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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촌감단상] 여여如如하니  - 정태헌

신아미디어 2013. 3. 1. 08:56

"군데군데 문상객들이 둘러앉아 한가롭게 담소하며 소소한 일상을 풀어내고 있다. 그는 저세상이 아니라 잠시 봄나들이라도 간 게 아닐까 하는 생뚱맞은 느낌조차 든다. 영정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봄이 몰려오고 있어서일까."

 

 

 

 

 

   여여如如하니 정태헌


   우수 경칩이 지나니 바람결이 한결 살갑다. 아지랑이는 혼자 옹알대고 이팝나무 우듬지에는 불그무레한 기운이 우련하다. 머지않아 움이 돋아 싹으로 돌아오리라.
   곡성 구례를 끼고 섬진강 물길을 따라 흐르다 소읍에 이른다. 목적지인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선다. 우두커니 서 있던 망자의 아내가 말없이 맞이한다. 웬일인지 빈소엔 영정이 보이지 않는다. 망설이다가 그녀와 묵례로 예를 대신한다.
   귀밑으로 흘러내린 몇 올 살쩍, 검은 상복에 떼꾼한 눈, 굳게 다문 입, 힘을 잔뜩 준 턱뼈 때문에 더 강파르게 보인다. 울음이라도 쏟아놓으면 더 나으련만 그녀는 부르튼 입술을 앙다물고 나목처럼 굳어 있다. 누르고 있는 눈물 속엔 어떤 강물이 흐르고 있는 걸까.
   지병이라지만 그는 아직 창창한 세월인데 그예 강을 건너고 말았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장례식장 안은 뜻밖에 가분하고 나른한 기운이 묻어난다. 군데군데 문상객들이 둘러앉아 한가롭게 담소하며 소소한 일상을 풀어내고 있다. 그는 저세상이 아니라 잠시 봄나들이라도 간 게 아닐까 하는 생뚱맞은 느낌조차 든다. 영정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봄이 몰려오고 있어서일까.
   입구 쪽에서 한 사내가 영정을 안고 잰걸음으로 들어선다. 들큼한 봄바람 한 자락 뒤따른다. 그러고 보니 황망 중에 사진 마련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빈소 제자리에 영정이 놓이자 비로소 가벼움이 걷히고 상갓집 모양새가 잡힌다. 하나 문상객들은 영정을 보자 기다리는 사람이 왔다는 듯이 서로 흥겹게 술잔을 권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이젠 영정 속의 그가 문상객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스냅사진을 확대한 모양인데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넉넉하다. 영정 안은 적요하지만 그의 얼굴은 외려 평화롭다. 그런 남편의 얼굴을 아내는 묵연히 바라보고 있다. 영정의 안과 밖은 단지 형태가 다를 뿐, 그녀의 경직과 침묵 너머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얽혀 살다가 때가 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향으로 되돌아가는 게 섭리지만, 대신 그래야 한다면 산 이와 죽은 자 중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할까. 죽음은 삶의 이전이지만, 그는 또 다른 넉넉한 평화로 다시 돌아와 있지 않은가. 하나 그녀는 대리석과 진흙으로 빚어진 생과 늘 맞닥뜨려야 하리라.
   밖으로 나선다. 봄맞이하기에 참 좋은 날이다. 되돌아 강가를 거슬러 오른다. 잉잉대며 밀려오는 저 문문한 울림, 자드락길 휘휘 돌아 강을 건너오는 봄의 소리다. 아니, 저편 무량한 것들이 되살아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다. 매화나무는 어느 모롱이에서 서성대며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는-.

 

 

정태헌  --------------------------------------

   ≪월간문학≫ 등단. 저서: ≪동행≫, ≪목마른 계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