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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2월호, 촌감단상] 씨앗 - 정목일

신아미디어 2013. 3. 1. 08:46

"씨앗은 출발이고 마무리이다. 처음이고 종결이다. 언제나 빛을 향해 고개를 들고 치솟으려고 한다. 땅속이 아무리 깊더라도, 자리 잡은 곳이 바위일지라도, 생존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점임을 안다."

 

 

 

 

   씨앗 정목일


   씨앗은 생명의 궁전이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 누구도 내장된 꿈과 아름다움을 훔쳐갈 수 없다. 넘치는 초록과 눈부신 빛깔로 터질 꽃 폭탄이다.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지만, 숨 쉬고 있다. 말이 없지만 싱싱한 말들을 내장하고 있다. 아름다운 순금의 낱말들을 품고 있다. 침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말들을 키워내 세상을 푸르게 만들 것이다.
   무한한 잠재력의 알맹이이다. 꿈과 희망의 집이다. 노래의 거대한 산실이다. 세상에 이처럼 유익하고 싱그러운 선물도 없으리라.
   하늘과 땅의 만남이고, 바람과 비와 만남이다. 꽃과 나비와의 만남이다.
   만남은 축복이고 번영이다.
   누가 이런 신비와 무한의 가능성과 에너지를 작은 씨앗에 담아놓을 수 있을까. 생명을 주재하시는 신의 손길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이 보다 심오하고 축복스런 일은 없으리라.
   씨앗은 출발이고 마무리이다. 처음이고 종결이다. 언제나 빛을 향해 고개를 들고 치솟으려고 한다. 땅속이 아무리 깊더라도, 자리 잡은 곳이 바위일지라도, 생존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점임을 안다.
   움직이지 못하지만 생존체이다. 풍요와 생명을 품었기에 함부로 할 수 없다. 많은 동물들에게 양식이 돼 준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 되풀이는 뭇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바탕이고 생태계의 질서를 이룬다.
   생명의 어머니이다. 자신을 땅에 눕히고 묻힘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품고 세상을 꿈꾼다. 씨앗은 자비, 성장과 도약의 이름이다. 이처럼 찬란하고 성대하고 거룩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천 년이 넘은 연꽃 씨앗을 심어서, 꽃이 피어난 것을 본 적이 있다. 경남 함안에서 천 년 전의 연꽃 씨앗을 발견하여 심었더니 연꽃이 피어났다. 아라가야 시대의 연꽃이라 하여 ‘아라연꽃’이란 이름을 붙였다. 천 년을 꽃피울 꿈으로 버티고 참아낸 씨앗의 신비와 생명력이다.
   씨앗은 꿈꾸는 존재이다. 인간도 하나씩의 좋은 씨앗이 될 수 없을까. 만물에게 혜택과 덕을 베푸는 아름답고 선한 씨앗이 될 수 없을까.
   겨울이면 나도 하나의 씨앗이 돼 보고 싶다. 침묵 속에서 어떻게 꽃을 피워낼지, 그 빛깔과 향기로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인지 생각하고 싶다.

 

 

정목일  ----------------------------------------
   ≪월간문학≫ 수필 당선, ≪현대문학≫ 수필 천료, 수필집: ≪별이 되어 풀꽃이 되어≫, ≪지금 이 순간≫ 등 20여 권