는 72세까지 살았다.
안좌도 하늘 위에서 수군거리는 별들의 중매로 시인과 화가를 만난 지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데 별들이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별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 왔다. “화가의 생가에 와 봤으니 그들이 누워 있는 수향산방樹鄕山房(樹話와 鄕岸의 합성어)에도 한 번 가봐야지. 뉴욕 근교에 있는 웨스트 체스터 묘원이야. 가 볼 거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덤 속에서 흙이 되어 유심초의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혼성듀엣으로 부르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구활 --------------------------------------------
≪현대문학≫ 등단. 에세이집: ≪그리운 날의 추억제≫, ≪아름다운 사람들≫, ≪시간이 머문 풍경≫, ≪하안거 다음날≫, ≪고향집 앞에서≫, ≪바람에 부치는 편지≫, ≪선집 정미소 풍경≫, ≪선집 어머니의 텃밭≫, ≪어머니의 손맛≫, ≪풍류의 샅바≫ 등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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